[기획] 지역에 뿌리 내린 시부야대학 10년

이슈 l upload_관리자 posted_Nov 30, 2016

수원시평생학습관은 2013년 4월에 <시민제작 일상학습>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그 행사를 소개하기 위해 수원시평생학습관 동향리포트 '와' 29호에 소개 글을 하나 썼는데 그 기사의 첫 문장은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다음과 같은 인용구로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내려놓지 말자.

사회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평생학습은 무기가 될 수 있는가

 

이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꾹꾹 눌러 쓴,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매뉴얼처럼 보인다. 유사 이래 세상은 저절로 좋아진 적이 없다. 그래도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은 맞서 싸워 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맞서 싸운다'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저항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구조의 맥락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개성과 능력에 따라 사회 곳곳에 크고 작은 진지를 구축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 진지전의 '무기'는 카메라일 수 있고, 노래일 수 있고, 시일 수 있고, 힘없는 이들을 향한 애정 깃든 시선일 수도 있다. 그리고 동시대인과 더불어 진행하는 평생학습일 수도 있다. 그런 평생학습인을 한명 꼽으라면 사쿄씨를 추천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2013년 심포지엄 준비과정에서 '시부야대학'을 알게 되어 급하게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전문가 중심이 아닌 일반 시민이 스스로 참여해서 새롭게 학습문화와 지역문화를 일궈나가는 역동적인 시부야의 활동, 그리고 그것을 10년째 일궈나가고 있는 사쿄씨는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기사를 2013년 3월 27일 <와> 28호에 담았다. 그런데 사쿄씨로부터 한국에 올 일이 있으니 잠깐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그러면 나 개인만을 만날 것이 아니라 시부야의 경험을 학습관 직원에게 들려주는 것이 좋을듯하여 작은 강의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서로 궁금한 내용을 질의응답하게 되었고 그 강의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여 이번 호에 기사를 쓰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기사를 읽으실 분은 가급적 <와> 28호를 들춰 보시기를 권한다.

 

 

시부야 그리고 사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28호를 보지 않는 분들을 위하여 짤막한 소개를 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이 25개의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면, 시부야는 도쿄 23개 구 중 하나인 20만 정도 작은 규모의 자치구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고급 백화점과 각종 쇼핑몰 그리고 일본 최대의 레코드점과 상업시설이 밀접해 있어 늘 관광객과 젊은이로 넘쳐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강남의 소비와 문화 그리고 홍대의 젊음이 합쳐진 곳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한층 빠를 것이다.

와세다대학 출신인 사쿄(1979년생)씨는 졸업 무렵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고민하기 위해 1년간 휴학 후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공익적 활동에 대한 지향을 갖고 기업의 시스템과 장점을 배우기 위해 대기업에 입사한 후 3년 정도의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28살의 나이가 되던 2006년 9월 7일에 시부야 지역의 크리에이터, 시부야 구청 관계자, 교육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NPO법인 ‘시부야대학’을 설립하게 되었다.

시부야대학은 ‘마을을 캠퍼스로’라는 슬로건으로 출범을 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마을을 캠퍼스로’라는 의미는 단지 ‘시부야 지역을 캠퍼스화’한다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다. 시부야 지역에 있는 인적자원, 공간적 자원, 환경적 자원을 코디네이팅하여 ‘지역 자원에 의한’ 지역밀착형 평생학습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의미이다.

시부야대학의 강의는 라이센스가 있는 전문강사의 몫이 아니다. 지역에 거주하거나 지역에 연고를 둔 평범한 사람들이 담당하고 있다. 물론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유명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초등학생도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믹한 기준으로 보면 강좌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거기에 시부야대학의 철학이 녹아들어 있다.

시부야대학 강좌의 궁극적 목적은 ‘지식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배움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렇게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부야대학은 학문으로서의 학습기관이 아니라 배우고 싶은 마음을 길러서 배우고 싶은 마음을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그러니 비록 나이가 어리고, 라이센스도 없고,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누구나 가르칠 수 있고 또한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4일 학습관 직원들에게 들려 준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통역은 동경대에서 일본의 생애학습기반 지역사회를 연구하고 있으며 이번에 사쿄 씨와 함께 온 김보람 씨가 수고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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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쿄씨가 진행한 수원시평생학습관 직원 대상의 강의  ⓒ수원시평생학습관

 

현황

- 2016년 9월 시부야 대학이 10주년을 맞이함.

