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장의 종횡무진] 지리산자락 청춘들의 2년간의 분투기

식당 문을 닫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다

이슈 l Writer_정성원 upload_관리자 posted_Dec 18, 2017

손택수 시인의 <앙큼한 꽃>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골목에 부쩍 / 싸움이 는 건 / 평상이 사라지고 난 뒤부터다”

 

그럼, 평상을 다시 가져다 놓으면 싸움이 잦아들까? 이미 평상에서 ‘숙제하던 아이들’, ‘쉬어 가던 보험 아줌마’, ‘민화투 치던 할미’들이 사라졌기에 그럴 일은 없다. 평상은 잦은 싸움의 원인이 아니라 그저 삭막한 도시화의 애잔한 상징물일 뿐.

마을에 부쩍 청년이 사라진 건 일자리가 사라지고 난 뒤부터다. 수도권은 다이슨 청소기보다 강한 흡입력으로 각지의 청년을 빨아들이고 있다. 아무리 도심으로 탈주한들 허기진 욕망과 잦은 싸움에 엮일 공산이 크지만 그래도 비빌 언덕이라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악착같이 지역을 지키려는 청년들은 뿌리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렇게 하나 둘 빠져나가다 보면 지역의 마을은 결국 노인들의 게토화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

지난 2015년 겨울에 남원을 찾아간 것은 그렇기 때문이었다. 산내면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모여 ‘외지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우리 힘으로 자립해보자’며 커뮤니티 식당을 열었다는 소식. 시대를 역행하는 발칙한 청년들의 몸짓에 기쁜 마음으로 찾아 갔다. 그리고 2년 후 겨울, 다시 찾은 식당내부는 온기는 간데없고 찬 공기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2015년 살래청춘식당 마지 첫번째 인터뷰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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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다시 방문한 산내면의 청춘식당 마지. ⓒ수원시평생학습관

 

 

 

정성원: 좀 예민한 문제부터 이야기를 해볼까요. 마지를 닫은 이유나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인가요? 여러분들이 토론도 하고 정리도 했을 텐데, 관련한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하무: 아주 많은 이유가 있었어요. 마지의 문을 완전히 닫기로 결정하기 이전부터 이 일을 오래 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내부에서도 공유되고 있었고요. 처음 마지를 시작할 때는 이 마을에서 무엇을 할지, 혹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뚜렷한 생각이 없는 상태였어요. 하지만 2년 동안 마을에서 일을 하며 살다보니 각자가 하고 싶은 분야나 할 수 있는 일이 생겼고 그래서 마지를 중심으로 생각의 가지가 많이 뻗어나가게 되었죠. 마지는 식당이니 장시간의 노동을 요하게 되고 그런 와중에 각자가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다보니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힘들지 않을까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어요.

 

정성원: 경영상의 문제는 없었나요?

 

벼리: 그 부분도 당연히 있었죠. 저희가 2년 정도 운영을 하면서 다른 식당과 다르게 각자의 시급을 계산해 지급 하려했는데 그게 최저 시급에 맞게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인건비도 절반 수준이었고요. 매출 역시 외진 곳에 있다 보니 계절별로 달라서 근근이 버틸 때도 있고 수입이 많을 때는 적립을 해서 운영을 하기도 했었죠. 문을 닫게 되기까지의 여러 요인들 중에 분명 경영상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또 하무가 이야기한대로 각자 다른 갈래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있었고, 일을 하면서 마찰이 생긴 것도 이유가 되었을 거예요. 공동운영을 하면서 의견을 종합해 운영했지만 문을 닫게 된 이유에 대해 구성원들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은 다 달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성원: 정리하자면 ‘2년 동안 일을 하다 보니 각자가 하고 싶은 일들이 구체화되어 병행이 어려웠던 부분과 경영상의 문제, 그리고 내부의 마찰이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어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정도가 되나요?

 

벼리: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 것도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7명이 시작했는데 중간 중간 각자의 사정으로 한 명 두 명 빠지게 되었고, 탁구 같은 경우도 올 초부터 다른 일을 하느라 마지에 많이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상이, 하무, 저까지 셋만 남은 상황이 되었어요. 그런 부분도 원인이었다고 생각해요.

