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흔들리는 ‘대규모’ DNA와 무크의 정체성 찾기

칼럼 l Writer_설동준 upload_관리자 posted_Jan 16, 2018

지난 칼럼에서는 최근 5~6년 사이 교육계의 지각 변동이라고 불렸던 무크(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한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다. 무크의 본질은 ‘대규모(Massive)’에 있다는 것, 그러한 대규모 학습자로 인해 토론 게시판에서는 학습자, 교수자 구분할 것 없이 토론과 정보 교환에 불이 붙었다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언어, 인구 규모, 국제적인 대학/교수 인지도 등에서 단일 강좌 수강생 10만 명 수준의 ‘대규모’를 달성하는 것이 태생적으로 쉽지 않은 한국의 K-MOOC는 학습자의 상호작용을 활발하게 이끌어내기 위해 서구권의 대형 무크 플랫폼과는 조금 다른 ‘의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었다.

 

오늘은 바로 그 ‘대규모’라는 무크의 DNA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그것이 교육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단기간, 유연성, 그리고 더 쉬워진 수료

 

최근 2~3년 사이에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짧아진 수강 기간일 것이다. 2011~2012년 무크의 태동기 강좌들은 사실상 대학교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형식이었다. 강좌 기간은 12~14주 정도였고, 마치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듣는 오프라인 강좌처럼 수업 자료는 매주 정해진 시간에 공개되었다. 수업 내용에 대한 과제는 1주일의 기한이 있었고, 강좌 자체는 1년에 한 번 혹은 두 번만 열렸다.

 

이런 조건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대중적인 호기심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계학습,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어려운(?) 과목을 인내심을 가지고 12~14주 정도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의 강좌를 놓치면 더 이상 따라갈 방법이 없었고, 수강 기간을 놓치면 그 해에는 더 이상 수강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다. 바쁜 시간 쪼개어가면서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싶었던 직장인 무크 유저에게는 이런 조건은 버거운 것이었다. 한 자리 수의 강좌 수료율은 무크의 혁명적 등장 뒤에 남겨진 곤란한 숙제였다.

 

소비자의 요구가 있으면 시장은 변하게 마련이다. 이제 무크에서 단기간 강좌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뿐더러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강좌 기간은 대략 4~6주 단위이다. 신규로 개발된 강좌 뿐 아니라, 기존의 인기 있는 강좌들도 3~4개의 소주제 단위로 쪼갠 후 별도의 단기 강좌로 개설하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이런 흐름을 Micro Learning이라고 명명하였다.

 

단기화 트렌드와 보조를 맞추는 또 하나의 트렌드는 유연성이다. 이제 코세라(Coursera), 애드엑스(Edx), 퓨처런(FutureLearn) 등의 대형 무크 플랫폼은 더 이상 오프라인 대학처럼 짜릿하고 엄격한 수강 신청 기간을 두지 않는다. 학습자들은 연중 아무 때나 해당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혹은 시작 타이밍을 놓쳤어도 거의 매달 수업이 다시 시작된다. 이것은 단기 강좌로의 변화 양상과 무관하지 않다. 3~4개월 분량의 수업은 물리적으로 매달, 혹은 수시로 돌리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4주 단위 수업이라면 딱 맞게 매달 개강을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무크 강좌는 학습자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하고 배려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위의 두 큰 변화에 더해 학습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테스트도 사실상 원하는 횟수만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보너스다. 당연히 수료는 더 쉬워졌다.

 

 

사라진 활기

 

하지만 학습자의 접근성과 만족도를 높이면서 중요한 몇 가지를 잃었다. 엄청난 숫자의 학생들, 다양한 국가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동료 수강생들, 이들과 나누는 활발한 토론, 실시간에 가까운 댓글의 열기를 이제는 무크에서 찾기 어렵다. 한때 코세라(Coursera)는 자신들의 토론 게시판의 최신 활동이 22분 단위로 갱신된다고 했지만, 이제는 옛말이다. 학생들은 다들 저마다의 스케줄에 따라 무크를 수강한다. 당연히 동시간대에 동일한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은 줄었다. 수강 기간 자체가 4주 단위로 짧아지고 수료가 쉬워졌다는 것 역시 활발한 토론과 생각의 꼬리를 무는 숙고학습보다는 개인적으로 코스를 신속히 ‘완료’하는 것으로 수강자의 초점을 옮겨가게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더 이상 무크가 ‘대규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 세계 무크 수강자는 6천만 명을 훌쩍 넘었다. 대규모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각자의 시간표에 맞추어, 잘게 쪼개진 여러 사이버 강의실에서 수업에 참여한다. 무크 생태계의 첫 강좌라 할 수 있는 세바스천 스런(Sebastian Thrun, 유다시티 설립자, 전 스탠포드 교수)의 인공지능 개론은 16만 명이 동시에 수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설일 뿐이다. 무크 생태계에 대한 연구와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 클래스 센트럴(https://www.class-central.com/ )의 설립자 Dhawal Shah는 “나는 10만 명의 수업 동료를 만나는 일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라고 씁쓸한 기분을 토로한 바 있다(Dhawal Shah, 2016.11.16.1)). 그는 심지어 “예전의 무크가 가상공간의 교실 경험이었다면 지금의 무크는 넷플릭스 경험이다”라고까지 했다. 의미심장한 메타포가 아닐 수 없다.

