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 딜레마]

우리는 진정 보험보다 힘이 되는 배움을 기획하고 있는가

이슈 l Writer_백현주 upload_관리자 posted_Dec 04, 2017

1.

“1, 2년 단위로 집을 옮겨야만 한다면 한 발 뒤로. 4대 보험을 못 받는다면 한 발 뒤로. 가족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 당했다면, 결혼 혹은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두렵다면, 나이 때문에 무시당한 적이 있다면, 내 식습관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다면, 공과금을 연체해본 적 있다면,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어야 했다면, 자신의 성별·장애·신체 등이 미디어에서 희화화 된 적 있다면… 한 발 뒤로. 공공장소에서 조롱이나 시선을 받지 않고 애인과 스킨십 할 수 있다면, 근처 어떤 화장실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한 발 앞으로.”

 

소셜실험-청년들에게 당신은 보통사람인지를 물었다 / 소셜실험 '너라면?'

<출처 : SBS 뉴스 >

 

연말을 한 달여 앞두고 이미 올봄에 방영되었던 스브스뉴스 한편을 보게 되었다. 같은 출발선상에 나란히 서 있는 청년 21명에게 56개의 질문을 던지면,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뒤로’ 가야 하는 지극히 간단한 실험의 영상이었다. 질문도 아주 익숙한 문제들이었고 답변도 예상 가능했지만 그 결과, 동일한 출발선상으로부터 앞뒤로 포진하게 된 청년들의 위치가 아주 강렬하게 마음을 때렸다.

 

“막상 맨 앞에 있으니까 속이 더 답답해지고, 반면에 제 등을 보고 계실 분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런 생각을….”

 

“…질문을 받았을 때 더 뒤로 갈 수 없는 경우도 있었어요. 제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여성과 남성 이분법에 해당되지 않는 젠더 정체성), 지정성별 여성이면서 성소수자 활동가로 살고 있는데 전혀 나에 대한 인식이 없고 나에 대한 감수성이 없고, 나를 위한 법제화가 없는 상황에서 당연한 실험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기준선에서 조금 뒤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뒤에 있네요.”

 

“비장애인이기도 하고 소수자분들과 다르게 특권층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학원생이면서 제 앞으로 빚이 3천만 원 정도 있거든요. 이게 다 학자금 대출 빚이고 교육 관련된 정책이 모두 대학에 편중돼 있거든요. 저같이 돈이 없어도 대학원에서 교육을 계속 받고 싶은 사람도 있는데…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고…”

 

모두 같은 곳에서 출발했지만 질문이 시작되면서 계속 차이가 벌어지고 결국엔 사회적인 특권과 부당함의 위치를 너무 쉽고 빠르게 한눈에 볼 수 있게 된다. 덕분에 그 충격이나 메시지가 아주 강렬하게 전달되니,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어떤 것들은 사실 특권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행동이나 생각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당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걸 쉽게 깨닫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그 차이는 쉽게 메우기 힘들다는 것, 사회적으로 그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해도 이 실험과 영상의 교육적 효과는 대단해보인다.

미국에서는 사회복지 영역에서 이미 일반화된 ‘privilege walk’라는 실험방식을 혁신적 미디어그룹인 버즈피드(Buzz Feed)에서 차용하여 영상으로 만든 것을 스브스뉴스가 한국버전으로 다시 각색한 것인데, 한해가 마무리되는 성찰의 분위기 탓인지 이 영상을 통해 “그러면 우리는 어떠했나”는 되돌아온 질문 앞에 서게 됐다.

 

2.

첫 번째 질문은 이런 거다. '사람들이 출발선 앞으로 나오거나 뒤로 물러서게 되는 과정에, 그리고 그 결과에 학습관은, 평생학습은 과연 어떠한 기여를 하였고 또 할 수 있는 것인가'

말하자면 이 한 번의 실험과 이 한편의 영상으로도 전달할 수 있었던 메시지-내가 어디에 있고 내 이웃은 어떠한지 깨달아 각성된 개인이자 이웃으로 존재하길 애쓰고, 부당한 현재에 대해서는 개선을 위해서 연대하고 행동하라는 간단한 메시지가 우리 평생학습의 틀 속에서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혹은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묻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출반선 뒷줄에 서 있는 자들에게 배움이, 평생학습이 든든한 ‘빽=배경=힘’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 자문하는 것이다.

물론 평생교육이라는 제도나 그 제도를 실어 나르는 우리와 같은 기관이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거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제도나 장치가 있든 그것이 삶을 구원할 수 있을지는 최종적으로 그 삶의 주인인 개인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꿔볼 수 있다. '저 뒷줄에 있는 사람들에게 평생학습이 어떤 식으로든 한 발 앞으로 나오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적이 있는지? 앞줄에 있는 사람이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대신, 앞줄의 사람이 뒷줄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같은 선상에 서도록 독려한 적은 있는지?'