 

 

외부의 지원이 식당 운영에 끼치는 영향

 

정성원: 마지가 여러분의 독자적인 힘 뿐 만 아니라 지역민들과 소셜 네트워크의 지원을 통해 운영해 온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어요. 누군가가 도와줬다는 것은 큰 힘이지만 한편으로는 늘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잖아요. 이 부분이 식당 경영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궁금합니다.

 

하무: 되게 많았죠. 사실 저는 외부에서 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지만 마을 분들이 마지에 대해 기대가 많으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마을 분들이 보기에 저희가 부족한 점이나 주 2일 휴일 정책처럼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바로 바로 피드백을 주시기도 했어요. 벼리는 부모님이 이 지역에서 오래 사셨고 직접적으로 아는 분이 많아서 그런 경로를 통해 피드백을 받기도 했었고요. 그게 메뉴를 개발하거나 서비스를 하는 부분에서 큰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처음 1년은 많이 휘둘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흔들리다가는 우리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재미도 없고 힘들고, 마지의 방향성도 불분명해지고.... 그래서 우리가 중심을 잡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죠. 마을 분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마음을 내어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지가 그분들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운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 말 정도부터는 그런 피드백에 신경을 덜 쓰고 주체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운영을 했습니다.

 

정성원: 그럼 이런 외부인들이 문을 닫는다는 결정에 어떤 개입 혹은 반응이 있었나요? 최종 결정은 구성원들의 몫이지만 외부에서도 여러 가지 지원을 해왔으니까요.

 

하무: 네. 닫을 때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출자금도 받았고, 애정을 많이 쏟아주셨으니까 닫는 과정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어요. 닫는 결정은 저희가 내렸지만 마무리하는 과정을 주민들과 어떻게 공유할지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간담회 자리를 마련해 왜 마지의 문을 닫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을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나누었어요. 그 과정에서 응원을 많이 받았고요. 닫는다고 해서 구박을 하시거나, 실망했다는 말씀보다는 ‘너희들을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문을 잘 닫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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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마지를 끌어온 벼리, 탁구, 하무, 상이(좌측부터)  ⓒ수원시평생학습관

 

 

사람을 챙긴다는 것

 

정성원: 여러분들이 산내면에서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고 서로 애정하는 친구들이긴 해도 공동의 작업을 하는 멤버가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좋은 친구사이라도 공동의 목표를 위한 구성원으로 변하게 되면 마찰이 발생할 여지가 많을 것 같아요. 물론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해의 폭이 넓어질 테지만요. 아까 문을 닫는 행위의 판단의 요인 중 하나가 ‘마찰’ 이기도 했고요. 개인으로 만난 친구가 조직의 구성원이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게 있었을까요?

 

상이: 그동안 참여해왔던 친구들이 다 모여 회고작업을 했어요. 그 작업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든 생각은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어렸다는 점이예요. 그리고 한 가지 이슈를 만든 사람 혹은 소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못했고, 그런 과정을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 없이 그냥 흘러가다 보니 구성원들이 지치게 되었고, 그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지금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는 들었어요.

마지는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고, 친구들이 함께 하다 보니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고요. 사실 운영하면서 굉장히 많은 회의와 의견 조율 과정이 있었는데 그런 것을 하기만 했지 어떻게 ‘잘 운영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사람을 챙기지 못했던 것이 있지 않았나, 회고 작업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무: 저희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일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게 일하기의 실험이라고도 생각했고요. 그러다 보니 많은 회의를 했어요. 저는 회의를 많이 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니 우리 안에서 결정되는 과정이 힘들기는 해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2년을 돌아보니 단순히 많이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고 얼굴을 본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일들이 아니었더라고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을 챙기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회의를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미처 마음을 나누지 못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신뢰가 형성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고요. 그게 마지막까지 계속 이어져 왔던 것 같아요. 어쩌면 친구여서 더 쉽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걸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정성원: 그 질문을 조금 더 해볼게요. 빈번한 회의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은 마지 뿐 만이 아니라 어느 회사, 어느 조직도 다 마찬가지일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회의시간보다 사람을 챙기는 것이 훨씬 중요했는데 이 부분이 부족했고, 회의만 길게 하다 보니 진이 빠진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을 챙긴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볼까요?