 

sss.jpg

     무크 수강 경험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                 무크 수강에 대한 지불 의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출처 : 클래스 센트럴 https://www.class-central.com/report/class-central-learner-survey-2017/ >

 

작년에 클래스 센트럴에서 무크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의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무크 수강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의 상위 항목은 대부분이 학습자 사이에서의 토론 및 연결에 대한 것이었다. 심지어 수강에 대한 지불 의사를 묻는 질문에서는 타 학습자와의 연결이 활발한 토론 참여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로 꼽히기도 했다. 대부분의 무크는 ‘수료’에 대한 이수증을 판매하고 있지만, 사실상 돈을 내고 싶은 마음은 동료 학습자를 찾았다는 즐거움이 주는 기부 의사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CTO 폴킴(Paul Kim)과의 대화에서 그가 말했듯 무크의 DNA는 대규모(Massive)와 그것이 주는 활력에 있다. 그런데 이제 그 DNA가 사라졌으니, 무크 생태계는 스스로에게 아주 심각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크가 기존의 이러닝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학습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무크의 변화가 그리 유쾌하게만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세를 어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흐름 속에서 무엇을 고민해보아야 할까? 지난 칼럼에서 잠시 언급한 튜터(조교)를 통한 상호작용 촉진이나, 열성 참여자를 통한 대리 상호작용 효과 등도 의미 있는 고려의 대상이지만, 오늘은 조금 더 상상력 넘치는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보자.

 

학부 2학년 시절에 학제 개편이 있었다. ‘학과제’에서 ‘학부제’로의 변화였는데, 대학본부 측에서는 신입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발견하기 까지 조금 큰 울타리인 광역학부 시스템에 있다가 대학 3학년 때 전공 학과로 가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와 민주화교수협의회 등은 비인기 학과 폐지, 통폐합을 통한 교수 정원 축소 등의 수순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총장실 점거로까지 이어지면서 대학가 이슈가 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보면서 운동권이었던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대학본부의 논리에 상당히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해 공과대학 학생회장 후보로 나가면서 나는 제3의 길인 과감한 정책을 제시했다. 아예 학부에서 전공을 없애버리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수강하면서 얻은 다양한 강좌의 지식을 연결하여 1년에 한 편씩 소논문을 제출하자는 것이었다. 졸업 논문은 그렇게 제출한 소논문을 묶어서 심사를 받는 방식으로 하고, 이를 통해 정말로 학습자가 자신의 학문 여정을 만들어가는 길을 열어보자는 것이었다. 교육학은 1도 모르는 원자핵공학 전공생이었지만, 교육적 상상력에 대한 패기만큼은 넘쳤었다.

 

10년 정도 흘러 어느 날 대학가의 입시를 보니, 자유전공학부라는 것이 신설되어있었다. 당초에 내가 상상했던 정책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얼추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자유전공학부가 학습자의 학문 여정을 온전히 지원하는 시스템은 아니다. 사실상 인기학과로 가는 예비 관문의 성격으로 전락하는 병폐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의미 있는 시사점도 있다. 바로 학습자의 여정, 학습자의 스토리라는 개념이다.

 

무크가 초기에 대학 수업을 온라인에 그대로 옮긴 방식이었다는 것은 기존의 대학 시스템까지 옮겨놓았다는 의미이다. 학과 제도, 교수자 주도 방식 등. 그런데 이제 훨씬 유연한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학습자의 여건과 흥미에 맞게 수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학습자 간 상호작용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가슴 아픈 일이고, 나름의 대안을 찾아보아야 하는 문제이지만, 학습자 개인 차원에서는 좀 더 나아진 개별화 학습의 가능성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가능성 속에서 학습자의 활동 이력을 기존의 학과 시스템으로 담을 수 없는 독자적 학습 스토리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방식은 없을까? 대형 무크 플랫폼들이 개별 수업 단위, 혹은 묶음 수업 단위에 대한 인증서를 유료로 팔고 있지만, 학습자의 ‘스토리’를 지원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블록체인 기술, 학습자 빅데이터 분석 등의 기술에 상상력과 의지를 더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이력서는 한 인간의 ‘족적’을 보고자 하는 과정이지만, 서류가 아닌 진짜 스토리를 보는 일은 드물다. 무크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 실질적인 의미도 크지 않은 이수증 장사를 하기 보다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습자 지원 시스템으로 정체성을 찾는 것이 기존 이러닝과의 차이점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키고, 무크의 장기적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길일 것이다. 무크가 당초에 지식의 민주화와 연결주의를 표방하며 등장한 하나의 운동(movement)이었다가 지금은 비즈니스가 되었다고 개탄하는 것이 아니다. 기왕에 장사를 할 거라면 한철을 넘어설 의미 있는 상도(商道)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1)Dhawal Shah (2016.11.16.). MOOC Trends in 2016: MOOCs No Longer Massive. https://www.class-central.com/report/moocs-no-longer-massive/

 

 

 


Book &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교육공학도 설동준의 진지하고 성찰적인 book & column. 책과 전시, 영화 등 문화예술을 망라해 삶의 한 국면에 대한 조용한 성찰과 깊은 울림을 이끌어 낸다.


 

설동준
문화예술 기획자 겸 교육공학도. 신앙, 윤리, 교육, 예술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스타트업의 조직문화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민간 예술단체 및 스타트업을 위한 일을 모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