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평생학습관 동아리탐방]

이 동아리는 어떠세요? '시집통째로 읽기'

블로그 l Writer_박영선 upload_오키도 posted_Dec 20, 2017

‘첫’시를 만난 날


무릇 ‘첫’이라는 글자에는 ‘설렘’과 ‘낯섦’도 함께 들어있다.
‘첫’은 무엇에고 어디에고 안겨져 있는 단어다. 한글을 떼던 첫날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처음 책을 펼치던 날도 기억할리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떤 시를 읽고 화들짝 놀라고 가슴이 쿵쾅거리던 순간은 선명하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에게서 빌린 책에서 윤동주의 ‘서시’를 읽고 나서였다. 그 시가 왜 나를 전율케 했는지 그 때는 몰랐다. 하긴, 지금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부터 나는 시집을 빌려서 읽고 사서 읽곤 하였다. ‘서시’는 고운글씨로 꾸며져 내 방 제일 넓은 쪽 벽에 걸려서 20년을 있었다. 
문장을 짧고 간단하게 쓰는 것, 하고 싶은 말이 열이라면 하나만 꺼내서 글로 옮기면 시가 된다는, 오빠의 엉터리 강의가 내가 배운 첫 시 공부였다. 문학소녀 코스프레를 하며, 청계천 헌 책방을 섭렵하고 다니던 일은 행복한 추억이다. ‘서시’의 공이다.

시 읽기도 배워야 한단다. 요즘은 시를 가르치는 곳이 넘쳐난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집 주위를 조금만 두리번거리면 배움터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여러 개의 인문학 강의도 듣고, 글쓰기를 배운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터인지 시를 못 읽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 공부를 정식으로 시작하고 부터이다. 이렇게 써보고 저렇게 읽어봐도 내가 읽고 알아듣는 그 내용이 진짜의 뜻이 아니란다. 시는 그렇게 막 쓰고 막 읽는 게 아니란다. 독자에게 속내를 들키면 안 된단다. 날로 쇠퇴해지는 내 머릿속이 과부하에 걸려서 에러가 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했다.
시를 읽고 싶었다. 배우지 않고 그냥 ‘읽고’ 싶었다. 그런 내게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는 시 모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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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꽃처럼 피어나고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곳  '시집통째로 읽기'   ⓒ박영선 시민기자

 


봄의 부드러움이 겨울의 냉기를 걷어내고 있을 즈음, 수원시평생학습관 내의 읽기 모임 <시집통째로 읽기> 에 처음 참여했다.
'첫'날 느꼈던 모임방의 분위기는 다른 동아리보다 포근한 느낌이었다. 수업 준비는 어떤 의식처럼 시작되었다. 봄이 한걸음 먼저 와 있는 듯, 몽실몽실한 공간이 손에 만져지는 느낌이랄까?  회원인 서희님이 만들어내는 수고가 이국의 공간을 끌어들인다.
꽃그림 머금은 홑겹의 천이 펄럭 바람을 일으키며 넓은 테이블에 내려앉는다. 천위에 앉아있던 풀잎이며 꽃잎들도 폴짝 몸 구르기를 한 뒤에 따라 앉는다. 그 위를 다른 꽃무리를 한가득 머금은 고운 레이스천이 가로로 얹어진다. 투명한 유리단지가 촛불 한 자락을 내어 라벤다향 테라피를 데운다. 사발종에서 시작된 뎅~소리는 어우려 앉은 이들의 몸을 휘돈다. 詩集의 갈피들이 사각사각 펼쳐진다. 수줍은 목소리들이 책속에 잠든 시를 깨우면, 시들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꽃무늬 책상위로 내려앉는다. 향연이 벌어지는 두어 시간동안 시 읽는 이 들의 시간은 ‘멈춤’이다.

 

 

