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장의 종횡무진]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이명수 인터뷰

지옥탈출의 키워드, 당신 곁에 있는 그 한 사람

이슈 l Writer_정성원 upload_관리자 posted_Apr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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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나는 시(詩) 분야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문밖의 사람’이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은 시 몇편이 있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함만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을 앞줄에 세울 것이다.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국밥이 한 그릇인데 /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 박리다 싶다가도 /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시장에서 시집의 교환가치는 고작 삼천 원. 자신이 들인 공에 비해 헐값인지라 입술을 삐죽 내민 시인. 그러다 이내 성찰 모드. 스스로 자기 시의 사용가치를 셈해보니 웬걸, 저울이 오히려 삼천 원쪽으로 급격히 기운다. 삼천 원짜리 “국밥 한 그릇만큼” “가슴 따듯하게” 만들지도 못하는 시라니. 그렇다고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다고 노래한다.

시 창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 노동과정을 ‘쌀’ ‘국밥’ ‘소금’이라는 구체적노동의 결과물로 등치해 놓고 보니 시가 드디어 시야에 확 들어와 생생하게 살아난다. 아, 그리고 따듯한 국밥 한 그릇이라니. 모락모락. 시에 김이 나는 듯하다. 시인의 자책과는 달리 시가 사람에게 위로, 심지어 “가슴을 따듯하게 덮혀 줄 수" 있음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설동설(說動說)과 시동설(詩動說)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에 따르면 뇌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 형태로 저장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지식축적의 핵심역할을 한다고 한다. 인간이 이야기에 환장하는 이유가 있다는 말씀. 그래서 우리시대 이야기꾼 김영하는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중심으로 돈다는, 이름하여 ‘설동설’을 설파한다. 꽤 그럴싸한 주장이다.

이번에 만난 인터뷰이가 딱히 그렇게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설동설의 대항마로 ‘시동설’을 떠올리게 된다. “마음이 지옥인 거대한 난파선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은 다름 아닌 시라고 이야기 한다. 아니 지옥을? 고작 시가? 너무 눈 흘기지 말고 계속 들어 보시라. 게다가 그는 “시는 그 자체로 부작용 없는 치유제”이며 “시가 그런 치유제인 까닭을 숨도 쉬지 않고 반 페이지 쯤 읊어댈 수 있다”고 말한다. 거의 종교적 수준의 간증이다.

시로 처방전을 쓴다고 해서 그가 무슨 신 내림 받은 영험한 주술사는 아니다. 시가 좋아 수만 편을 읽었고 그 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한때 대기업 마케팅팀, 그리고 광고 업무. 하지만 중년 이후 심리치유 관련 일을 하면서부터 시를 치유적 관점에서 다시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시가 뿜어내는 치유적 공기에 매료"됐고 이제는 드디어 시는 “상처받은 이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옳다”고 외치는 수준이 되었는데 이것은 “경험칙에서 비롯한 일종의 시 임상실험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수 씨의 임상실험 장소는 예의 조용하면서 안락한 공간이 아니다. ‘내마음보고서’ ‘내마음워크숍’ ‘힐링Talk’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진행해왔지만 이제 그의 발길이 주로 머무는 곳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와락’,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현장활동,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하는 ‘치유공간 이웃’ 등 사회적 재난의 현장이다. 그러나 지옥같은 마음이 어디 재난현장 뿐일까. 우리는 일상의 곳곳에서 무릎을 꿇게 되고 지옥을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일상에서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지옥탈출 매뉴얼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내 마음이 지옥일 때」(해냄출판사.2017)

 

 

책의 구성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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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사람들은 괴롭지 않을까?

자꾸 무릎 꿇게 될 때, 낭떠러지 같은 이별 앞에서, 억울함이 존재를 상하게 할 때, 자기 안방에 스스로 지뢰를 묻고, 세상에서 나만 고립되었다고 느낄 때 등등. 저자는 이처럼 고통스러운 16가지 마음 지옥을 설정하고 이런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아주 단순하면서도 쉽게 설명해 놓았다. 거기에 더해 해당 상황에서 읽으면 좋을만한 5~6편의 시(총 82편)를 처방전으로 제시했다.

어떤 이는 본문을 읽기도 전에 ‘책 제목이 자신을 울렸다’거나, ‘16개의 지옥도 목차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간증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내가 처음 주목한 것은 저자의 글쓰기였다. 마치 ‘쉽게 글쓰기 대회’에 출전한 선수마냥 간결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쓴다는 점이었다. 심리학과 연계되었기 때문에 유명학자의 논리나 하다못해 통계라도 들이밀 법도 한데 이 책 어디에도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친한 지인이 낮은 목소리로 쉽고 차분하게 이야기 해주는 듯한 풍경, ‘스스로 자신의 문체를 버린’ 저자의 글쓰기 태도가 눈에 띄었다.