 

벼리: 제가 느끼는 것은 일을 하는데 일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에 대한 것 같아요. 일을 먼저 꾸리고 그 안에 사람을 욱여넣다 보니 사람을 못 챙겼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논의한 게 아니라 그럼에도 끌고 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일을 할 때 몸이 안 좋아지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데 그럴 때 주변의 시선이나 책임감, 지원을 받아 운영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일 중심으로 운영을 잘 하려고만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 부분이 처음에는 굉장히 강했지만 1년을 기점을 조금 편해지기는 했어요. 주 1회 휴무였지만 이틀을 쉬게 됐고 그 다음에는 점심 저녁 모두 밥장사를 하는 것에서 저녁에는 바(bar)로 운영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체제변화를 통해 점심 메뉴도 네 개 정도 하던 것을 한 두 개로 바꾸거나 제철음식을 사용해서 메뉴를 바꾸는 식으로 실험을 해봤어요. 결과적으로 점점 나아지긴 했지만 초반에 힘들었던 사람들은 나가게 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계속 지치는 것이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사람을 못 챙겼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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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하지 못한 경영상의 문제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마지 운영진  ⓒ수원시평생학습관

 

 

예측 가능한 문제 그리고 변수

 

정성원: 여러분들이 문 닫는 요인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는데 그렇다면 이 부분들이 예측 밖에 있었던 건가요? 이를테면 경영상의 문제는 당연히 고민했던 문제일 테고, 사람들이 모이면 생기는 마찰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일종의 조직이라면 생각해봤을 거고요. 기타 등등의 문제들을 시작할 때 예상치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인지.

 

벼리: 저는 예측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거기에서 가장 큰 변수는 친구에서 동료가 되는 지점이었어요. 그 관계맺기가 굉장히 달랐던 것 같아요. 친구로서는 잘 맞고 편해서 괜찮다고 생각해 시작했는데 동료는 또 다른 것이었고.... 저는 동료로서 만날 때와 친구로서 만날 때 다른 게 있었는데 그게 굉장히 많이 혼동된 것 같아요.

 

하무: 유일하게 예측한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죠.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날 때 새로운 사람을 불러오기 힘든 상황이어서 걱정이 되긴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함께 시작했던 친구들이 있으니, 우리가 관두지 않으면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했고요. 하면서 제일 당황스러웠던 것은 점점 각자가 하고 싶은 일들이 가지를 뻗어나간 다는 것이었어요. 이것을 할 수 있게 응원해주는 것이 당연한데, 이걸 응원하면 내가 마지에서 일을 하는 게 힘들어지고, 누군가 일을 병행하면 누군가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부분을 생각지 못했죠.

 

 

식당 문을 닫는 것이 가지는 의미

 

정성원: 산내면에서 청년들의 새로운 시도로 자립구조가 만들어지면, 이를테면 ‘꼭 외지로 나갈 필요가 없다’ ‘산내면에서도 가능하다’라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퍼질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 측면으로 봤을 때 문을 닫는다는 것에는 여러 함의가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어떤 의미나 메시지로 해석하면 좋을까요?

 

상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에 있어 저희가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이 지역에 있는 청소년들이나 다른 이주하고 싶은 청년들을 마지라는 시스템을 통해 정착시키고 같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저희가 원하던 것이었어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 중 하나였는데 그 시도들이 계속 무산이 됐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년과 청소년들이 이곳 산내에서 정착할 수 없는 이유가 뭘까를 고민했었고요.

