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학교]

베짱이는 행복하면 안 되나요?

칼럼 l Writer_진계영 upload_관리자 posted_Jan 29, 2018

아, 이건 제대로 된 뒤통수치기다. 믿었던 선데이, 느이, 남. 그들은 왜 중간고사 시험을 치르러 오지 않은 것인가? 그들은 사전에 나에게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이건 시험거부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렵게(의사소통의 어려움이다.) 메신저 친구가 되었건만, 해야 할 말이 있을 땐 태국어로라도 메시지를 보내라고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왜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시험 날 학교에 오지 않은 것인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로 이어진 신년 연휴 덕분에 이 사건은 내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혀졌다(5학년의 수업은 매주 금요일이고 휴가 후 첫 등교 날에는 신년 파티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중간고사 사건 이후 3주 만에야 교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휴가 후 첫 등교 날, 밴드들의 공연과 K-pop 댄스 배틀이 펼쳐지고 있는 체육관 앞 공연장에서 하필이면 헤벌쭉 웃고 떠드는 그들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마지막 면죄부를 줄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래, 최소한 나에게 미안한 표정과 눈빛을 보내. 부탁이야, 얘들아.’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니 허탈해졌다.

 

‘얘들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시험을 안 본 거니? 내가 우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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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5학년 학생들. (왼쪽부터) 선데이, 사당, 몬, 남, 느이. 사실 이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5학년 학생 12명 중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다. 선데이, 남, 느이는 5개월 만에 토픽 1급을 획득했다.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행복 바이러스를 가진 학생들이다. ‘아는 게 모르는 게 되지는 않는다’는 당돌한 대답의 주인공은 선데이다.

ⓒ진계영 제공

 

 

‘행복’할 권리

 

용감한 그들은 마테욤 matthayom 5, 5학년은 한국 학제에서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한다. 3주 만에 만난 학생들에게 왜 시험을 안 보러 왔는지 이유를 물었다. 이유인즉슨 이렇다. 이번 해의 공식적인 신년 휴가는 주말을 포함해 4일이었지만 5학년의 몇몇 학생들이 휴가가 시작되기 전 금요일을 자체 휴일로 결정하고 학교에 가지 말자고 모의했다. 나의 학생들은 모의에 주동적인 학생들은 아니었지만 자신들과 친한 친구들이 오지 않는 학교에 굳이 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자신들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 없는 학교에선 행복하지 않아서 저도 안 왔어요.”

 

당황스러웠다. 첫째,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친구들의 결정에 따른 행동이라는 점. 둘째, 그 이유가 결국 그들이 학교에 다니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그것이 곧 그들이 행복해야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아, 놀랍게도 그들은 학교에 친구를 만나러 오는 것이다. 행복하려고 오는 것이다. 친구들이 있고 이야기하고 웃고 지내는 학교생활이 너희에게 행복이라면 그렇다면 성적은 어떨까? 고2이니 분명 성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고 성적은 그들의 행복에 어느 정도의 포션을 차지하고 있는 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성적은? 만약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지 않고 중간고사 성적을 0점 처리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니?”

 

생각보다 답은 너무 빠르게 돌아왔다. 그만큼 생각할 여지가 필요하지 않은 질문인 것이다. 그들에겐.

 

“괜찮아요. 성적이 0점이라고 제가 아는 게 모르는 게 되지는 않으니까 괜찮아요.”

 

두둥~~  ‘아는 게 모르는 게 되지는 않는다.’라니. 이 얼마나 철학적인 대답인지. 왜 여기 학생들은 이렇게 당당한 것인지.

난 그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해주었고 제 날짜에 시험을 치른 친구들과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10%의 마이너스 포인트를 주고 그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 와중에 다른 친구들이 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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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베짱이들로 유명한 마테욤 4 학생들. 하지만 이렇게 행복하게 웃는 학생들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진계영 제공

 

 

학교의 의미 어쩌면 역할?

 

태국 중부의 페차분Phetchabun 짱왓, 롬싹Lomsak이란 작은 도시에 있는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지 8개월이 되었지만 난 여전히 계속 적응 중이다. 학교에선 형식적으로 선생님과 학생의 서열이 뚜렷하고 7,80년대에나 있었을법한 복장과 두발 검사까지 한다. 아침과 저녁, 국기 게양과 하강식 때는 어디에 있건 멈춰 서서 국기에 대한 예를 지켜야 하며 어떤 날은 불시에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 머리 길이를 체크하고 조금이라도 머리가 긴 학생은 복도에 세워 놓고 가위로 학생의 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이건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다. 이런걸 보면 ‘아, 태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건 정말 불행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레이디보이나 톰보이들에 대해선 아무런 제재가 없다. 예를 들어 남학생의 교복 상태가 조금이라도 불량하면 바로 지적을 당하지만 레이디보이가 교복 반바지를 짧고 꼭 끼게 줄여서 입고 다녀도 그런 복장이 그들의 교복 규정이라도 되는 듯 선생님들은 그것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다. 그렇다. 복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다르게 드러내는 학생들을 선생님도 친구들도 부모들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험을 보지 않거나 출석 일수가 모자란 학생에게는 대부분 여러 번의 기회를 주고 또 주어 그들이 낙제하지 않도록 독려하고 그런 분위기에 대해서 다른 학생들은 관심이 없다. 뭐 공평하지 않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듯 보인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학생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다. ‘아, 태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건 괜찮은 일인 것 도 같다’ 최소한 학교 안에서 그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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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 검사에 적발된 마테욤 3, 뚝따. 선생님에게 머리카락을 잘리고도 까르르 웃으며 나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곤 머리카락을 자른 땡 선생님에게 사랑한다며 손 하트를 계속 날렸다.