‘시집통째로 읽기’에는 없는 한 가지


수원시평생학습관 인문학카페에는 자생적인 ‘읽기’ ‘쓰기’ ‘보기’ 모임이 20여개가 있고, 총 회원 수가 600여명에 이른다. 강좌의 후속 모임으로 시작되는 자생단체가 대부분이다. <시집통째로 읽기>의 처음 이름은 ‘양만호 선생님과 시집통째로 읽기’였다. 선생님은 성공회에 몸담고 있는 신부님이다. 2015년 12월 2일 첫 모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매월 첫째, 셋째 주 수요일, 학습관 1층 책방에 10여명이 모인다. 그달에 선정된 시집(주로 양만호 선생님이 고른다)을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고,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읽은 내용을 반추해 보며 함께 느낌을 나누며, 중간 중간 내 얘기 네 얘기 그 사람 얘기 저 사람 얘기로 곁가지가 무수히 번져나가기도 하는 읽기와 수다의 모임(?^^)이다.
이 모임에는 다른 인문학모임에 있는 것 중에 한 가지가 없다. 책이 있고 읽기가 있고, 간식이 있고, 웃음이 있고, 정이 있다. 하지만 ‘읽기’만 있고 ‘쓰기’는 없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 바른대로 표기 하자면 ‘써야만 하기’가 없다. 그러니 공부를 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없다. 책을 읽되, 쓰고 분석하고 토론하지 않는다. 그저 읽고 얘기 할 따름이다. 김경주를 읽고 이성복을 읽고 엘뤼아르를 읽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을 이해했다. ‘읽기와 이야기하기’의 힘이다.
한 번 읽힌 책 속의 시들은 두고두고 단체 대화방을 떠돌아다닌다. 날씨가 좋아서, 비가 와서, 너무 추워서, 마음이 울적해서, 좋은 일이 생겨서…. 기억의 창고에 들어앉은 시들을 꺼내 놓는다. 읽었던 시들이 다시 한 번 읽힌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할 얘기가 넘치면 분위기 좋은 찻집이나 향기가 끝내준다는 곡차집으로 발걸음들이 모아진다.

 

 

시를 읽으면 내가 보여요


서로를 아끼는 마음 또한 다른 모임보다 깊이가 더하다. 시의 힘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다른 이유 중 한 가지는 먹거리를 나누는 정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때마다 떡과 과일과 맛난 제철음식이 차려지는 곳은 고운 테이블보가 드리워진 책방의 탁자 위이다. 가끔은 향기 좋은 곡주가 예쁜 잔에 담겨 시심 가득한 낭만가객들의 마음 속을 채울 때도 있다. 때로는 작은 연주회가 열리고, 영화관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볕 좋은 날에는, 갤러리며 헌 책방이며 카페며 수목원들에 아름다운 이들의 몸과 마음이 머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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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는 모임  ⓒ박영선 시민기자

 

회원들은 ‘시집통째로 읽기’를 향한 애정을 작은 소리로 혹은 웃음을 담아 얘기한다.


“시통으로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기쁘고 행복해요. 마음을 무장 해제 시키고, 다가가도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어요. 오래오래 아껴가며 만나고 싶어요.”(박은숙)


“시집 통째로 읽기는 혼자서 눈으로만 읽는 시에서 함께 돌아가며 읽는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시로, 또 다르게  마음에 스며들죠. 시인의 마음 가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든지 한없이 가기도 하고, 때론 멈춰서기도 하지만, 함께 공감하고 느끼는 시 읽기 시간은 참으로 귀한 시간 이예요.”(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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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로 정과 맛을 나누기도 한다.  ⓒ박영선 시민기자

 

 

꽃무늬 책상보가 깔려있는 차 향기 그윽한 공간에서
상큼한 인사말과 웃음소리가 창밖으로 새어 나가고

은근한 종소리가 처음과 끝을 알리는 그 곳
가슴 따뜻하고 시원한 시가 날아다니는 곳에서
첫 시를 읽었던 설렘 가득했던 시간은
또 하나의 ‘첫’경험이었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들이 읽었고, 지금도 읽히는 詩集들
1) 이문재 <지금여기가 맨앞> (문학동네 2014)
2) 신경림 <사진관집 이층> (창비 2014)
3) 김태동 <청춘> (문학과지성사 1999 )
4)황동규 <사는 기쁨> (문학과지성사 2013)
5) 문태준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창비 2015 )
6)마종기 <이슬의 눈> (문학과지성사 1997)
7) 조은 <따뜻한 흙> (문학과지성사 2003)
8) 엘뤼아르 <이곳에 살기 위하여> (민음사 1974)
9) 윤종호 <고향길> (문학과 지성사 2005)
10) 박용래 <먼 바다> (창비 2013)
11)천이즈 <옷 안에 사는 여자> (에디터 2016)
12) 김경주 <나는 이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문학과지성사 2012)
13)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창비 1989)
14) 이성복 <남해 금산> (문학과지성사 1986)
15)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문학동네 2013)
16) 정현종 <나는 별 아저씨> (뭔학과지성사 1978)
17) 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005)
18) 이재무 <슬픔은 어깨로 운다> (천년의시작 2017)

 


첫째 셋째 수요일 이른10시 학습관1층 <고고장>에 오시면, <시집통째로 읽기> 동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동아리의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박영선
수원시평생학습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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