저희가 -‘작은자유’라는 청년모임- 생각하는 큰 키워드는 주거(住居)에요. 산내에는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많아요. 농촌치고는 다양한 직업군이 있고, 그 직업들은 청년들을 필요로 하고 있죠. 하지만 그들이 선뜻 내려올 수 없는 이유는 주거 시설과 땅값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살고 있는 분들도 떠나는 마당에 기반이 없는 청년들이 들어오기에는 너무나 힘든 게 사실이에요. 그런 부분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산내에 남아있을 청년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그리고 지금 산내의 청소년들도 당연히 떠날 테고, 결국 이곳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이 마을을 꾸려나갈 것이냐를 이야기 하는 시점이에요. 그런 부분들이 마지가 문을 닫게 됐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더 크게 다가갔던 것 같아요. 얼마 전 도에서 높은 분이 내려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도 청년주거가 이슈가 아니었음에도 그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청년주거 문제가 마을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청년 활동을 하고 싶어요. 이곳 마지가 커뮤니티 밥집이었고 그래서 많은 청년을 만났어요. 그러면서 그들이 가진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게 내년의 계획이에요.

 

하무: 그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마지는 산내라는 마을에서 상징적인 공간인데 이곳의 문을 닫는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보여지기도 할테고 ‘청년들은 도와줘봤자 하지도 못 한다’는 실망감을 안겨줬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다음 세대의 청년들이 무엇을 해보려 할 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단순히 문을 닫는 것에서 끝내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이 공간을 다른 청년 공간으로 사용해야겠다는 것까지는 다들 동의를 하게 됐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될지 결정된 것은 없지만 아마 이번 겨울을 지나면서 구체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다행인 점은 마지는 문을 닫았지만 구성원들이 다 떠나거나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이예요. 닫은 이유가 이 마을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서였으니까 외부에서 단순히 쫄딱 망해서 문 닫았다고 보지 않았으면 해요. 마을 어른 중에서는 오히려 좋아하신 분도 계셨고요. 문을 닫았다고 해서 산내의 청년 공간으로서 가진 의미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아쉬움과 성장

 

정성원: 2년 간 손때가 묻은 곳인데, 2년을 마치면서 아쉬웠던 점, 후회되는 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어떤 게 아쉽고 후회되었는지.

 

상이: 음.... 모든 게 아쉬워요. 문을 닫는 것도, 이렇게 밖에 못한 것도, 좀 더 다양한 많은 것을 실험해볼걸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우리가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실험하는 것도 그렇고, 주변에 오고 싶어 했던 친구들도 많은데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많이 못 온 것도 아쉽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은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는 아직 이 공간이 남아있어요. 닫은 것을 기점으로 새로움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매일 여는 식당이 아니라 열고 싶을 때 여는 식당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요. 요리하고 싶을 때 하고, 먹여주고 싶은 사람들 불러서 그렇게 운영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무: 저는 좀 더 흥청망청 놀았어야 하는데 마지 할 때는 일하는 데 치여서 재밌는 것을 못한 점이 아쉬워요. 뭔가를 많이 하긴 했지만 제가 생각했던 신나는 작당과 조금 거리가 있기도 했어요. 이렇게 일찍 닫을 줄 알았다면 난장판으로 놀았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탁구: 제일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올해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마지 운영에 거의 참여를 못한 점이에요. 다른 일에 치이면서 힘드니까 못해먹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운영 참여를 제대로 못한 것과 문을 닫는 과정을 더 많이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관계 면에서도 그렇고요. 마지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변화와 그것을 겪어내는 과정에서 미숙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고, 좀 더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시원섭섭해요.

 

벼리: 일을 할 때 뭐가 그렇게 불안했고, 부담스러웠고, 어깨가 무거웠는지 모르겠어요. 힘을 좀 빼도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워커홀릭처럼 1년을 마지에만 붙어서 여기 일만 했거든요. 늘 상주해서 늦게까지 일하고, 그래서 옆에 친구들도 힘들어졌던 것 같아요. 그때 좀 더 힘을 뺐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긴장도 풀고 자유롭게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여기서 시작을 하고 성장하고 겪은 성장통이 힘들었지만 싫지만은 않아요. 흥청망청 놀아볼 걸, 문 닫고 놀러도 가보고 그럴걸, 그런 생각들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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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원: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인이고 무형의 학습이기도 합니다. 2년 동안 고생하면서 배우거나 성장한 게 어떤 것일까요?

