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 딜레마]

장애인에 대한 교육 vs 장애인을 알아가는 교육

이슈 l Writer_백현주 upload_관리자 posted_Sep 29, 2017

 

1.

그렇게 강렬하지 않은데도 찜찜하게 기억에서 잘 떠나지 않는 인생의 순간이 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부끄러웠으나, 같은 상황을 맞이한다 해도 여전히 그로부터 별로 나아지지 않은 제자리걸음인 상태. 천성이 게으르고 매사 치열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그와 비슷한 상황이 또 일어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은근슬쩍 넘어가거나 어쩌다 마주칠 일이 생기면 외면하고 회피하는 쪽을 선택해온 결과다, 이를 테면 ‘영어’ 공부 같은 것으로, 외국인 회사에 다닌다거나 글로벌한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않는다면 평소에 외국인을 만날 일도 별로 없거니와 만에 하나 길거리에서 두리번거리는 외국인이라도 다가오면 모르는 척 다른 데를 보고 딴전을 피우거나 외면하는 심정을 대충 알 것이다. 그러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영어를 못하는 자신을 반성하고 잠시 자괴감에 빠지긴 해도 그때뿐이다. 일상에서 자주 마주칠 일이 아니고 중요한 스펙 하나를 장착하지 못하는 건 맞지만 그 때문에 인간 실격이 되는 건 아니니까, 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시민의 덕목이나 일상생활의 필요를 위한 기술과 관련될 경우에 발생한다. 이 경우가 그랬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기로 한 친구를 만나는 날이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친구가 동석할 것이고 프로젝트에도 합류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마침 친구의 친구가 차를 가지고 나와서 우리를 픽업하여 이야기할 곳으로 이동했다. 차 안에서 인사를 나누고 잠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 친구의 친구는 유쾌하고 날렵했으며 말이 잘 통했다. 감이 좋았다. 한참 수다를 떨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그 친구의 친구인 이가 목발을 하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아니 어쩌다 다리를 다친 거예요?”

“하하, 원래 그래요.”

 

그 후로 나는 한동안 그녀를 종종 만나서 일에 대해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기도 했으며 그녀의 특수한 사정에 대한 불편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장애인이지만 엘리트였고 IT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둔 지 꽤 되었으나 자가용이 있어 언제든 돌아다닐 수 있었으며 전셋집이나마 자신의 근거지와 높은 안목, 지적 자부심이 있었다. 나로서는 장애인을 가깝게 만난 최초의 순간이었고 나의 인식론적 한계, 편견을 샅샅이 확인한 기막힌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인연은 프로젝트의 종료와 함께 그다지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더 이상 비슷한 상황에 처할 일이 생기지 않았으며 이와 관련해 어떠한 학습 기회도 다시는 얻지 못했다.

 

 

2.

엊그제 학습관에서는 “목소리-보이지 않는, 말할 수 없는, 들리지 않는”이라는 주제의 북콘서트 시리즈 마지막 순서가 있었다. 『노란들판의 꿈』(봄날의책, 2016)의 저자 홍은전 씨가 들려주는 ‘노들야학’ 이야기다.

노들야학은 서울 대학로에 있는 성인 장애인 교육공간이다. 1993년 장애 청년 운동의 필요성을 고민하다가, 당시 장애인 노동과 복지의 메카인 정립전자에서 탁구대를 놓고 시작한 수업이 시발이 되었다. 정립전자에는 장애인 200명을 고용하고 있었고 기숙사도 있었는데 이들이 원하는 것은 배우고 공부하는 거였다. 몇 번의 수업 이후 노들야학에 가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졌고 중증장애인들도 오기 시작했다. 중증장애인들은 화장실 가는 것은 물론 혼자서 책장 한 장 넘기기도 어려웠다. 2~30년 동안 집밖으로 나간 적이 없거나 바다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가 다수였고,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참다가 기절해본 사람, 언니의 결혼식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노들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그러니까 ‘등교’는 전쟁과 같았다. 봉고차를 구해 조를 짜고 등교가 이루어지면서 장애인들의 ‘나가고 싶다’는 욕망은 더 절실해졌다. 콜럼부스 같은 모험심으로 혼자 지하철 타기에 도전하는 이가 생겼고, 리프트가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지만 가만히 있지 않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며, 마침내 승소하는 경험을 이루어냈다. 이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계기가 되었다.

 

 

“내 문제로 처음으로 싸워봤다. 싸우니까 바뀌더라. 그리고 나도 바뀌었다.”

