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장의 종횡무진]

죽음의 알갱이에 안전한 기준은 없다 - 미세 플라스틱의 역습

이슈 l Writer_정성원 upload_관리자 posted_Oct 23, 2017

‘특제 생리대 마스크’와 불안한 ‘안전기준’

 

80년대 대학은 팽팽한 화살처럼 늘 긴장에 휩싸여 있었다. ‘물러가라’는 외침과 ‘잡아가겠다’는 으름장은 결국 최루탄과 ‘지랄탄’으로 서둘러 봉합되었고, 그 고통스런 흰 분말가루의 잔재는 교정 곳곳에 그리고 백양나무 잎사귀에 머물다 바람결에 다시 학생들의 눈과 코와 입을 무시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자구책으로 랩을 이용해 눈을 보호하기도 하고 코 주변에 치약을 바르기도 했으며 어떤 학생은 생리대를 꿰매 만든 ‘특제 마스크’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고 당시에 비해 생리대의 두께도 무척 얇아졌다고 한다. 얇으면서도 기능이 뛰어나려면 그만큼의 신물질이 있어야 하는데 그 새로운 기술의 많은 부분은 화학물질의 발견에 기인한 것이다. 지금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돼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가습기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조류독감과 살충제와 계란에 이어 생리대 문제까지, 사람의 생명과 직접 연관 있는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분노 수위가 올라가자 관련 업계에서는 ‘명확한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준수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20세기 이후 인간이 만든 화학물질의 종류가 약 10만종이 넘고 매년 수천 종이 개발된다고 한다. 오늘 아침 맨살을 댄 변기, 최소한의 품위를 위해 바른 로션, 출근길에 올라 탄 버스, 친구와의 통화를 위해 쥔 핸드폰, 업무를 보고 있는 컴퓨터, 내 신체를 감싸고 있는 신발과 의류.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인공물품 중에 화학물질이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높은 농도의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관리 감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기준’ ‘허용기준’ 안쪽에 포함되면 정말 안전하기는 한 건가. 생리대 문제가 안전기준이 없어서 발생한 문제인 것인가.

기계의 자동 온도조절장치는 온도 센서의 감지를 통해 냉난방을 번갈아가면서 가동한다. 인체도 자연복구력이 있기에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그런데 미세한 변화는 센서가 제대로 감지 못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매우 낮은 농도의 물질이 스멀스멀 들어오면 인체가 즉각 항전의 태세를 갖추지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런 저강도 화학물질이 1~2개라면 인체가 어찌 해 볼 수는 있겠지만 수백, 수천의 물질이 경계심을 허물고 들어와 시나브로 쌓여간다면? 인체는 어느 순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 틀림없다. 화학물질을 24시간 365일 호흡하고 접촉하고 비비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안전기준’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따라서 수만의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 하나하나를 베이스로 안전기준을 따지고 검사하고 화내고 시위하고 사과하고 이내 잦아들고....어쩌면 이것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참치 카나페 하나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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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플라스틱 카나페 展

 

 

인간을 위협하는 화학물질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먹거리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긴 매한가지. 지난 9월 자그마한 전시회가 하나 열렸다. 이름하여 <마이크로 플라스틱 카나페>. 카나페는 식빵이나 크래커 위에 고기·치즈·달걀 따위를 얹어 작고 예쁘게 만든 요리를 말하는데 이 전시에서는 카나페의 재료가 마이크로 플라스틱이다. 버려진 플라스틱이 침출되어 미세한 입자형태로 바다를 부유하면서 플랑크톤 내부로 침투하게 되고 이후 먹이사슬 관계에 따라 참치까지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참치에 기막힌 센서가 있어 ‘허용기준’ 이내로만 흡수할리는 만무하고 인간은 다시 참치의 배를 갈라 안전기준을 논할 것인가. 전시 기획자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먹거리를 비틀어 전시함으로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전시의 배경이 퍽 특이했다. 정다운 씨의 이야기다.

