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관 이야기] ⑨ 교육팀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현장 l Writer_곽로컬 upload_관리자 posted_Jan 02, 2018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하필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밤이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야간 당직 날. 텅 빈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았다. 적막한 밤이다. 낡은 학교를 리모델링한 건물인지라 그 특유의 분위기까지 더해진다. 머리 위로 찬바람이 휘휘 분다. 연식이 오래된 히터는 추울수록 예열이 늦어 제 구실을 하기까지 이삼십 분 정도는 기다려줘야 한다. 첫 추위를 잘 넘겨야 무탈한 겨울을 날 수 있다던데, 몸은 점점 움츠려들고 손까지 곱아온다. 얼음이 돼서, 누군가 땡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당직자라니 이대로 있다간 학교 전설이 될 판이다. 추위를 떨치고, 시린 손도 풀어 볼 겸, 훈훈한 바람이 불 때까지 무언가에 몰두해 보기로 한다. 이참에 미뤄둔 숙제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주 전 쯤 인가 일 년을 교육적으로 회고하라는 조직의 명령이 있었다.(각주: 친절하게 명령했다) 연말이면 으레 하는 작업이지만 부담스럽고 약간은 멋쩍기까지 한, 익숙해지지 않는 업무.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어느새 마감이 코앞이다. 방학 마지막 날 밀렸던 일기를 몰아 쓰던 마음가짐으로, 딱딱하게 얼은 자판을 두드려본다. 지금부터의 글은 30분 동안 전광석화처럼 써 내려간 공식보고를 가장한 자기고백이자 정신승리담이다.

 

 

너의 이름이 불려 질 때, 비로소 꽃이 된다. 이름이 반이다.

 

수원시평생학습관. 고상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거기에 은연중 풍기는 공공기관이라는 위엄까지. 이만하면 공식명칭으로는 괜찮다. 하지만 딱딱하고 전형적이다. 다수의 시민이 공부에 대해 좋은 경험을 갖고 있을 리 없는 현실임을 감안하면 이 명칭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원시평생학습관, 미래로 가는 길> 부제를 달아본다. 이 정도면 되려나, 고민을 거듭한다. 한 명의 시민이라도 더 밝은 미래를 맞이하길 바라며, 슬로건을 뽑아 외벽에 부착하고 네온까지 장착한다. 솔직히 네온은 좀 오바였지만 어둠이 깊어질수록 슬로건은 형형히 빛났다. 그러고 보니 형설지공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같고, 나름 말이 되는 것 같아 흡족하다. 하지만 일장이 있다면 일단이 있는 법, 부지 내 건물을 공유하는 타 기관에서도 슬로건을 함께 쓰겠다고 한다. 또 시 자산이니, 시를 상징하는 무언가가 들어가야 한다는 지분가진 기관의 의견도 더해진다. <수원화성 돌담에 둘러싸인 수원시평생학습관 · 외국어마을 · 미래로 가는 길> 은 이렇게 탄생했다. 원래도 잘 모르겠지만 도무지 알 수 없게 된 슬로건. 이상하다. 모두가 흡족해 했는데. 묘한 일이다.

 

“직업학교에요?” “외국인들이 사는 곳인가요?” “동사무소 아니었어요?” “주차 왜 안돼요?”

“여긴 ‘평생학습’ 하는 곳이에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요. 편하게 둘러보세요”

“아, 네...”

 

다행인지 덕분인지 아리송해서 오히려 질문은 많다. 무관심보다 안티가 낫다지만 제대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해는 된 건지, 뭔가 미진하다. 딱 떨어지지 않는다. 각양각색의 질문이 의미하는 바는 “여긴 뭐하는 곳이에요?” 란 뜻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여긴 대체 뭐하자는 곳인지 얘기하기 늘 어렵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면서 나는 왜 답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또한 묘한 일이다. 이름 짓는 게 끝나니 이젠 설명하는 게 일이다. 또다시 고민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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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분배적 미가 엿보인다. 요즘은 동수원의 등대로 쓰이고 있다.  ⓒ수원시평생학습관

 

 

 

산소통 사무실. 산소는 충분한가?