- 현재 300여개의 공간을 학습 장소로 활용하고 있으며 1,000명 이상의 강사가 활동 중

- 2015년에는  82개 강좌가 진행되었으나, 평균 매년 100여개의 강좌가 열림.

- 누구나 가르치고 배우는 취지의 수업 중심이지만 지역·기업 등과의 연계활동도 진행하고 있음.

 

도시 상상회의

- 도시를 상상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부야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모임을 구성

- 회의를 진행하고 난 후 결과가 반영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논의하는 자체가 재미있는 콘 텐츠라고 생각하며 회의 내용을 공개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함.

- 작년부터 도시 상상회의가 시작됨. 강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만들기·도시재생 활동·전문가들이 모여 지역과제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논의함.

- 도시와 사회적 문제(사회적소수자, 공간, 지역축제 등)를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가시화하는 것이 여러 분야에서 필요함.

- 미래를 상상하고 논의함으로써 도시에 대한 능력을 키우고, 새로운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앞으로의 도시 비전을 제언함.

 

시부야 대학 강좌 사례

- 초등학생이 돌아다니며 소개하는 지역이야기: 초등학생이 있으므로 다양하게 연결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됨.

- 카페를 운영하던 고령 노인이 폐업하기 전 커피내리는 방법을 전수함.

- 시부야 ‘메이지 신궁의 숲’에서 매년 11월 도토리 줍는 체험: 시부야 대학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엄마가 세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매년 신칸센 고속열차를 타고 참여함. 아이가 십년동안 꾸준히 참여하면서 가족을 넘어 타인과 제3의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 가고 있음.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는 시부야대학의 상징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도토리와 자연 환경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도토리 신문'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을 가지고 있음.

- 시부야대학 전반적으로 강좌에 대한 인기 그리고 만족도가 높은 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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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지역 강좌 모습(좌) 도토리 줍기 행사에 10년 동안 참여한 학생의 모습(우)

 

앞으로의 시부야대학

- 일회성 강좌가 많지만 동아리 활동으로 연결되어 지속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과 독려

- 9개의 동아리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음 → 여행, 음악해설, 영화해설 등

- 시부야 대학의 자매학교 청년을 만나러 가고, 투어리즘 형식으로 다른 지역사람들과도 교류

- 강좌 내용뿐 아니라 집·직장이 아닌 또 하나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음.

- 창립 10년이 지난 최근에는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일하는 방식에 관련된 강좌 요구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음. 그 배경에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으며, 일을 빨리 그만 두고 하고 싶은 일을 창업하거나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는 소셜 비즈니스 등 다양한 일하는 방식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

-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가족들은 걱정하기 때문에 제대로 말을 못하고, 제3의 관계·공간이 청년들에게 필요함. 시부야 대학에서 그 장을 만들어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함.

- 고민 안고 있는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시키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모이고 있음. 시부야대학은 청년과 공공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

 

행정과의 연계

- 기존 평생교육 행정과제는 주로 고령자 중심이었는데 시부야 대학과 만나 대상을 확대시킴.

- 기존 개최 강좌와 시부야대학이 하고 있는 청년 프로그램을 합쳐 확대시킴· 청년+고령자가 함께 어울려서 좋았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음.

- 타운미팅이라는 것이 있어 행정과 시민이 만나기는 하지만 가까이 교류하는 것은 아니며, 행정·도시의 문제가 발생하지만 복합적인 문제라 해결이 어려움. NPO가 행정·시민·기업 등 다양한 종사자들이 한데 모여 미래에 대한 건설적 이야기를 하는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함.

 

조례 관련

- 현재 하라주쿠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됨. 조례 제정 당시 공무원들은 당사자(성적소수자)들을 만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중간에서 시부야대학이 연결해주는 역할을 함.

- 역 건물 안에서 오픈하여 진행하는데 성적 소수자 문제의 당사자, 젊은 청년, 시 관계자들이 참여하여 논의함.

- 6개월 뒤, 관계자들이 참여하여 논의한 내용을 발표하는 장을 마련하여 공개 진행함.