 

하무: 자기 일 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어딘가에 고용되거나 누구 밑에 들어가서 남이 시키는 일을 했었는데 처음으로 ‘내 일’을 하는 법을 알고 경험한 게 큰 것 같아요. 이 경험은 어떤 일을 하던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 나이 대에서는 하기 쉬운 경험은 아니라는 생각이 일을 하면서도 그렇고 지금도 많이 들었어요.

 

상이: 일머리가 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일을 하면서 일을 하는 제 자신과 많이 만난 것 같아요. 제가 만들어서 제가 하는 저의 일이니까. 스스로가 어떻게 일을 해나가는 지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본 것 같아요. 저는 요리파트는 아니지만 요리도 늘고 좋아하게 되었어요. 사람 관계도 많이 실험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가 좀 더 기대돼요.

 

탁구: 콕 찍어서 무엇을 배웠다고 하기보다 일련의 경험을 하면서 어디 가서도 못해볼 경험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초반에 공사를 하고 시작할 때 ‘이게 완성이 될까? 우리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식당이 오픈을 할까?’ 이런 의구심이 들었는데 함께 하면서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기술적으로는 칼질하는 게 굉장히 늘었어요. 저는 아직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데, 마지를 하면서는 저와 안 맞는 일을 하나 추가할 수 있었어요. 요식업은 안하는 것으로.(일동 웃음)

 

벼리: 직장에 소속되어 일을 하면 일을 못한다고 혹은 스스로 한계를 느끼거나 해서 깨지는데 저는 식당에서 일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와 많이 부딪히고 깨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제 스스로 한계를 넘어서 확장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고 그 안에서 일머리가 늘거나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것도 당연히 늘었고,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포인트이지 않나 하고요. 다시 일을 한다고 하면 일 중심보다는 사람 중심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 전의 저는 항상 촉박하고 바쁘고 빠릿빠릿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어서 일 못하는 사람들 보면 속 터지고 잔소리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여유를 배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야생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기 코끼리 한쪽 다리를 묶어 두면 된다. 나중에 나무 기둥 따위를 쉽게 뽑아버릴 만큼 성장한들 아무리 애써도 꼼짝 않던 어린 시절의 고통이 커다란 화인으로 남아 있기에 자유롭게 탈주할 궁리를 결코 하지 못하고 그저 체념하는 것이다.

식당 문을 닫았다. 당연히 아쉬움은 남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자폐의 공간으로 밀어 넣지 않았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이 더 예각화 되어 삶의 방향이 뚜렷해졌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했던 경험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단지 돈을 벌기위해 주어진 노동을 쥐어짜냈다면 오늘 마지는 ‘문 닫은 것’이 아니라 ‘망한 것’으로 표현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경험은 어린 코끼리 발을 묶었던 쇠사슬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청년이 자기 삶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실행하고 경험하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다. 그것을 자양분으로 두근두근 살아가기를.

2015년도에 방문한 후 쓴 기사는 이렇게 매듭지었는데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나희덕 시인의 「속리산에서」에는 이런 싯구가 있습니다.

 

"산다는 일은 /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 더 깊이 들어가라는 듯......"

 

높은 곳, 이름 있는 곳, 돈 많은 곳, 화려한 곳... 산내면의 청춘들은 지금 위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고통과 쓴맛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동화 속 판타지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의 인생을 써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일궈본 사람, 제 힘으로 자기 삶을 밀고나간 사람의 알갱이는 단단하다는 것을. 그 단단한 여정을 향해 가는 청춘들을 위해 우리들 각자의 방식으로 응원을 해 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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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섭섭,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마지의 운영진.

더욱 단단해질 청춘의 미래를 응원한다.

 ⓒ수원시평생학습관

 

 

 

 


정관장의 종횡무진 평생학습계의 아방가디스트, 수원시평생학습관의 선장인 정성원이 학습의 관점에서 보는 한국 사회 이야기. 평생'학습'에서 평생'삶'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의심하고 질문하고 격려한다.


 

정성원
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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