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 딜레마]

생활문화강좌, 육성할 것인가 vs 축소할 것인가

이슈 l Writer_백현주 upload_관리자 posted_Jan 16, 2018

1.

새해가 밝았다. 매일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지만 한 해의 시작인 1월이 남다르긴 하다. 모두들 새로운 계획을 짜고 그것의 실현을 기원하며 다른 방식을 시도한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도. 실제로 연일 지면은 달라지는 제도,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을 소개하고 기대와 우려를 전한다. 덮어진 진실을 파헤치고 적폐를 발굴하는 과정도 결국 새 판짜기의 전초전이다. 따지고 보면 가만있지 않고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하는 것은 변화와 성장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다.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기존의 것에 문제를 발견했다는 것이고, 문제를 발견했다는 것은 성찰의 과정을 전제한다. 교육과 학습이라는 성장을 주관하는 기관으로서 변화의 추구는 반가운 사건이다. 하지만 변화가 항상 좋은 방향을 선택하는 것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실패할 위험, 기존보다 악화될 가능성, 그것에 대한 비난 등을 감당할 배짱과 용기 또한 전제하는 일이다.

 

2.

학습관도 2018년 사업에 큰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그중에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생활문화 강좌’의 대대적 축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활문화 분야의 동일‘강좌’의 클래스를 수를 줄이고, 대신에 해당 주제에 관한 자발적 생활문화 ‘동아리’를 육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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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생교육프로그램 분류체계에 따른 문화예술교육 영역

 

 

학습관의 ‘생활문화강좌’는 평생교육 6대 영역 가운데 문화예술교육 영역, 그 안에서도 생활문화예술과 문화예술향상 프로그램 영역에 주로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평생교육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촉진하고 문화예술 행위와 기능을 숙련시키는 일련의 과정과,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접목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교육으로 정의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문화소외를 겪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의 경로이며, 각자의 취향에 맞는 취미와 소질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영역이다.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의미 있고 필요한 영역인데 문제는 문화예술이 평생교육 프로그램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2016)의 평생학습실태조사에 의하면, 조사에 응답한 국민들이 참여하고 있는 평생교육의 영역은 직업능력향상교육(18.5%), 문화예술스포츠교육(11.7%), 인문교양교육(7.4%) 순이다.* 또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교육데이터서비스 시스템(EDSS: EduData Service System)에서 제공하는 평생교육통계자료에서 추출한 총 534,005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분석하여 패턴을 확인한 결과(홍아정·이지훈·박규미, 2016)에서도 국내 평생교육은 문화예술, 직업능력교육의 비중이 높았고, 반면에 학력보완, 시민참여, 기초문해교육 프로그램은 지속적인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은 이런 통계 수치보다 더 압도적이다. 직업훈련기관을 제외하면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지역의 크고 작은 공공기관들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거의 대부분이 생활문화, 문화예술 영역이다.

 

 

사진 미술 음악 연극 건강체육
3개 분야 6개반

3개 분야 6개반

3개 분야 11개반

청소년 1개 반

3개 분야 8개반

DSLR기초

여행과 사진

스마트폰 카메라

캘리그라피

드로잉교실

만화교실

우쿨렐레

드럼

기타

연극교실

맵시무브먼트

댄스스포츠

요가

 

수원시평생학습관의 생활문화강좌들

 

 

단순히 양적 불균형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문화예술 또는 생활문화를 ‘취미활동’으로 협소하게 규정짓고 그 취미마저 특정 폭에 갇혀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것은 취미 자체가 문제된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문화’를 ‘취미’로 오해하게 하는 프로그램 분류와 명명의 문제이기도 하며, 우리의 경험세계, 매일 매일의 생활 세계, 살아가는 나날의 양식 이런 게 생활문화일진데, 왜 취미활동에 ‘생활문화’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하는 문제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문화, 일상문화가 얼마나 척박하고 왜소한지에 대한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소박한 소망이 실은 ‘노동’이 아닌 활동들은 모두 비생산적인 유희와 여가로 전락하고, 개인들은 노동하는 존재로만 살아가면서 자기 삶을 잃어가는 모습의 반증인 것과 같다. “노동이 거의 경쟁할 수 없는 지배적인 활동이 되고, ‘생계유지’의 관점에서 볼 때 노동과 무관한 활동은 하나의 ‘취미’가 된다.”고 했던 아렌트의 말 그대로이다.

 

3.

그래서 역설적으로 여기서 다시 취미가 중요해진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취미의 공동체, 그러니까 취미 활동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의 중요성이다. 취미 활동의 극단엔 오타쿠처럼 집에 틀어박혀 모든 관계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취미 수준을 끌어올리거나 그것을 공유하고 자랑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오로지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만 타자들과 연결되는 사회에서 취미로 모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좀 다른 식으로 형성되고 작동한다.