 

지역 기업과의 연계 - 에비스 문화제 사례

-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라는 상업시설에서 이벤트를 개최하지만 생각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함.

- 판매 촉진을 위한 홍보성 행사로 유명 아티스트와 연예인을 초청하여 진행함. 평소 시설을 이용 하는 사람보다는 외지에서 연예인을 보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 일회성 행사가 됨.

- 어떻게 지역을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던 시부야대학과 만남. 아티스트들과 재능이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지역의 특징을 살려 지역 내의 사람들이 1년에 한 번씩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을 제안함.

- 지역의 초등학생부터 예술가들의 워크숍까지 확대됨. 1년에 한번 3일 동안 워크숍이 진행되는데 500여명이 모임.

- 해를 거듭하면서 다른 지역에서의 요구도 많아짐. 무대 또한 다른 지역으로 넓히려는 고민이 있음.

 

운영(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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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부야 구에서의 위탁예산(빨강), 기부금(파랑), 기업과의 연계 통한 수익(녹색)

-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있어도 기부는 쉽지 않음. 비즈니스·마케팅화 기부가 아니라 시부야대학의 의미를 공감하고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생겨나는 추이

 

 

다음은 사쿄 씨와의 질의응답 내용인데 학습관에서는 정성원(관장), 박은미(파트장)이 참여하였고, 통역을 맡은 김보람 씨도 함께 하였다.

 

정성원: 한 기관이 10년을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10년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사쿄: 저와 <시부야대학>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를 하는 게 참 어려운데요, 많은 분들이 ‘학장님이 있었으니까 <시부야대학>이 여기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 그 사람의 방식으로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시부야대학>을 지속가능한 구조로 가져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시부야대학>이 너무 확대되고 있잖아요. 이제는 제가 사무적인 일을 하나하나 처리할 수는 없고, 앞으로 기업 연계나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일하는 청년을 더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도 내가 없어지면 <시부야대학>을 누가 할 것인가를 과제로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습니다. 뭔가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일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시부야대학>에 와서 자기 꿈과 끼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정성원: 강좌가 매년 평균 100개 정도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이제 10년이면 어떤 추이를 파악할 수 있지 않나요?

 

사쿄: 처음 2005년도에 시작했을 때는 50개 정도 강좌가 있었는데 조금씩 늘어나서 2009년도부터 100개가 넘어갔고, 많을 때는 120개 정도 되었다가 작년에 80개 정도로 줄었죠. 각 강좌는 30명 정원이니 참가자는 그것에 비춰 연인원 3,000명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강좌수가 많이 변동이 없는 것은 수업을 만드는 코디네이터의 수가 별로 변동이 없기 때문이죠. 코디네이터가 결혼하면서 그만두어도 그 수가 일정하게 유지되어 수업강좌가 평균 100개이며, 조금 더 다양하고 많은 강좌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1명 코디네이터가 1개 강좌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2-3명의 코디가 하나의 강좌를 공동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정성원: 코디네이터가 몇 명인지요?

 

사쿄: 현재 2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성원: 코디네이터의 특별한 교육이 있는지, 혹은 없다면 본인이 강좌 기획을 하면 다 받아들여지는지요?

 

김보람: 특별히 선발하는 경우는 없고 자발적으로 자원활동가로 참여하다가 이 수업에 참여하면서 ‘나도 뭔가 하고 싶거나 만들고 싶은데‘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죠. 그 다음 강사를 섭외하게 됩니다. 그럼 강사와 코디네이터가 거의 3개월 이상 어떤 강좌로 만들어갈지에 대해 함께 구상을 해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홍보는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까지 구상하죠. 특별히 코디네이터 연수과정이나 교육과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일을 하면서 배우게 됩니다.

 

박은미: 코디네이터가 교육을 기획하면 사쿄씨가 승인절차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사쿄: 기본적으로 승인을 받는 절차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강좌를 한 달 전 홍보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을 사무국에서 처리할 때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강좌가 있거나, 강의 내용을 보완 해야겠다는 것이 있으면 어드바이스를 하며 조정을 하는 것이지 승인받는 절차는 전혀 없습니다.

 

정성원: 코디네이터는 볼런티어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일반 시민 중에서 나올 수 있나요?