ⓒ진계영 제공

 

태국의 모든 학교가 우리 학교와 같은 분위기일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다양한 종류의 학교들이 있을 것이고 분명 학업 성취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학교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런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불행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태국의 학교는 상당히 형식적이고 보수적이며 강압적으로 보이는 룰로 운영되지만 그 룰을 시행하는 주체인 선생님들과 학생들, 학부모들 사이에는 모종의 연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뭐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은 모두 ‘다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임’에 익숙한 것 같다. 학업 성취도가 높아 명문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에 갔다면 그건 그들의 재능일 뿐이다. 조금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분위기의 경쟁을 견딜 수 있는 게 그들의 재능이니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공부한다. 학업 성취도가 높지는 않지만 바른 도덕관과 생활태도를 가진 학생이 있다면 그것 또한 그의 재능이다. 그 학생은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달리기와 운동을 한다. 그리고 학교에선 솔선수범해서 선생님을 돕는다. 이렇게 모두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 그들만의 행복을 추구한다. 대학에 가지 않을 건데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는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하며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자체적으로 자신이 학교에서 해야 할 것을 정하고 딱 그만큼만 한다. 더 잘하기 위해 무리하게 애를 쓰지 않는다. 난 공부를 잘해. 넌 배구를 잘해. 난 춤을 잘 춰. 쟤는 성격이 좋아. 모두가 잘 하는 게 있다고 믿으며 모두가 행복하다.

 

그렇다면 학교에선 무엇을 배울까? 이곳의 학교는 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는 곳에 가까워 보인다. 그것도 단순히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행사와 활동을 통해 몸으로 그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도록 교육한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국기 게양과 하강식을 통해 국가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일 년이면 셀 수 없이 많은 종교 행사를 통해 종교적인 가르침과 함께 어떻게 이웃을 돌보고 나누며 함께해야 하는 지를 가르친다. 스승의 날은 물론 어머니날, 은퇴하는 선생님들을 위한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어른과 선생님들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거나 수많은 스포츠 행사를 통해 친구들과 어떻게 경쟁하고 협력해야 하는 지를 가르친다.

너무나도 많은 행사로 학생들의 수업일수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도 행사 준비로 쓰는 시간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공부하지 않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많은 것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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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원하는 ‘학교 문화’ 그대로 학생들은 서로 도울 줄 알고

어른과 선생님을 사랑하며 학교를 자랑스러워한다.  ⓒ진계영 제공

 

 

길 위에서 내가 얻는 것들

 

여기에 오기 전 알게 된 아들의 우울증은 나의 우울증보다 더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우리는 왜 불행할까? 우리는 참 열심히 달려 왔는데 왜 이렇게 허탈한 걸까? 운 좋게도 나는 가장 적당한 타이밍에 낯선 이곳으로 오는 행운을 얻게 되었고 8개월간 고군분투하며 많은 것을 얻었다.

우리는 너무 열심히 달렸다. 이젠 좀 쉬어도 된다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아들에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었고 더 이상 내가 지킬 수 없는 나의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여전히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enough for life' ‘받아들임’은 순응인가? 극복할 수 있고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포기하게 만드는 것인가? 너무 쉽게만 가라고 하는 것인가? 눈을 가리는 것인가?

다시 나에게 주어질 일 년 동안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게 있다. 나에겐 얻는 것도 잃는 것도 다 배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내 삶은 ‘플러스+마이너스=플러스’가 될 것이다.  

 

 

 


여행자의 학교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낯선 나라 태국의 교육 시스템. 우리나라와는 다른 해외의 교육 현장과 문화를 바라보며 평생학습계와 학습관이 배워야할 것과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진계영


 

진계영
생물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오래 전에 '가나아트'와 '월간 디자인'의 기자로 일했다. 한 때 디자인 중심 갤러리 '얼스프로젝트'의 대표를 지냈고 베트남의 사이공에서 'B & B 프로젝트'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레지던시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나이 들어 얼떨결에 시작한 한국어교육 공부로 ‘한국어교원’ 이라는 생애 최초의 자격증을 갖게 됐고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가르치며 또한 배우는 새롭고 재미난 경험을 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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