 

“궁금증의 시작은 테이크아웃 컵보다 ‘쓰레기가 어떻게 되는 건지’였다. 작업실에서는 당연히 분리수거를 했는데 집에서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았다. 집과 작업실 모두 마포구인데 어떻게 같은 구에서도 한 곳은 분리수거를, 한 곳은 그냥 버리는 쓰레기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분리수거를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를 생각하게 되었고, 안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봐도 원론적인 이야기만 있고 어떻게 된다는 이야기는 없어서 '따라가 보면 이 것을 볼 수 있을까?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재활용작업장을 찾아다녔다.”

 

분리수거 품목의 대명사는 단연 플라스틱이다. 쉽게 사용하는 일회용 컵에 대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사람은 죄책감 비스무래 한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중에 이 컵이 어떤 과정을 거쳐 최후를 맞이할지에 관심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나 될까? 게다가 직접 팔 걷어 부치고 직접 알아 볼 사람은? 할 일 많은 세상이니 딴 생각 하기 어렵고 게다가 돈도 안 되는 데 자기 발품 파는 일, 여간해선 쉽지 않다.

 

“예전부터 환경 쪽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답답함, 막연함이 있었다.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궁금했지만 테이크아웃 컵이 워낙 많이 버려지니까 이게 다 어떻게 되는 건지, 다 재활용이 되기는 하는 건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혼자였으면 하기 힘들었을텐데 몇몇 친구가 자기도 궁금하다고 동조를 해서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올 봄부터 여름까지 정다운 씨는 관련 업체 4~5곳을 방문해서 직접 과정을 살펴보고 기록했다. 하지만 업체들이 ‘어서 옵쇼’ 환영할리 만무하고 연락도 제대로 안되어 그들의 ‘선처’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발로 일군 기록, 그 과정에서의 자료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작은 전시회를 연 것이다. 정다운 씨의 설명을 한정된 지면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의미 있는 내용을 추려서 정리해 본다.

 

 

PET 물질계에도 카스트 제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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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플라스틱 카나페> 전시.

플라스틱을 품종을 개량해 만들었고 도시에서 수확할 수 있는 것으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석유를 정제할 때 발생하는 화학물질 중에 ’나프타(naphtha)‘가 있는데 워낙 연료를 많이 사용하니 나프타의 양도 그만큼 증가하게 된다. 나프타를 활용해서 만든 것이 플라스틱인데 이게 정말 필요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생기니까 만들고, 너무 싸니까 플라스틱으로 만들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 이걸로 대체를 하게 된 것 같다. 이 나프타라는 것에서 ’펠렛(pellet)’이라는 형태가 생기고 그것이 ‘PET, PP, PS’ 라는 종류로 나뉜다. 헌데 이렇게 구분되다 보니 재활용이 어렵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최초 단계에서 재질의 단일화 여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수병 페트는 장섬유라서 길지만 커피나 음료 일회용 컵들은 좀 더 얇고 나중에 재활용을 위해서 녹일 때도 이것들은 뚝뚝 끊긴다고 한다. 일상에서는 PET가 제일 많이 사용되는데 만져보면 PET보다 PS가 강도가 훨씬 낮다. 생과일 전문점 쥬시같은 경우는 PP를 쓰는데 뚜껑과 본체의 재질이 각각 다르다. 그런데 빨대는 주로 PP를 사용한다. 한 가지 컵에서도 종류가 다 다르니 선별과정에서 제대로 작업할 수가 없다. 쏟아지는 물량을 소수의 인원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재질의 단일화를 위한 세심한 구분은 언감생심이고 생수병 페트에 다른 하급물질이 섞여들지 않도록 하기에도 급급한 현실이다.

 

 

아파트는 주택과 다른가

 

아파트 등지에서 분리배출을 하면 ‘선별장’으로 간다. 그러나 재활용이 되는지의 여부에 따른 세밀한 분리가 아니라 돈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지나가는 것을 툭툭 건져낸다. 여기서 나오는 잔재물들은 시멘트 공장 같은 데로 가서 연료로 쓰거나 일부는 매립을 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선별장에 따라서 다르다고 한다.