 

무언가 쌈박하고도 확 와 닿는, 획기적 설명은 없을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한참을 그리 있었더니 머리도 아프고 공기도 답답하다. 여긴 무려 ‘산소통 사무실’ 인데, 숨이 막혀오다니 이 또한 기막힌 일이나 일단 리프레시 할 신선한 산소가 필요하기에 산소통을 찾아본다. 흠, 산소통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아니 그럼 왜 산소통 사무실이란 말인가. 가만있자, 이곳에서 일하는 각자가 평생학습계의 산소가 되란 의미였던 건 아닐까. 관장님에게 이런 깊은 뜻이 있었다고는 언뜻 믿기진 않았지만 결국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환희에 들떠 동료들에게 우린 산소 같은 존재였다고 크게 외쳤다. 순간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곧 작은 파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웅성거림은 두근거림으로 눈빛은 명예와 자부심으로 반짝였으며, 평생학습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모두에게 차오르고 있다는 걸 서로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신선한 공기가 돈다. 일과 삶이 일치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하고 긍정적인 힘으로 산소통 사무실은 단번에 변화했다. 마침내 우리는 울트라 산소탱크가 되었고, 관리자로서 일조했다는 사실에 매우 흡족해졌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되뇌이다가 어디선가 결재 부탁드린다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뿔사. 꿈이었다. 머리가 아파 잠시 눈을 감는다는 것이 깜박 졸았나 보다.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휘휘 둘러본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각각 일로 바쁜 동료들이 보인다. 멋쩍어진다. 자리를 피하고 싶다. 학습관은 오늘도 잘 돌아가고 있는지 한 바퀴 돌아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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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관의 헤드쿼터 산소통 사무실, 왜 산소통인지는 설이 분분하다  ⓒ수원시평생학습관

 

 

 

100미터, 평생학습의 복도

 

지금은 신도시로 떠난 옛 중학교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학습관. 학교하면 떠오르는 예의 그 모습 그대로다. 긴 복도를 응시한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의 거리는 대략 100미터. 복도를 사이에 두고 교실들이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을 위한 통로. 새삼 느낌이 다르다. 겨울 햇살이 나지막하게 깔린다. 왁스 먹은 복도에 닿으니 맨질맨질 반짝인다. 잘 길들여진 빙판 같다. 갑자기 뛰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힌다. 쭉 뻗은 복도를 보면 뛰고 싶어진다. 저 멀리 그어진 피니시 라인이 보인다. 어서 뛰어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음. 80~90미터를 전력 질주하다가 마지막 몇 미터에서 나이스 슬라이딩으로 골인 해 보는 거야. 우아하고 극적인 레이스 계획을 세워본다. 출발을 위해 숨을 고른다. 어딘가에서 복도에서 뛰지 말라는 선생님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훗, 환청임이 틀림없다. 여기 관리자는 이제 나니까. 더 신나게 달려보려고 복도 전용 씽씽이까지 구비해 놓지 않았던가. 자, 이제 활강할 시간이다. 씽씽이에 한 발을 올려놓고 체중을 싣는다. 바닥을 치고 나가자, 슉슉 미끄러진다.

 

복도를 가로지르며 이곳을 오갔을, 그 시간만큼 많았을 사람들과 접선해 본다. 그들은 여기서 무엇을 봤을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얻어간 건 있었을까. 잃어버린 것은 없었을까. 잊고 있는 것을 찾았을까. 그나저나 우리는 왜 이곳에 있었던 것일까. 켜켜이 스며든 흔적들, 사연들, 떠도는 상념들과 마주친다. 공부란 건 기본적으로 따분한 것이다. 어릴 땐 그저 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했지만, 이젠 일 로 하다니(각주: 경험할수록 지겹다는 것도 추가됐다) 하여간 묘한 일이다. 그나저나 씽씽이를 타면서까지 공부 생각에 잠겨 있는 나라니, 쓴 웃음이 나온다. 피니시 라인에 도착할 즈음,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시선이 느껴진다. 흠, 괜히 더 공식적인 표정을 지어본다. 슬쩍 내려, 복도 한 귀퉁이에 씽씽이를 두고 총총 계단을 내려간다. 학습관은 오늘도 이상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왠지 모를 안도감에 다시 흡족해 진다. 반대편까지 걸어 올라가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려는데, 저만큼에서 어르신이 보인다. 씽씽이로 질주하는 그.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다. 이 복도는 정말 타면 탈수록 빨려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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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와 씽씽이. 메이 더 포스 비 위드 유  ⓒ수원시평생학습관

 

 

 

평생학습의 현장. 뜻밖의 일상.

 

상쾌하게 자리에 복귀한다. 관할 감독 기관에 새 사업에 추가 예산 배정이 필요한 사유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혁신적이고 뛰어난, 누구든 탄복해 마지않는 프로그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알파고를 능가하는 수퍼 학습자가 양성되며... 그렇기에 포스트잇과 양면 테이프가 필요하고.. 길이길이 미담으로 남아... 모델이 될 것이라고 보입니다.’ 호소력 있고 확신에 찬, 그러나 겸손한 보고서가 정갈하게 완성된다. 흠 흡족하다. 서둘러 공문을 전송하고 외근 준비를 한다. 행사가 있는 날이다.