 

“그건 전략적인 글쓰기 방법이다. 지금 내가 쓰는 책은 매뉴얼 북이다. 문학적인 글쓰기도 좋아하지만, 매뉴얼 북에 문학적인 수사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지옥탈출 가이드북’인데 폼 잡으려고 문학적이거나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좋은 비유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건 읽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자동차나 휴대전화 매뉴얼을 읽는데 너무 문학적일 필요가 있나. 그게 멋있을 수는 있겠지만 사용법을 익히는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문장 자체는 의도적으로 절제한 면이 상당히 많다. 건조하고 단호하게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직업, 심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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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심리기획자  ⓒ수원시평생학습관

 

저자는 자신의 직업을 ‘심리기획자’라고 밝히고 있다. 허나 ‘심리기획자’는 한국표준직업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직업이다. 다른 말로 하면 스스로 만든, 그리고 한국에 오직 유일한 직업인 셈이다.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심리기획자가 뭔가요?

“쉽게 말하면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직업”이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내가 예측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답변. 그러니 호기심이 급 동할밖에.

 

“우리는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잘 모른다. 성경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사람들은 믿는다.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잘 깨닫지를 못한다. 그러니까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함부로 하게 된다. 자기가 그런 일을 당하면 안 좋으면서도 다른 사람한테는 무릎을 꿇게 한다든가, 폭력적이라든가, 갑질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깜빡깜빡하기 때문이다. 심리기획자는 그런 것을 증명하는 건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것에는 사람의 마음이 실제하고 있다.

‘세월호 뜨개전시회’의 경우에도 사람들이 눈으로 뜨개전시물을 보면 세월호 엄마들의 고통, 슬픔 이런 것들이 얼마나 절절한지 알 수 있다. 정혜신 씨는 의사로 따지면 임상이고 저는 진단이나 연구, 이쯤 된다. 직접 진료를 하거나 상담을 하지는 않지만 환경을 만드는 일, 치유적 공기를 만드는 일, 치유 인프라를 만드는 일인데 그런 일의 핵심이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 책도 심리기획의 측면에서 기획된 책이다. 사람들은 다 지옥을 겪고 있다. 경험해보니까 주변의 누군가 툭 찔러봤을 때, ‘내 마음도 그래요’ 라고 대답하는 사람 천지다. 거기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오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다. 심리기획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시? 당신 마음 가는 대로 느껴보세요

 

국어 작문 시간에 ‘시를 먹는다’라는 문장을 쓴다면 사정없이 빨간 줄이 그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명수 씨는 의연하게 ‘시 처방전’을 발행한다. 처방전에 의하면 시를 그냥 읽을 수도 있고 바를 수도 있고 품에 안을 수도 있고 심지어 먹을 수도 있다. 어찌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고 유통기한도 없다. 부작용이 없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시의 치유력에 대한 이런 절대적 신뢰는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그의 말을 따라 가면 이렇다.

 

“한때 40-50대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심리분석 후 개인별로 처방시를 주었다. 그러면 액자에 표구해서 집이나 사무실에 걸어놓고 골똘히 보기도 하고 서점에 가서 시집을 한 권 사기도 하고 심지어 우는 사람도 생기더라. 시 자체로 당사자에게 화살처럼 효과가 있다기보다, 자신의 전반적인 삶을 생각하게 하는 측면에서 시가 가진 치유작용이 작동되는 것이다. 예술치유 관점에서 그림이나 음악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봤는데 시의 효과가 가장 뛰어났다. 자기를 돌아보게 하고, 멈칫하게 하고, 입체적으로 보게 하는 데에, 시의 힘이 가장 세기에 처방으로 많이 쓰게 되었다.”

 

할 수 있다는 정신력만으로 바다에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다. 시의 치유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근원적인 공포심이 있을 경우 다가서는 것이 쉽지 않다. 학창시절, 국어시험 시간에 나오는 시 문제는 시에 대한 두려움과 한숨을 유발했다. 시가 주는 문학적 향취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분해하고 조립하고 닦고 기름 쳐서 시험문제에 대비해야만 했던 긴 시절을 경과하고 보니, 시라고 하면 일단 고개를 돌리게 되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시는 나에게 셋 중에 하나, 혹은 셋 전부이기도 하다. 재미없는 것, 어려운 것, 틀리면 안되는 것.

세상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터인데 그럼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이명수 씨의 대답을 내 식으로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니 마음대로 느껴보세요’

저자는 말한다. 겁먹지 말라고, 주눅 들지 말라고.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읽고 느끼고 끄덕이면 된다고. 시인은 입시 현장에서 시를 가르치며 외우게 하고 정답을 강요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시를 읽는 누구든 응원하고 다독여주는 존재, 상처 입은 영혼들에겐 특히나 관대한 존재라는 것이 그의 확고한 지론이다.