지자체와 선별장이 연결된 곳은 바로 매립이나 아예 시멘트에 섞인다. 그 중 섞이지 않은 플라스틱은 일부 재활용 업체로 가길래 한번 가봤더니, 큰 업체들은 대부분 하는 일이 색깔을 구분하는 거더라. 사이다는 초록, 맥주는 갈색 뭐 이런 식으로 분류한 후 그것들을 다 세척해 플레이크 단위까지 만든다. 이것마저도 다 PET를 취급하는 것이어서 물어봤더니 PS나 PP가 기술적으로 재활용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PET의 물량이 가장 많기 때문에 공장의 시스템도 PET 위주로 되어 있다고 한다. PS와 PP를 취급하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선별 단계에서도 굳이 그것들을 위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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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반적인 플라스틱 컵들이 어떻게 버려지고 재활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웬만해선 플라스틱을 당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옷까지는 안 만드는데, 외국의 경우에는 유니폼 등 옷 종류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세척할 때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나오는 거다. 폴리 재질의 옷이 다 거기에 해당한다. 털거나 세척해도 공기 중으로 아주 미세한 입자들이 나오고, 소각을 해도 비산재라는 제일 안 좋은 물질이 남는데 이건 나중에 매립을 해도 영향이 남아 있다. 매립을 했을 때 비가 오면 침출수의 형태로 나오기도 하고. 그게 물 자체에 그대로 존재하거나 바다 생물이 먹어서 결국 가장 큰 물고기들은 많은 미세 플라스틱을 가지고 있기에 참치같은 어류에는 굉장히 많다고 한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플라스틱은 웬만하면 사라지지 않고 바다에 잠복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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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우거나 매립하거나 재활용품을 만들어도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 곁에 남아있다.

전시는 플라스틱이 생태계에 잠복해 먹이사슬을 따라 결국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것을

덤덤하지만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정다운 씨와 동료들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무엇을 나누고 싶었을까

 

“그냥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대안까지 제시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부분은 힘든 것 같다. 우리가 쓰레기를 버렸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공유하고 싶었다. 생수병도 너무 많이 버리는데 사람들은 재활용 마크가 있으니 안심하고 쉽게 버리는 것도 있을 것이다. 실상 이게 재활용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막연하게 재활용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실상 다녀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다면 세 개 쓸 것 두 개로라도 줄이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처음 선별장에 갈 때는 분리수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가이드를 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라면봉지만 해도 ‘일반 쓰레기에 버려야 한다’와 ‘비닐에 버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렇게 애매하게 잘 모르는 것들이 있어서 직접 눈으로 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지를 가이드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과정을 보고 나니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분리수거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결국에는 다 섞이니까 지금의 현실 안에서는 그냥 줄이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스템, 정책적으로 더 나아져야겠지만.”

 

 

정다운 삶의 또 다른 모습, <프로젝트 하다>

 

정다운 씨를 지켜본 것은 일 년이 넘은 듯하다. 그는 LG전자 디자인팀에서 6년을 근무하고 그 후 에이전시로 옮겨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친환경 청첩장 브랜드 <이베카> 운영자이다. 마포구 성수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데 퇴근 이후에는 당연히 사무실 공간이 비게 된다. 헌데 사무실을 꼭 낮에만 사용하라는 법이 없잖은가. 해서 그는 밤에는 다른 이가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했다. 낮에는 작업실 밤에는 가게. ‘오, 이거 재미있는 콘셉트인걸. 낮과 밤이 다른 공간. 공간의 공유이자 공간의 변신이라’. 나는 웹진의 글감으로 킵해두고 그에게 페북 친구를 신청했다.

