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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신 ‘무크(MOOC)’의 한국적 맥락에 대한 단상

칼럼 l Writer_설동준 upload_관리자 posted_Dec 18, 2017

교육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존폐 위기, 혹은 변화의 압박을 받는 영역 중 하나이다. 20세기 후반, 학교에 PC가 보급되고 인터넷망이 보편화되면서 e-learning이라는 용어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고, 2010년을 전후로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모바일 기술과 결합한 smart learning이라는 용어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도 번번이 “교실이 사라질 것이다”, “교사가 사라질 것이다” 등의 말들이 떠돌았다. 어떤 교수는 이런 현상을 두고 “그 많던 learning은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말로 조소하기도 했다. e-learning, m-learning, u-learning, s-learning 등 수식어만 바뀌었을 뿐이지, 수식받는 말인 learning이 사라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2016년, 다보스 포럼發 4차 산업혁명 바람과 구글發 AI 바람이 불면서 교육계에는 또 한 차례 말잔치가 있었다. 2016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열린 교육 관련 학회들 중에서 ‘4차 산업혁명과 교육의 미래’라는 주제를 비껴간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 속에서 나름의 생각을 발표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의 발표도 들으면서 나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보았다. 하나는 인문주의 편향이다. 아무리 기술이 변해도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인간의 감각은 알고리즘으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에, 교육의 궁극적 이상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대개의 경우 인성 교육, 예술 기반 창의성 교육, 체험 교육 등으로 세부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또 다른 하나의 경향은 기술만능주의 편향이다. 기술의 진보가 교육의 비용을 낮추고, 양질의 교육의 민주화를 촉진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 주장 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편향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전자는 시대의 흐름에서 피할 수 없는 화두인 ‘기술’을 직면하지 않고 인문학으로 손쉽게 도피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낭만적 인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후자는 기술을 사회적으로 중립적인 수단으로 본다는 순진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희랍 시절 노예 노동에 기반을 둔 시민 교양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주장인데, 기술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 안일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비판을 제기한다거나, 모두가 침묵했던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미 이것도 편향이고 저것도 편향이라는 것을 짐짓 알만한 시점에서 양비론만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현실의 문제를 마주해야 하고, 현실의 문제가 놓인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최근 그 맥락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일이 있었다.

 

 

교육혁명 무크(MOOC)의 본질

 

미국을 중심으로 명문대학교의 명 강의가 온라인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OCW(open course ware, 온라인 대학교육)라는 것인데, MIT 강의가 동영상 형태로 공개된 것이 초기 이슈를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것이 점점 더 체계화되면서 2012년 전후로 코세라(Coursera), edx, Khan Academy 등의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플랫폼이 뜨기 시작했다. 묵스(MOOCs) 혹은 무크(MOOC)라 불리는 대규모 오픈 온라인 교육 플랫폼들인데, 최근 3~4년 사이 고등교육, 직업교육, 평생교육 등에서 교육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한국도 IT강국으로 이런 흐름에 뒤쳐질 수 없어 2015년부터 K-MOOC라는 플랫폼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다수 대학들이 강의를 제공하면서 현재는 570개 정도의 수업이 개설되어 있다.

 

무크가 소위 ‘인강’으로 알려진 기존 e-learning과 근본적으로 다른지, 그래서 그것이 정말로 교육의 새로운 흐름이고 혁신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내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연구자 그룹에서도 그런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온라인 학습 공간에서 학습자 간의 상호작용이었다. 기존의 e-learning이 매스미디어(mass media)처럼 강사에서 학생으로 일방향적 지식이 전달되는 플랫폼이라면, 무크는 상대적으로 교수자와 학습자, 학습자와 학습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과정에서 지식의 내재화와 학습이 일어난다는 것이 차이라고 보았다. 몇몇 무크 플랫폼에 대해 연구를 해보니 이런 의미가 어느 정도 발견이 되었고, 그 속에서 상호작용의 매개자로서의 TA(Teaching Assistant)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무크 신드롬의 진원지인 미국 무크에서는 학습을 위한 상호작용을 어떻게 촉진하고 있을까? 거기서는 TA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그걸 알고 싶어서 지난 12월 초 직접 미국으로 찾아갔다.

 

교육 기술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고, 한국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스탠포드 교육대학원 부학장 폴킴(Paul Kim)을 만나서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보기에 무크의 가치는 학습을 위한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플랫폼일 때 생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을 위해서는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TA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미국의 대형 무크 플랫폼에서는 어떠한가?”

 

폴킴의 대답은 너무 당연한 것인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무크인 코세라나 edx 같은 플랫폼에서 인기 있는 강좌의 수강생은 수백만 명이다. 누적 수강생 말고 동시 접속 수강생도 몇 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중 1~2% 정도 특이한 학생들이 있다. 굳이 요청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고, 교수의 강의 내용에 보충 자료를 달고, 토론에 불을 지피는 사람들이다. 일종의 자발적 조교(Volunteering TA)인 셈인데, 수강생이 1만 명인 강좌에서 이런 학생이 1%만 있어도 100명의 슈퍼 매개자들을 얻는 셈이다.”

