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사의 생존법]

학교가 무엇을 할까

칼럼 l Writer_김인규 upload_관리자 posted_Nov 06, 2017

아동문예에 실린 동시 한편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떡시루

 

사락사락 내린 눈

장독 위에 떡시루

 

아이들이 놀러 와

잘 익었나?

 

손끝으로 콕콕

눌러보고 간 뒤

 

바람이 후후

한 접시 담아가고

 

남아 있는 떡시루

별들이 반짝반짝

눈요기해요.

 

 

요즘 아이들은 어찌 읽을지 상상은 가지 않는데, 어린 시절 이를 경험한 세대들에게는 그림처럼 생생하게 다가 올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65세인데 금년 아동문예지를 통해 등단을 하였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고, 따로 문학 공부는커녕 그 이상의 어떤 교육기회를 접해보지 못했던 그였다. 빈곤한 가계를 이끄느라 늘 이런 저런 노동에 파묻혀 한평생을 살아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생계를 위해 모 기관의 아이 돌보미 활동을 하게 되면서 아동문학 동인 활동을 하고 있는 한 동료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 동인 활동에 참여하면서 급기야 아동문예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그는 학교를 비롯해 교육의 기회를 거의 받아보지 못했으나 훌륭한 시인이 되었다. 나는 그의 동시 몇 편을 읽으면서 문득 학교와 교육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게 되었다. 그는 초등교육을 통해서 아마도 동시라는 문학 형식을 접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학교에서 시를 쓰고 즐기는 재능을 익힌 것은 아니었으리라. 오랜 세월 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으니... 그렇지만 최근 만나게 된 문학동인을 통해 문학작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사회적 시스템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그에게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이 되었으리라. 다시 말한다면 무엇에 흥미를 가지고 열중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그런 사회적 맥락에 쳐 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오랜 세월 시를 쓰는 일과 관계없이 살아왔던 것은 아마도 그런 세계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교는 그에게 동시라는 문학 장르를 알게 하는 소중한 역할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시를 쓸 수 있게 해준 것은 아니다.

 

최근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게 된 한 젊은이를 알고 있다. 대학에서 전공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으며, 그렇다고 별도의 교육기관에서 그 일을 접해 본 적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것저것 할 일을 찾아 헤매다가 웹 제작에 관여하면서 자신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혹은 대학 때까지도 전혀 그런 쪽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재능의 단서가 있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 시간에 가끔 혼자 힘으로 식을 만들어 문제를 풀기도 했는데, 답이 맞았음에도 선생님은 식이 틀렸다는 이유로 오답처리를 하였다고 한다. 수학시간에 선생님은 늘 알려준 식으로 문제를 풀라고 했지만, 자신은 그것에 흥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학 점수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가끔은 스스로 식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경험하고는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젊은이는 그것이 재능이기나 한 것인지, 혹은 그것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수학시간에 별로 인정받지 못했던 그 학생이 지금은 함수와 변수 등의 수학적 과제에 빠져 열정적으로 프로그래밍 일을 하고 있다. 사회에 나와서 우연히 그런 계기를 만난 것이다.

학교는 이 젊은이가 자기 재능을 찾는데 어떤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수학문제를 풀어볼 기회를 주기는 했다. 노년에 등단을 한 시인에게 있어서도 학교가 그의 재능을 길러준 것은 아니다. 동시라는 문학 장르를 알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면 동시 말고도 다른 시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보면 학교가 하는 가장 큰 일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적 형식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진 재능이 의미를 가지는 방식을 만날 수 있다면 또한 바람직할 것이다. 그랬다면 수학식을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꼈던 젊은이가 그 즐거움의 가치를 학교에서 배우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생님은 그것을 유용한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다만 입시에서 손쉽고도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어내는 재능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오직 입시와 같은 사회적 맥락만이 유통되는 그런 학교에서는 그의 재능은 무용한 것이었던 셈이다. 학교에서 시를 배우지만, 시 또한 문제를 푸는데만 유용한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면, 시를 쓰는 일이 가진 가치나 사회적 맥락에 접근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 노시인은 늦게나마 문학 동호인을 만나 그것을 해결할 기회를 얻었다.

 

사람들은 학교가 사람의 어떤 재능이나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없는 능력이나 재능도 갖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학교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앞의 사례에서처럼 학교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 일을 잘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재능이란 그것이 가치를 지니게 되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만날 때 비로소 재능으로 유효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들은 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이다. 물론 교육을 통해서 그것을 더욱 훈련하고 단련을 할 수 있을지언정 이미 그들에게 있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을 기르고 단련하고자 하는 의지나 힘은 그것이 가치있게 여겨지는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영 그런 것을 만날 수 없다면 그것은 재능이 아닌 셈이다.

그렇게 보면 학교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니 무엇을 해야 할까.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김교사의 생존법 김인규는 미술교사였고 학교와 교실을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미술작가이다. 30여 년을 매달려 온 그의 작품 '교실'은 아이들과 교사가 이루는 뻔한 세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가 목격하고 만들어 온 교실과 교육 이야기는 학습기획의 본질과 핵심으로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김인규
前 서천고등학교 미술교사. 30년 가까이 미술교사를 하고 살았다. 미술교육을 하면서도 예술가와 교사의 정체성 사이에서 그리고 학교가 어떤 곳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교사와 학생은 누구이고 어떤 관계인지 고민해 왔다. 저서로는 『안면도가 우리 학교야』(디딤돌,2005), 역서로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지형그리기』(문화과학사,2010), 『장소 특정적 미술』(현실문화,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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