 

 

이들은 수학자들처럼 계산을 통해 의견 일치를 보려고 논쟁하는 게 아니라 입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논쟁한다. 즉 이들은 증거를 소통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감성 형태를 소통하려고 하기 때문에 논쟁하는 것이다. 결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러한 감성에 의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은 취미 공동체의 가능성을 단언하기 때문이다.

 

_카니베즈, 『시민교육』, 동문선, 1995

 

 

동일한 취미에 공감을 표하고, 그 수준을 서로 격려하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안심을 느끼고 자존감을 회복한다. 즉 사람들이 연결되고 함께 하는 이유가 '셈', '이해관계'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동일한 정체성으로 뭉친 것도 아니다. 이런 취미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연결되고 함께 하는 것은 바로 상상력과 감수성을 통한 동의의 가능성, 그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이른바 ‘친밀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이 공동체 외부에서 거부되거나 멸시의 시선에 노출되기 쉬운 사람들에게 자존 혹은 명예의 감정을 회복하고 저항의 힘을 획득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이 안에서는 자신이 여러 번 느낀 감각이 이해받을 수 있다(받을지도 모른다)는 감정, 무시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감정, 배척되지는 않는다는 감정을 느끼고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대부분의 생활문화, 취미 강좌는 이러한 ‘관계’에 착목하지는 않는다. 대개는 관련 기술에 주목하고, 그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참여하는 사람이나 강사나 마찬가지이다. 이전의 패러다임에서 자라왔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이것을 강사의 몫으로 돌려 이들을 교육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강좌와 강좌 바깥의 학습자들의 취미 공동체, 생활문화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되리라고 본다.

또 하나는 취미라 할지라도 그 레퍼토리를 다각화하는 것이다. 왜 우리의 취미들은 저 메뉴판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는 것인지. 다양성을 확장하기 위해서도 기관에서 강좌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다시 학습자 커뮤니티의 활성화다.

 

올해 벽두의 변화 이슈 가운데 가장 핫한 이슈는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준 만화 같은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판단은 논객들의 쟁론 속에서 지금은 살짝 유보된 듯하다. 낯선 것이 수용되는 과정엔 반대가 있기 마련이며, 그 반대 덕에 새 것이 정착될 때 있을 시행착오를 줄이고 그나마 나은 방향을 찾아보려는 성찰과 대안이 마련된다. 학습관의 생활문화강좌 축소가 학습관 안이나 지역사회에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조용하게 정착된다면 원래 취지대로 사업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고, 민원과 갈등이 증폭되는 드라마가 연출된다 해도 우리가 말하려는 바를 드디어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게 될 터이니 어느 쪽이든 기대가 된다. 

 

 

 

* 김진화, 한국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6대 영역, 현황과 과제, 웹진 와 148호, http://www.wasuwon.net/122618

** 위와 같음

 

 

 

 


평생학습 딜레마  평생학습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학습관 안팎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발신하고 관련 문제를 평생학습 종사자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현업 종사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과 할 이야기가 많다. 독자들과 열린 마음으로 평생학습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백현주


 

백현주
수원시평생학습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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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경아 2018.01.18 09:17
    역시 수원시평생학습관 동향리포트 '와' 는 '와~' 탄성을 자아내게 하네요.. 교육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인식을 이렇게 리얼하게, 때로는 도발적으로 던지고 있는 매체가 또 있을까 싶어요. 백현주 기획실장이 쓴 이번 주제는 이번달 저희 직원들과도 토론해 봐야 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배켠 2018.01.18 10:29
    매번 시간에 쫓겨 마감에 임박해서야 자신없게 내놓는 원고인데 이리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취미강좌 축소는
    학습관에 오면서부터 생각하던 것인데 엄두를 못내다가, 우리 교육팀장의 막강 추진력 덕에 시도해보게 되는데 향후 전개가 스스로도 궁금합니다. 원래가 좀 회의하는, 의심많은 스똬~일이라 딜렘마가 그나마 좀 먹히나 봅니다. ㅎㅎ 남관장님 칭찬 덕에 활력 있는 하루를 보낼 것 같습니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칭찬하는 법을 배우게 되네요!!!)
  • 양병찬 2018.02.01 04:00
    멋진 결행! 한국 평생교육의 대전환이 시작되네요. 저도 뭔가 해야 되는거 아닌가 하는 의욕이 확 들어오는데요. 강좌에서 동아리로. 사실 우리 대학 평생교육원의 직원이 스스로 기획해서 재능기부 강사를 모집하고 학습동아리들을 운영하겠다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제가 이건 공공 평생학습관에서 해야 하는건데 하면서 엄지척했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