 

“이 책에 있는 해석이라는 것은 그냥 말을 걸기 위한 것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책에 있는 해석은 잘못됐다고 보는 게 제일 좋다. 자신이 느낀 대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데 그런 부분이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워하는 것이다. 유행가 가사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느끼는 게 맞다. 남들은 흥겨운 노래라고 하는데, 나는 정말 슬플 수 있다. 시도 본인이 느낀 그대로 편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그게 어려운 게 아니고, 자기감정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건 시도 아니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 바로 소감이다. 유독 끌리는 시가 있다. 단 하나라도. 그러면 시가 그런 거라고 느끼면 되는 거다.

감기에 생강차를 먹으면 낫는다는 것처럼 상황을 일대일로 정확히 맞대응한다는 것은 사기라고 생각한다. 문학에서는 그럴 수 없다. 인문학을 배우는 것도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 늘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틀렸다고 회의할 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읽으면 입체적인 인간이 되고, 성찰적인 인간이 된다고 단정하듯이 말하는 것은 전부 다 사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예시 16가지가 상황의 전부가 아니고, 이 상황에 맞춰 5~6개 들어가 있는 시가 반드시 정답도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를 읽으니까 참 좋다, 시가 이렇게 좋은지 미처 몰랐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마음이 들면 어떤 상황에 처해도 내 마음이 좀 더 편안해 진다."

 

저자의 말에 용기를 얻어 인터뷰 이후 다시 한번 책을 들었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가는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최대한 릴렉스, 천천히. 46쪽을 폈다.

 

춘계 전국야구대회 1차전에서 탈락한 산골 중학교 선수들이 제 몸뚱이보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지고, 목련꽃 다 떨어져 누운 여관 마당을 나서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저마다 저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지 모두 고개를 꺾고 말이 없다. 간밤에 손톱을 깎은

일도 죄스럽고, 속옷을 갈아입은 것도 후회스러운 것이다.

 

여관집 개도 풀이 죽었고,

목련도 어젯밤에 꽃잎을 다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흔든다.

 

봄은 미신(迷信)과 가깝다.

 

 

- 윤제림, 「목련꽃도 잘못이다」-

 

 

야구대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산골에서 서울 오는 게 어디 쉽겠나. 그러나 몸이 채 풀리기도 전에 광속 탈락. 친구 그리고 엄마 얼굴 어찌 보나. 휴. 단체로 쉬는 한숨에 땅이 다 파인다. ‘아 씨, 내가 왜 한밤중에 손톱 깎았지 재수없게’ ‘거참 속옷은 괜히 갈아입어 갖고....’ 마당에 개도 죄스럽다. ‘내가 어제 밤 너무 짖었나?’ 목련도 질세라 합세한다. ‘괜시리 어제 꽃잎 다 떨궈서 그런 거 아닐까?’ 그 풍경이 총천연색으로 그려지니 킬킬거리는 웃음을 참기 어렵다. 전에는 좀 심각하게 읽혔던 시가 이번에는 명랑만화처럼 다가온다.

시의 제목이 압권이다. “목련꽃도 잘못이다” 그러니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말씀. 손톱도 팬티도 개도 목련도 고개 숙이지 말라는 이야기를 봄날 수채화처럼 보여준다. 이 화창한 봄, 스스로의 자책감에 빠져 꽃향기 맡는 것조차 죄스러워 그늘로만 다니는 일, 그것이 지옥이라고 이야기 한다.

 

 

몸이 아플 땐 의사에게, 마음이 아플 땐 명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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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지옥탈출 매뉴얼이라고 한다. 그럼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우리는 학습을 해야 하는 것일까. 혹여 공부가 또 다시 생과 사를 나누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일었지만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다만 아는 것은 필요하다고 한다. 뭘 알아야 할까? 사실은 지옥이 별거 아니란 거, 그걸 알기만 해도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다. 아래 시처럼.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 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지’

 

- 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그리고 “자기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 수갑을 채워놓고 불편하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 많은 경우 지옥은 사라진다고 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언급한대로 이 책에는 16가지 지옥같은 상황이 나오고 나름의 탈출 방법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 책은 지옥에 빠진 사람만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 제목은 「내 마음이 지옥일 때」이지만 현재 자신이 지옥에 있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기본소양 책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 그러니 ‘아득한 세상을 지나는’ 우리들, 집에 비상약 몇 개 구비해 놓듯 마음의 상처 회복을 위해 이 책 한 권 준비해 두어도 좋을 듯하다.