 

사쿄: <시부야대학>에 전혀 참가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부야대학>에서 자원활동가로 관여를 하면서 사소한 것, 예를 들어 접수를 받는 일을 하거나 <시부야대학>에 대한 철학을 이해하거나 하지 못하면 바로 기획단계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초보 코디네이터는 일을 하면서 선배에게 배우는 것은 있지만 별도의 교육과정이나 연수과정은 없습니다.

 

정성원: 수원시평생학습관에는 <누구나학교>라고, 시민들이 강좌를 열고 싶으면 종교, 정당,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강좌를 열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시부야대학> 코디네이터처럼 중간 단계가 없는 것이죠. 주부나 병원의사, 중고등학생 등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1년에 140~150개 강좌가 열리고 있는데 <시부야대학>은 단발성이지만 <누구나학교>는 연속강좌가 꽤 있기 떄문에 강의 횟수로만 치면 더 많은 강좌가 열리는 셈이죠.

 

김보람: 시민의 학습의 보장이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혹시 위탁을 받는 관계에 있어서는 좀 곤란한 면이 있지는 않나요? 시민들이 배우다보면 예를 들어 환경을 생각하는 것에 대해 배우면 배우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운동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활동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자칫 지자체와 반대되는 것일 수도 있을 텐데요, 그래도 괜찮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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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을 맡은 김보람씨(좌)와 시부야대학의 사쿄씨(우)  ⓒ수원시평생학습관

 

정성원: 환경에 대해 공부를 하다보면 지자체나 정부의 환경정책이 ‘반사회적이다’ 라는 인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인식과 의지 정도에 따라 행동을 해야겠지요. 저희가 비록 위탁관계에 있긴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장려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일이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특정 정당의 정파적 행동은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쿄: 일본도 가르치고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굉장히 많습니다. <인재뱅크>라고 해서 많은 강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문제는 강사는 많지만 배우러 오는 사람이 적어서 담당자들이 수강생을 모집하는 것이 과제라는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신지

 

정성원: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의 퀄리티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저희들도 마찬가지고 강좌와 수강생 매치가 잘 안돼서 강의가 열리지 못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수강생이 한두 명이 있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일정 숫자가 채워지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폐강되는 현재 평생학습기관의 경직된 방식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강생 숫자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려는 의지를 더욱 주목해서 보고 있고 그것에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박은미: 한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 <시부야대학> 같은 경우는 정원이 30명이라고 제한을 둔다고 했잖아요. 저희는 학습자의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강의를 열겠다고 하는 강사 중 5명만 넘어도 떨려서 강의가 힘들다면 5명으로 제한합니다. 인원에 대한 제한보다는 소수로 강의가 열리고 그들이 만나는 것을 마련해가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쿄: 수강생도 그렇지만 내가 선생님, 내가 가르치고 싶다고 할 때 기회와 장이 열리는 것이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것이네요

 

정성원: 왜 교육의 현장에는 교수, 전문가,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만 강단에 서서 가르치는가? 그분들도 강단에 설 수 있지만 시민들도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 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경계가 있어야 하는가? 이 경계를 허물자, 이것이 <누구나학교>가 견지하는 가치이고. 또 하나는 사적영역에만 머물던 시민이 공적영역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익명의 주부가 조금씩 공공의 장에 나서고 공공의 장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누구나학교>를 통해서 지식이 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심 포인트는 교육의 경계를 허무는 것, 익명의 주부, 소심한 사람이 공공의 장에 나올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누구나학교>의 가치이고 철학인 것입니다.

<시부야대학>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10년을 버텨왔는데 그 지속가능한 요인이 무엇인지. 10년 동안 발전해 올 수 있던 요인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쿄: 이윤이라든지 재정이라든지 윤택함이라든지, 이런 것은 NPO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처음 시작한 목적과 사명이 있는데 재정적으로 불완전하다고 그만두는 것은 기업의 영리 관점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요. 당연히 어려움은 많이 있지만 운영을 하다 보니 청년과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이렇게 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계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가하는 청년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신뢰관계를 맺고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면 ‘<시부야대학>이라면 괜찮아’라며 지지하고 허락해주는 지역주민들이 있고, 자원활동가들처럼 <시부야대학>과 함께 활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끊임없이 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만둘 수 없고 계속해서 지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정성원: '도시 상상회의'의 내용이 실제로 시민과 지역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나요?