 

한 해를 결산하는 배움의 결과물들과 학습자들의 각종 뽐내기와 장기가 펼쳐진다. 고깔 천막, 알록달록한 현수막들이 펄럭인다. 찬찬히 둘러본다. 올해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나왔는지, 참고할 만한 사업은 없는지 전체적인 흐름과 경향은 어떤지, 머릿속으로 정리해 본다. 제 발이 저린 탓일까. 잘한 점은 작게 보이고, 아쉬운 점만 크게 보인다. 어느새 미간을 또 찌푸렸나보다. 자원봉사 선생님이 고생한다며 캔디를 손에 쥐어 주신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더니, 구경 밖에 한 것이 없는데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다. 즐기면서 돌아보라는 말도 주신다. 마음써주심이 고맙다. 이제야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남녀노소 학습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의 청소년들도 엄마 손을 붙잡고 놀이 거리나 없나 두리번거리는 꼬마들도 보인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커피를 내려 한 잔씩 마셔보라며 권유를 하고, 청년들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꽈과과광~ 사운드에 땅이 울린다. 신나는 리듬과 비트가 행사장을 가른다. 검은색 복장에 금박의 술을 단 아주머니들이 메인 무대로 우르르 뛰어 들어온다. 나란히 대열을 맞추고 몸을 흔든다. 펄쩍펄쩍 사뿐사뿐, 꿍꽝꿍꽝. 다들 열심인데, 코믹하다. 객석에 웃음이 번진다. 하지만 소박하기에 아름다운 열정이 강렬하게 전달된다. 모두의 몸이 움직인다. 나도 모르게 들썩인다. 물개 박수가 나온다. 기분이 좋아진다.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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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평생학습축제. 말 그대로 공부를 찬양한다. 레알임   ⓒ수원시평생학습관

 

 

 

평생학습을 업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음, 거기 알아. 부채춤 추는 곳이잖아”

 

최근 이런 말을 들었다. 아실만한 분이 그렇게 말을 하다니 더 기가 막혀 그런 곳 아니라며 정색하고 설명했다. 한참 듣더니 “그러니까 맞네. 맞잖아” 이런다. 그러니까 여기는 이런 곳이다. 슬로건이 어찌되었든 평생학습이란 뭔지 모를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더군다나 성장이라니 요원하다. 성인이라면 더 그렇다. 때론 고집 세고, 안하무인에 이해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런 것을 업으로 삼는다는 나 같은 사람들은 또 어떤 존재란 말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축제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상장을 들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사무실로 복귀한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 있었지만 오늘은 야간 당직 날이다. 저벅저벅 걷다 보니 부채춤 추는 곳이란 말, 맞는 것 같다. 발끈할 일이 아니었다. 명쾌하다. 무릎을 탁 치는 설명이다. 부채춤을 추려고 퇴근 후에, 집안일을 하다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은퇴 후에, 그도 저도 아니면 혼자 있느니 사람과 어울리려고 이곳으로 온다.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고 땀을 닦고, 간식을 나눠먹고 헤어진다. 때론 부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행사용 안무를 짜보기도 하고, 다른 이에게 춤추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저 소소하다. 느닷없이 웃음도 터지고. 즐겁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춤사위도 제법 훌륭해 진다. 다를 것 없는 매일이었지만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학습관은 한 번도 안 왔으면 모를까, 일단 오면 계속 오는 곳이다. 매일 미래로 가고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움과 익힘. 나눔과 확산, 성장과 변화. 앎과 삶의 일치. 학습의 새 패러다임의 제시, 공부하는 방법의 혁신. 주체적인 학습자, 깨어있는 시민. 우리가 매년 목표로 삼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이 이 세계엔 없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매년 목표로 삼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를 일이다. 그간의 허세를 반성한다. 그러나 그 무언가를 설명할 한방이 부재했던 건 사실이었다. ‘부재’한 것이 ‘부채’ 로 채워지다니, 참으로 심오하다 (각주: 이제 부채 도사가 될 일만 남은 것인가) 알 수 없는 만족감에 또 흡족해 진다. 연말이다. 한해가 또 이렇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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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관 동료들. 나 같은 사람들. 텐트에서 자며 밤낮으로 일에 몰두한다.   ⓒ수원시평생학습관

 

 

 

 

 


학습관what수다  수원시평생학습관이 하고 싶은 이야기. 학습관을 움직이는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 가는 사업에 대한고민, 담백한 자기 성찰을 담아 독자와 소통하고자 한다. 곽현지 곽로컬


 

곽로컬
수원시평생학습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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