 

 

그 이후로 또 다른 리프트 추락사고로 장애인이 숨졌고, 노들의 사람들은 서울역 지하철 선로를 30분 동안 점거해 30년간 잃었던 목소리를 단 30분 만에 되찾았다. 이것은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의 시작이 되는 사건이라고 했다. 이들이 세상으로 나와 무슨 말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타고 나와야 했기 때문이고, 그것을 알게 된 많은 이들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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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고병권은 노들야학을 “학교로 이동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을 이동시켜야 했고, 단 하나의 지식을 깨치기 위해서라도 세상을 깨우쳐야” 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라 했다. 장애인들의 학습권은 지극히 제한되어 왔고, 그 중심에 이동권과 같은 삶의 환경들이 도사리고 있다. 평생학습사회를 얘기하지만 한국의 450만의 장애인 중에 초등학교만 다닌 사람이 60%나 된다고 한다. 그나마의 교육도 이른바 ‘시설’ 안에서만 이루어지거나, ‘비정상을 정상으로’ 맞추려는 식이다. 그것이 ‘재활(再活)’의 개념이다. 장애인이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정상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훈련 또는 재훈련을 통하여 장애인의 기능적 능력을 가능한 한 최고수준에 달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 책에는 그 재활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를 묘사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1년이 지나도 크게 진전되지 않는 학생들을 보며 가슴을 칠 때에도 교사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한 사람이 기역니은을 배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지를. 상대방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로도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를. J는 그 뒤로도 몇 명의 교사를 더 거친 후에야 비로소 동네 이발소의 간판을 읽게 되었다. … 어느 날 이발소 옆을 지나가는데 “이……발……소…… 이.발.소? 어! 이발소다, 이발소! 내가 아는 거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몇 년을 그 앞을 지나며 늘 보던 글자였는데 그 뜻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재미있고 신나고 기특했다. 처음에는 글을 배우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해도 해도 도무지 늘지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끝내 한글을 못 읽을 줄 알았다. 몇 해 전에는 슬럼프도 심하게 찾아와서 다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그때 포기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장애인이 훈련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 재활이라면, ‘자립생활’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했다. 18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산물로, 장애인 스스로 세상을, 사회를 바꾸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많은 중증장애인들은 평생 재활훈련을 해도 혼자 밥 먹고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 기본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훈련이 아니라 활동보조인서비스였다. 그것만 된다면 수용시설에 들어가지 않고도 자유로운 삶이 가능했다. 2005년 중증장애인 39명이 삭발을 하고 한강대교부터 노들섬까지 기어가는 시위를 했다. 7천억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계획이 발표되고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이 15억에서 절반으로 삭감된 때였다. 이 또한 도화선이 되어 2007년 활동보조서비스는 전국에 실시된다. 활동보조인은 당시 시급을 받고 장애인과 약속된 관계 속에서 서로 상호 의무와 권리를 다했다. 장애인도 활동보조인도 미안하거나 불편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활동보조서비스 사업의 규모는 장애인 복지 예산 2조 중 약 8할이 되는 5천 6백억에 이른다.

교육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과연 이보다 더 생생하고 모범적인 시민교육의 현장이 있을 수 있을까. 노들야학이 만일 “변화시켜 낼 수 있는 당사자 스스로의 생각과 실천의 힘을 기르기 위한 교육사업 및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설립목적으로 삼지 않았다면, 그리고 “우리의 교육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세상을 바꾸는 집단적인 실천과 분리되어 진다면, '보다 나은 대안적 세상'을 향한 우리의 가치는 사라지고 '시혜'와 '기능'의 껍질로 남겨질 것입니다.”라는 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시민학습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3.

뿐만이 아니다. 인권운동에서 ‘목격’은 배움의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이를테면 노들야학의 교사들은 처음에 장애인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동행을 해야만 했는데, 이렇게 같이 이동을 하며 주변에 도움을 구하게 되는 과정에서 현실을 ‘같이’ 보게 되기 때문이다.

 

 

“… J의 한글이 늘어가는 속도는 J의 우주가 확장되는 속도보다 결코 빠를 수 없었다. 자음과 모음을 충실히 익혀야만 ‘이발소’를 읽을 수 있듯이 J의 좁은 우주를 넓히기 위해서는 경험과 관계가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야만 했다. … 교사가 학생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었다면 그것은 다만 그 시간을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는 것이었으리라. J의 한글 실력이 천천히 그러나 틀림없이 늘어갔던 것처럼 교사들도 천천히 그러나 진실하게 J를 배워 나갔다.” 

 

 

아침에 깨어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하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일상. 노들에서는 그 일상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부였고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 일상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과 수업 그 자체였다. “이 수업이 아니었더라면” “명왕성만큼이나 멀리 있었던” 서로가 만나는 일이 없었을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득하게 달랐고 서로에게 처음인 존재들이 서로에게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이렇게 선명하게 보여준 예가 있을까.

소수자에게는 인식론적 특권이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소수자의 옆에서 동행의 경험을 한 이에게도 엄청난 세계가 열린다. 우리는, 대개의 평생학습의 현장은 그 기회를 아쉽게도 그냥 날려버리고 있다. 직원이 아닌, 학습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에 의해 기획되는 북콘서트 <목소리>의 기획의도를 다시 상기해본다.

 

 

“… 삶을 집어삼키는 고통 속에서 세상과 떨어져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숨소리와 공명하려고 합니다. 우리도 그들의 일부니까요.”

 

 

북콘서트 시민기획단 나침반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평생학습 딜레마  평생학습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학습관 안팎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발신하고 관련 문제를 평생학습 종사자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현업 종사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과 할 이야기가 많다. 독자들과 열린 마음으로 평생학습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백현주


 

백현주
수원시평생학습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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