 

그러면서 한국의 무크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무크의 본질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규모(Massive)에 있다. 슈퍼 매개자의 비율이 1%라고 해도, 수강생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자발적 상호작용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무크는 무크가 아니다. M(massive) 떼고 우크(OOC, Open Online Course)라고 불러야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015년 K-MOOC 서비스가 시작되고 2017년 중반까지 누적 수강생 수는 26만 명 정도이다. 초기 27개 강좌에서 현재 570여개 강좌로 늘었는데, 강좌수를 평균 100개로 봐도 강좌 당 누적 수강자 숫자는 2천6백 명이다. 그나마 이건 2년간 누적 수강자이기 때문에 한 코스 당 동시 수강생 숫자는 많이 잡아봐야 6~7백 정도다. 이정도면 대규모(Massive)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하다. 기존 사이버대 강좌 중에도 이보다 규모가 큰 수업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무크 수강생ㄴ.jpg

K-MOOC 플랫폼 방문자 수 및 수강신청 수

(출처 :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73614 )

 

 

이 대화에서 얻게 된 교훈은 두 가지였다. 우선 양이 만들어내는 질적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Big data)는 데이터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기존에 나타나지 않던 특정한 패턴이 출현(emergence)하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같은 논리로 학습 활동을 자발적으로 촉진하는 슈퍼 매개자 비율이 1%라고 볼 때, 5백 명 강좌에서 5명의 슈퍼 매개자는 별다른 변화를 만들지 못하다가, 2만 명 강좌에서 2백 명의 슈퍼 매개자는 갑자기 강좌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선순환의 패턴을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강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양적 접근이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일견 이해가 된다.

 

두 번째 교훈은 ‘그럼 한국은?’에 대한 것이다. K-MOOC 서비스는 주 대상자가 한국인이라 한국어 강좌가 중심이다. 그런데 한국의 고등교육 대상자 숫자는 미국이나 중국, 혹은 영어권 사용국가 전체 등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근본적으로 오프라인의 공간(강의실)과 접속(접근)의 제한을 뛰어넘는 온라인의 장점을 살리는 대규모(Massive)를 달성할 수 없는 조건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시원하게 우리가 처해있는 조건을 인정하자. 그렇게 마주한 현실적 조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자.” 그게 한국적 맥락에 대한 이해였다. 미국에서 뜨니까 우리도 무조건 무크(Massive)를 하자고 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규모의 양적 접근이 만들어내는 Volunteering TA가 요원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의식적으로 매개자 활동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무크는 “세계적 흐름이 이러하니…….”라고 외치면서 형식을 차용하기 보다는 한국적 상황에서 요구되는 상호작용을 촉진하기 위한 의도적 개입방법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그게 맥락에 대한 이해이다.

 

 

온라인 공간에 대한 인식론

 

이와 함께 좀 더 근본적으로 탐색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온라인 공간에 적합한 ‘지식’의 내용과 형식을 찾는 것이다. 실기 예술은 온라인 교육이 어렵다고 하지만, 요즘 웬만한 악기 주법은 유튜브(Youtube)에서 다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자전거 타는 법을 유튜브로 배우나, 실제 도로에서 자전거로 휘청휘청 하면서 배우나 효과가 똑같다는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의 활동 중 어떤 것은 온라인에 옮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교육계에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인간의 ‘지식’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일단 기술 플랫폼에 태우려고만 하니, 심도 있는 논의를 중시하는 학자들은 은근한 반발심으로 기술화에 대한 거부 경향을 보일 법도 하다. 비록 그 입장을 온전히 두둔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기술이 주는 장점은 크다. 대학 및 각종 교육기관들도 예산의 한계 안에서 움직이는 곳들이다 보니,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접근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면 교육의 기회 확대와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 선진 기술을 가져와서 적용하는 것에 매진하기 전에 우리의 조건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보아야 한다. 영어 사용인구 20억 명, 중국어 사용인구 15억 명인 조건에서 통하는 플랫폼을 형식만 가져온다고 성공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야 말로 뱁새가 황새 쫓는 격이다. 기술의 시대에 낭만적 인문학에 기울지도 않고, 기술만능주의의 순진함에 빠지지도 않기 위해 시작은 ‘지금’, ‘여기’여야 한다.

 

 


Book &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교육공학도 설동준의 진지하고 성찰적인 book & column. 책과 전시, 영화 등 문화예술을 망라해 삶의 한 국면에 대한 조용한 성찰과 깊은 울림을 이끌어 낸다.


 

설동준
문화예술 기획자 겸 교육공학도. 신앙, 윤리, 교육, 예술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스타트업의 조직문화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민간 예술단체 및 스타트업을 위한 일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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