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규쌤의 미술수업]

낯설게 보는 우리 몸 - 석고형 뜨기

칼럼 l Writer_김인규 upload_관리자 posted_Feb 12, 2018

1.

나는 수업에서 현대미술을 인용하는데

그 인용이야말로 수업을 내용 있고 흥미롭게 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현대미술이 어려운 것 같지만 체험의 현장에서 그만큼 감각적으로 깊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없다.

 

이 수업은 조덕현(미술작가)의 <구림마을 프로젝트-낯선 과거로부터>(2000)에서 착안하여 시작한 수업이었다. 조덕현은 전라남도 영암 구림마을에 ‘개 숭배’라는 가짜 신화를 만들고 마을주민과 함께 미리 묻어놓은 개 조각을 발굴하는 퍼포먼스를 가졌다. 어쩌면 모든 신화가 말짱 거짓일 수 있지만, 그에 참여하는 대중은 신비감을 가지고 그 현장, 대상과 심리적 교류와 연대를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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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현의 구림마을 퍼포먼스  <출처 : 구글>

 

나는 학생들에게 이 이미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죽어 땅에 묻히고 먼 훗날 누군가 뼈를 발굴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신비로운 유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코멘트를 하고 그것을 가상으로 체험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 몸의 일부를 석고형으로 뜬 후 그것을 땅에 묻었다가 가을 축제 때 발굴하여 전시하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일단 석고형으로 몸을 똑같이 떠낼 수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나의 또 다른 숨겨진 수업목적이 있었는데,

첫째, 흙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대도시 학생들에게 땅을 파보는 경험을 시키며(학생들은 대부분 처음 해보았다고 하며 매우 흥미로워 했다),

둘째, 흙속에서 발생하는 자연의 현상(석고는 땅속에서 일정 정도 부식되고 흙물이 들며 변형될 것이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살아있는 자연을 경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석고형 뜨기는 생각보다 어렵게 진행되었다.

1학년 640명의 석고형을 뜬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으며(나는 몸살이 나고 말았다),

게다가 석고가 굳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망가뜨리는 학생들과의 싸움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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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고형 뜨는 과정  ⓒ김인규

 

일단 석고를 떠 모아놓으면 낯선 풍경을 연출하게 된다.

땅에 묻히기 전에 이렇게 학교 현관에 전시되었다.

‘낯설게 만들어 보는 것’은 현대미술의 매우 중요한 어법이다.

너무도 익숙하여 식상해 빠진 것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 미술은 알려준다.

우리의 손과 얼굴의 일부들을 이렇게 모아놓으니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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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묻기 전 학교 현관에 전시된 석고손  ⓒ김인규

 

3.

드디어 땅에 석고형 뜨기를 묻을 차례다.

지난 주말까지 4개 학급의 석고를 묻었다. 앞으로 10개 학급을 묻어야 한다.

정말이지 묻을 장소를 찾는 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시골은 널린 게 땅인데 도심의 학교는 땅이 없었다. 겨우 자투리땅을 찾아

학교 측과의 상의도 없이 몰래 묻었다.

이제 가을에 캐는 일이 남았는데

그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4.

3월부터 10월에 걸친 비교적 긴 프로젝트였다.

3월 한 달 내내 손 석고형 뜨기를 했고, 4월부터는 만들어진 석고형을 땅에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별로 묻은 자리를 표시한 지도를 그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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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공간에서 그냥 '땅'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겨우 마련한 비좁은 땅에 묻히는 손들.  ⓒ김인규

 

10월 중순 석고를 캐기 시작했는데 실제 자신의 석고를 찾아 캐내는 학생은 전체의 절반정도에 그쳤다.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우리의 기억은 그 몇달 새 흐릿해졌으며, 대충 그린 지도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중 찬찬한 학생들이 모여있는 학급(여학생 반ㅋㅋ)의 경우 39명 중 36명이 캐냈는데 그 때는 정말 감동의 도가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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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후의 땅파기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김인규

 

수업의 마무리에서 내가 그 의의를 정리하여 말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수업을 마치며 학생들이 저절로 우러나 박수를 치는 상황에 나도 감동을 먹었다.

따뜻한 날씨에 다 함께 모여 땅을 파는데 석고가 나올 때마다 탄성이 나온다.

교사인 나도 온갖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기분이었는데 학생들도 그랬다는 말에 나는 그게 자연과 만나는 삶이 갖는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만든 것이 흙 속에 보물처럼 묻히고, 몇 개월의 시간동안 땅 속에서 부식되고, 그걸 찾아 다시 파내는 것을 송두리째 체험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힘들었다고 하지만,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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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처럼 발견한 아이들의 손  ⓒ김인규

 

 

 


인규쌤의 미술 수업 김인규는 미술교사였고 학교와 교실을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미술작가이다. 30여 년을 매달려 온 그의 작품 '교실'은 아이들과 교사가 이루는 뻔한 세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가 목격하고 만들어 온 교실과 교육 이야기는 학습기획의 본질과 핵심으로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김인규
前 서천고등학교 미술교사. 30년 가까이 미술교사를 하고 살았다. 미술교육을 하면서도 예술가와 교사의 정체성 사이에서 그리고 학교가 어떤 곳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교사와 학생은 누구이고 어떤 관계인지 고민해 왔다. 저서로는 『안면도가 우리 학교야』(디딤돌,2005), 역서로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지형그리기』(문화과학사,2010), 『장소 특정적 미술』(현실문화,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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