 

“하는 프로젝트들이 다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또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베카는 디자인을 전공해서 관련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고 <프로젝트 하다>는 제 작업실을 공유공간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뭔가를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안 쓰는 시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도 그 공간에서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보틀카페였다. 일회용품을 전혀 안 쓰는 카페가 가능한지 궁금해서 유리병에 담아 보증금을 받아 판매하고, 병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드리는 후에 세척·살균해서 재사용하는 것이었다. 손님이 많은 큰 카페에서는 힘들겠지만 동네의 작은 카페나 회사 앞 카페의 경우에는 병을 돌려주러 오는 게 쉬울 수 있을 것 같아 시도해보았다. 이런 관심들이 오늘까지 이어져 온 거다. 그런 것에 관심이 있으니 작업실에서 일회용품을 안 쓰는 시도도 해보고, 그러다 보니 이 많은 테이크아웃 컵들은 다 어떻게 되는 거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보틀카페는 생각보다 사람들의 거부감이 크지 않더라. 저희는 손님들이 ‘뭐야?’ 이럴 줄 알았는데, 심각하다고 공감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걸 하다 보니 내가 작업실에서 몇 개 안 쓰는 것보다는 시스템적으로 정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실 옆 숯불갈비 집에는 맥주병 수거차량이 와서 맥주병을 가져가고 그것을 공장에서 세척한 후에 다시 맥주를 담아 판매 한다. 반면 커피도 굉장히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테이크아웃 컵은 이렇게 하는 게 불가능한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수거 후 살균·세척을 잘 하고 카페가 그런 과정으로 인한 불편함을 안 느낄 수 있다면 몇 개 안되는 카페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카페는 팝업으로 했었고 지금은 이 자체가 서비스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보틀팩토리를 준비 중이다. ‘우리동네유리병세척소’ 라고 이름을 지었다. 딱히 의도했다기보다 계속 연결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보틀카페를 운영해보니 테이크아웃 컵 쓰레기에도 민감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찾아 봤지만 나오는 정보는 뻔해서, 실제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고 싶은 게 지속이 되어서 올해 전시까지 하게 된 거다.

 

 

정성원: 그동안 <프로젝트 하다>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것 같다. 초보들도 있었고 전문적으로 해보려는 사람도 있었을 거고, 경험삼아 해보는 사람도 있었을 거고. 이 공간을 공유한다는 개념으로 시작을 한 건가?

정다운: 처음에는 공간을 공유한다기보다 주변 친구들 때문에 시작했다. 아티스트 친구들이 주변에 많은데 그 친구들이 음식점에서 알바를 해서인지 음식을 잘하더라. 그 친구들이 홍대에서 가게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 선뜻 해보라는 말이 안 나왔다. 홍대 앞에 가게를 차린다는 게 권리금부터 너무 큰일이고, 쉽게 시작하기도 어려우니까.

작업실이 있는 골목에는 술집이 많아서 낮에는 항상 문이 닫혀있다. 주변에는 뭐라도 작게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공간은 밤에만 잠깐 쓰니까, 누군가가 이런 공간을 낮에만 잠깐 쓰는 것은 어떨까를 생각했다. 서울에서 공간을 얻는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라서 내 작업실에서라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도 잘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성원: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정다운: 시작한지 한 2년 반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돼서 작업실로 쓰는 것보다 가게하시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저녁 7시 30분 정도부터? 평일에 하시는 분들은 좀 늦게 시작하시고 새벽 4시까지 하신다. 가게 시간도 원하는 대로 운영한다.

 

정성원: 처음에는 친구를 생각한 선한 의도였는데 그것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있었던 거다. 본인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 것 같다. 일종의 확장인데 2년 반 진행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정다운: 생각보다 공간이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쉽게 ‘뭐든 해봐’라고 말하지만 하고 싶어 하는 의지와 할 수 있는 현실은 다르다. 공간을 갖는 것 이외에도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그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 많지 않다. <프로젝트 하다>는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곳이고 문턱이 낮아서 처음 경험이 되어줄 수 있는 토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곳이 필요하다는 분도 있었고 해보니 좋았다는 분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실제로 해본 후에 가게를 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냥 취미생활이 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평일에 다른 일 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 식당을 하는 것도 일상의 활력이 되는 것 같다. 식당을 해보고 싶지만 일주일 내내 하는 것은 다른 얘기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상관없고, 정말 작은 공간이지만 다양하게 쓰이는 것이 좋더라.