 

사쿄: 작년부터 시작해서 다섯 번 밖에 하지 않아 아직 구체적인 영향을 말하는 것은 좀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부야대학> 일반강좌의 경우 전혀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는데 ‘도시 상상회의’만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아카이브하고 있습니다. 참여자의 발언과 논의했던 내용이 PDF로 나오기 때문에 이런 논의내용과 회의 참여방법을 본인의 회사에 가져가서 실제로 업무에 접목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 어떤 회사에서 본인은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공개된 회의기록을 보고 앞으로 도서관의 전망과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도서관 직원과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그 직원에게 이 자료를 읽어보고 앞으로 도서관을 이런 식으로 고민하고 접목시켜봐라. '도시 상상회의'가 5번 밖에 진행되지 않아 아직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저변 확대가 꾸준히 증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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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상상회의 모습 (출처:시부야대학 홈페이지)

 

정성원: 20대 후반에 대기업의 안정적 직장을 버리고 이 길에 뛰어들었는데 당시 사쿄 씨는 대기업 길이 아닌 NPO, 그것도 처음 만들어진 생소한 이 길을 어떠한 마음으로 뛰어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쿄: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는데 그 영향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보다는 뭔가 사회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일단 민간기업에 들어간 거죠. 지방출신은 대부분 자기 지역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일 수밖에 없지만 저는 럭비를 한 관계로 럭비를 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저는 굉장히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럭비 시합을 하면서, 가장 큰 국립경기장 운동장이 만석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온 경기에서 팀 리더로 경기를 끌고 가는 시합 등 자신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하면서 이런 것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 당시에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죠.

우선 기업에 들어가서 비즈니스 기법을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대기업의 생활은 보람을 느끼거나 행복하거나 그렇지 않고, 여기서 돈은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보람은 없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사회적 NPO에 주목을 하게 된 거죠. 그러나 NPO라는 것이 사회공헌, 자원활동, 가난한 직업 이런 식의 이미지가 많잖아요. 그런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기업은 좀 안 좋은 짓을 해도 용서가 되고 돈 벌고 이윤을 남기는데 NPO 이런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는데도 가난하고....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인터뷰 할 때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좋은 일을 하면서도 그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사회의 가치에 부합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대가가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자신이 그런 모델이 되면 좋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바꿔가고 싶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NPO를 시작 할 수 있었죠.

시작을 했더니 역시 가장 힘들었던 점은 NPO는-돈을 벌거야, 부자가 될 거야 생각했는데-돈을 버는 부분이 힘들었던 거죠. 그런데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지금은 청년문제가 중요해졌지만 10-20년 전에는 이런 것이 사회적 과제가 아니었잖아요. 이렇듯 시대가 바뀌면서 기업들이 사회 공헌과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업으로서 사회적 신뢰를 못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업에서도 특별부서-사회적 과제를 함께 연계하는 부서-를 만들게 되면서 이제는 오히려 저희에게 상담이 오는 거예요. ‘사회적 과제가 뭐예요, 도대체’ 이런 상담이 오면서 기업컨설팅, 이런 것들이 시대가 바뀌어 자연스럽게 NPO도 돈을 버는 구조가 된 거죠.

뭔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특별한 다른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하고 그에 따라 기업들이 바뀌면서 기업들이 여러 수익이 많이 들어오는 점도 있고 본인이 생각했던 NPO지만 재대로 된 대가도 받으면서 그런 활동들을 해가는 사회적 구조가 되기 시작한 거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몇 차례 시간을 확인해야만 했다. 사쿄 씨 출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많이 남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10년 동안 변치 않고 깊고 넓게 진지를 확보해 나가는 모습은 묵직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시부야와 수원은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배운다는 것, 가르친다는 것, 더불어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공통점이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더 단단하고 확고한 진지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여전히.

 

글 및 인터뷰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인터뷰_박은미(수원시평생학습관 사업1파트장)

강의 정리_한소정(수원시평생학습관 연구원)

인터뷰 정리_조진희(수원시평생학습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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