그런 노력이 없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또한 지금 평생학습의 현장에 그런 노력은 아주 드물게 존재한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은 배움의 ‘환희’를 이야기 하지만 사실 나는 배움이란 스스로와 세계가 낱낱이 파헤쳐지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어렵고도 아픈 순간의 동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특권이나 이웃이 겪는 부당함을 인지하고 비난하기는 쉬워도, 나의 특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이웃이 겪는 부당함에 내가 기여한 것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특권에 안주하는 대신 항상 깨어있으려면, 내 자신과 주변사람들의 태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세계를 형성하는 온갖 부당한 것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바꾸라고 외치려면 얼마나 피곤하고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따라오지 않는, 말하자면 성찰이 부재한 많은 일들에 ‘배움’ 혹은 ‘교육’ ‘학습’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게 오늘의 성인학습, 평생교육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활동들의 현실이다. 그곳에 과연 변화와 성장이 존재할 수 있을까, 더 나아질 수 있게 하는 ‘힘’이 자라날 수 있을까?

많은 인문학 강좌들이 그러한 목표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수강신청과 꼬박꼬박 출석부에 체크하는 것으로 그것이 확보될 리는 만무하다. 어쩌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결국 우리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한 사회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놓쳐버린 탓이 아닐까. 그 대신 학습관과 같은 기관의 프로그램을 몇 명이 이용했는지 그 숫자가 얼마나 늘고 있는지와 같은 형식적인 지표들에 우리 스스로 완벽하게 적응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이 때 고려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사람들이 올지 안 올지, 참여할지 안할지 뿐이고(물론 그것은 중요하다), 그들에게 실로 어떤 힘을 기르도록 할지는 무시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질문을 담은 현장들이 축적되고 그것에 의미부여하는 전문가들의 해석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방향을 잃기 쉬워진다. 더욱이 이미 여기저기 넘쳐나는 학습의 도구와 장치들, 미디어들은 굳이 공공기관, 평생학습관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삶에서 충분히 그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것과 경쟁할 수도 뛰어넘을 수도 없는 지지부진한 현장에서 종사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내려면 이 질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3.

이 영상을 보면서 생기는 두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 ‘평생학습의 기획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올 한해 본지의 [평생학습 딜레마] 꼭지는 그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지만  변죽만 울리다 만 느낌이다. 그래도 딜레마로 다룬 질문들 몇가지는 여전히 유효해보인다.

기획의 기술은 분야마다 현장마다 비슷하기도 하고 아주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기획자의 태로라 함은 그것이 교육기획이든, 문화기획이든, 출판기획이든, 선거기획이든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경험적으로 느낀다. 내가 자부심을 갖고 성장해왔던 문화예술계의 존경받는 어른이시자 1세대 기획자인 故강준혁 선생님이 남기신 ‘기획자의 길’로 이 부족한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여기 '예술(가)'이란 단어 대신 '시민'이나 '학습(자)'를 집어넣는다면 조금 앞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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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강준혁 교수의 <기획자의 길>

 

 

 

 

                                              (평생교육에 적용해 본) 기획자의 길

 

_배우는 자를 사랑하라. 그리고  존중하고 아껴라.

 

_자신의 기획이 배움을 훼손시키고 배우는 자를 소모시키는 일이 되지 않게 하라.

 

_기획하고자 하는 일을 완벽히 이해하고 가치를 인식하라.

  모든 손실은 분명하지 않은 의도에서 비롯된다.

 

_기획함에 있어 사회와 이웃, 그리고 세계에 이익이 되게 하라.

  이를 버릴 때부터 길은 비뚤어지게 마련이다.

 

_자신의 발전을 항상 꾀하라. 그러나 지식에 빠지지는 마라.

  지식이 부족하면 보충하되 과잉하거든 신중하라.

 

_앞서가는 학습자와 교육자를 가까이 하라. 그러나 무모한 자는 멀리하라.

  앞서감과 무모함이 백지 한 장 차이임을 항시 기억하라.

 

_대중과 목마름을 같이 하라. 대중의 취향을 탓함은 대체로

  질적인 면에서의 결함이나 홍보의 실패를 감추려는 짓이다.

 

_과정을 완벽하게 하라. 실제가 완벽해 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_남이 할 일을 자기가 하려 하지 마라.

 

_매스미디어를 잘 활용하라.

 

 

 

 

 

 

 

 

 

 

 


평생학습 딜레마  평생학습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학습관 안팎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발신하고 관련 문제를 평생학습 종사자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현업 종사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과 할 이야기가 많다. 독자들과 열린 마음으로 평생학습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백현주


 

백현주
수원시평생학습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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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희선 2017.12.07 13:21
    완전 좋은 글입니다. 굿글!
    좋은 시도. 정신을 확 꺠게하는 잘 준비된 것이라는 생각들었습니다.
    다시 또 꼼꼼히 더 읽고 읽어 실천에 옯기려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