 

정성원: 오전부터 새벽까지 한 공간을 알차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도 일종의 전전세인데 혹시 집 주인은 별 말 안하시나?

정다운: 바로 옆 숯불갈비집이 건물주인데 처음에는 오해를 하셔서 낮에도 쓰고 밤에도 있고 어떤 날은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고, 아침에 일찍 나오니까 떼돈을 버는 줄 아시더라.(웃음) 그래서 설명을 드렸더니 반대하거나 그러지는 않으셨다.

처음에는 젊은 분들, 경험이 없는 분들이 쉽게 해보기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몇 번은 나이 드신 분들도 찾아오셨다. 오히려 은퇴하신 분들이 찾아오시기도 했다. 그 분은 돈 벌 목적은 아니었고 음식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은퇴 후 시간은 많고, 뭔가를 하고 싶기는 한데 식당을 차리고 싶지는 않고.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해도 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오시기도 하더라. 이게 나이 드신 분들에게도 활력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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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칭 포 슈가 맨>

 

우연찮게 흘러 들어간 노래로 인해 무명의 미국 가수가 남아공에서는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그 가수가 누구인지, 살아 있기나 한 건지, 어떻게 앨범을 제작했는지, 그 어떠한 정보도 없다. 이에 남아공 여성 2명이 가사만을 단서로 그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영화 <써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

영화와는 다르게 슈퍼스타가 아닌 쓰레기, 그러나 인간에게 초울트라 위협요인이 되고 있는 화학물질 플라스틱. 이것이 어떤 경로를 거쳐 처리가 되는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고 싶어 탐험을 떠났다. 영화처럼 반전도, 기막힌 OST도 없지만 반기지 않는 처리장을 찾아 기록하고 찍고 질문했다. 그리고 여느 곳과는 달리 전시장은 검박했고 당위성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전시물도 없었다. 길 모퉁이 우체통처럼 그저 무심히 존재할 뿐.

 

<써칭 포 정다운>

 

처음 이 취재의 핵심 주제는 ‘쓰레기, 환경’이 아니라 ‘무엇이 궁금증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게 했을까’였다. 돌아 온 대답은 ‘친구들’이었고 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심상한 말이긴 해도 세상을 변화시켜 온 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풍경이 걷히고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인 시절 하루 3잔씩 마시던 커피. 오후가 되면 쓰레기통이 차고 넘쳐 그 위로 쌓여만 가고 급기야 시체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플라스틱 컵. 그런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온 몸으로 육박해 들어오는 순간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생겨 이윽고 환경에 대한 관심과 그린디자인 공부로 이어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치 안에서 풀어내기 시작했다.

친환경 청첩장, 안락한 둥지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관심과 취향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8평 작은 공간에서 ‘보틀카페’를 실험하면서 영역을 확장해 나갔고 공간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도 시도하고 있다. 공간을 구획해서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일반적 형태가 아닌 시간에 따른 공간의 전일적 공유라는 색다른 시도. 그것도 요일별로 다르다니. 난생 처음 접한 일이라 나의 뇌는 이 정보를 어느 폴더에 분류를 해야 할지 무척 당황하고 있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보면 진화는 종의 다양화이다. 허나 한 사회의 진보도 유사하다. 서로 다른 개성과 특질에 따라 흑백을 찢고 당당하게 총천연색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 게다가 공공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면 금상첨화이리라. 이런 삶들을 채록하고 기록하는 아카이브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마 <써칭 포 정다운>도 있으리라. 그때는 나의 뇌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참고 문헌>

참여사회 2017. 10. <이 시대 케미포비아들을 위한 조언> 이덕희.

 

 

 


정관장의 종횡무진 평생학습계의 아방가디스트, 수원시평생학습관의 선장인 정성원이 학습의 관점에서 보는 한국 사회 이야기. 평생'학습'에서 평생'삶'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의심하고 질문하고 격려한다.


 

정성원
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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