 

 

지금 있는가, 당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해 줄 오직 딱 한 사람

 

이외수 씨가 “모처럼 좋은 책을 추천하게 되어 행복”하다며 페이스 북 담벼락에 글을 올렸다. 공식 추천사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자발적 ‘강추’의 글이다. 글을 읽어보니 책에 대한 내용 이전에 이명수·정혜신 커플에 대한 찬사가 봄날 화단의 꽃처럼 한가득 피어있다. 실제 이 부부는 인터뷰나 칼럼 때론 강연 현장에서 서로를 치켜세우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상징적 의미가 아닌 실제 생활에서 서로를 스승으로, 게다가 서로를 지극한 존재로 삼아 애정애정하며 살아간다.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해서 표현하면, 그야말로 닭살 커플이 따로 없다.

저자는 스스로를 “완벽하게 좋다”라고 이야기 한다. 더 가지고 싶다거나, 특별한 인정욕망이나 돈 벌고 싶은 류의 욕망도 없다. 현장에 있으면서 마음이 지옥인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 스스로를 복 받은 특별한 경우라고 이야기 하는 이명수 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한 사람을 갖는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저는 정혜신 씨가 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 같지만 이 분과 365일 24시간을 같이 지낸다. 이 친구는 저에게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뭘 한다고 하면 ‘잘했다’, 설사 결과가 안 좋더라도 ‘당신이 해도 잘 안되는 거면 다른 사람이 했으면 더 안될 거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당신이 누군지 잘 아는데.....’

그런 류의 인정을 받으면 지옥이 있을 수 없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뒤집기만 해도 칭찬 받는다. 지금 제 나이가 60인데 이 나이가 되어 어떤 행위만 해도 ‘대단하다, 최고야’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어떤 멋진 연예인이 나와도 나도 그처럼 멋지다고 이야기 해준다. 그게 과장인 줄 알지만 내가 저 사람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각인되고 있으니까 나빠질 수가 없다.

그래서 꼭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저처럼 배우자일 수도 있고, 후배, 자식일 수도 있다. 딸도 저에게 그런 존재다. 저는 두 명이나 있는 거다. 그 딱 한 사람만 있으면 지옥으로 안 떨어진다. 정신과적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꼭 한 사람이 있으면 절대 안 죽는다. 암 환자의 경우에도 그 사람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뭐냐면 ‘네가 잘못되면 너를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할 혹은 만지고 싶어 할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려주면 쉽게 안 죽는다.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면 너를 사랑 하겠니’, 라고 말을 해주는 거다. 그런 사람이 자식이나 후배, 스승일 수 있는데 저는 정혜신 씨인 거다.

그런 사람들은 죽겠다고 전화를 하면 ‘그래서는 안돼’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정말 힘들었구나, 내가 지금 갈게’ 그렇게 반응한다. 그런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이 책 안 봐도 되고 지옥에 안 떨어지고, 지옥에 있다면 탈출할 수 있고 지옥을 멀리하고 살 수 있다. 꼭 찾으시길 바란다."

 

그렇다. 결론은 한 사람이었다. 절대적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그 한 사람. 저자는 ‘꼭 찾길 바란다’는 격려와 당부의 말을 했지만 이게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실 ‘찾아라’라는 말은 내 주변에 있지만 잘 인지하지 못하는 ‘키다리 아저씨’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만들어라’의 이음동의어이다. 그리고 그 ‘만듦’의 핵심은 ‘됨’, 내가 그 누군가에게 절대적 응원을 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 그렇지 않은가. 자신은 고단하다며 자주 등을 보이면서 누군가에겐 무조건적인 자기편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이것을 권석창 시인은 <어느 신부님의 강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먹이 사슬 꼭대기에 공룡이 살았습니다

먹을 줄만 알고 먹힐 줄을 몰랐습니다

암 세포도 공룡과 같습니다

다른 세포를 잡아먹으면서

다른 세포에 먹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룡이 죽었습니다

암 세포도 다른 세포가 다 죽으면 죽게 됩니다

산다는 것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주기만 하면 신적인 존재고 받기만 하면 암적 존재입니다

주기만 하면 영원히 살고 받기만 하면 죽게 됩니다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 거두어 함께 사시는 신부님께서

이렇게 강론하시는 걸 들으며,

흰 눈 내려 겨울나무의 시린 발목 덮어주고

가지 위의 새도 아멘! 하였습니다.

 

아득한 세상을 지나는 우리들,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한 사람이 되어보자고, 이명수 씨는 시인의 입을 빌려 이야기 한다. 저자는 “물 끓는 냄비에 수제비 떠 넣듯 시를 골랐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시의 수제비 한 그릇으로 허기를 면하고, 그 한 그릇으로 정서적 기아상태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런 마음으로 골랐다면 그 시는 이미 수제비 한 그릇, 따듯한 국밥 한 그릇이 되고도 남았을 것임을, 나도 아멘으로 동참하였다.

 

정성원
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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