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풍전등화의 대학들, 어디로 갈 것인가?

칼럼 l Writer_설동준 upload_관리자 posted_Feb 12, 2018

지방 사립대학 컨설팅 경험

 

최근 4년제 지방 모 사립대학의 ‘혁신 방안’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이미 종료 시점이 지난 컨설팅 프로젝트에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해결사로 투입된 것이다. 그 학교 총장의 바람은 학교의 위상을 높이고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혁신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학교는 정부가 지원하는 대부분의 국고사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도 노력했고, 지역 내 타 대학 및 동아시아권 여러 대학과의 네트워크도 만들었다. 디지털시대에 맞춰 온.오프라인 병행 교육이 가능한 시스템도 구축했다. 개교 30년이 안 된 신생 대학 치고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보면 서울 권역 Top10 대학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왜 학교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가?' '학교의 간판과 무관하게 ‘실력’ 있는 사람들이 배출되고, 그것이 학교의 유무형의 자산이 되는 일이 왜 나타나지 않는가?' 나는 담당 컨설턴트에게 보낸 메일에 상당히 노골적인 의견을 썼다. “마치 공부 못하는 학생이 공부 잘하는 학생을 따라 문제집만 무수히 구매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런 후에 더 이상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노력으로 힘을 빼지 말고, 학교 상황에 적합한 운영 방안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그래서 학교의 교육 철학, 혹은 최소한 학교가 바라는 인재상을 중심으로 학교에서 키워나갈 수 있는 <핵심역량>을 정하라고 주문했다.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실질적인 측정 방법, 학습자 및 교수자 데이터 수집 방법, 데이터 프로세싱 및 관리 방법, 적합한 교과 연계 방법 등을 배치하는 안을 만들었다. ‘역량’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학생, 교수, 교과목, 교육과정, 학교 행정을 재배치한 것이다. 이미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을 내팽개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재배치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컨설팅 보고서에 대해 건너 들었던 총장의 반응은 “역량 중심 교육, 그거 우리도 이미 하고 있어요”였다. “그런 거 말고 뭔가 좀 더 미래형 대학에 어울리는 콘셉트를 찾아달라”는 요청도 함께 전해 들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약간의 답답함과 함께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과 같은 항변이 떠나지 않았다.

 

‘역량 기반 교육을 얼마나 잘 하고 계십니까?’

 

 

세라믹공학과의 전설

 

총장이 원했던 미래형 대학의 콘셉트가 일면 이해는 된다. 언뜻 보면 학교의 교육 내용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서 포장지만 바꾸는 얄팍함을 원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명망이 높지 않은 지방 사립대학으로서의 지위, 그다지 높지 않은 입학생의 학업 능력, 빠듯한 학교 예산, 무너져가는 지방 경제로 인한 지역 전반의 불안감과 인재 유출, 우수 교수진 확보의 어려움 등등.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미래형 학과나 코스를 만들고, 좀 더 우수한 인재들을 모을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학교의 위상을 높이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돌파구일 수 있다. 학교가 내실이 있어서 뛰어난 사람들이 모이는 것과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서 학교의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은 닭과 달걀 같은 것이다.

 

과거에 그런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아직 반도체 산업이 한국의 주력 산업이 되기 전, 공과대학 입학 성적 기준으로 하위권에 있던 학과 중 요업공학과라는 곳이 있었다. 사람들은 요업공학과 재학생들에게 ‘변기 만드는 거 배우는 과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다 서울 소재 모 대학에서 학과 명칭을 세라믹공학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해 입시에서 공과대학 Top의 위치를 단번에 달성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신소재공학과로 불린다. 웃지 못할 일 같지만 궁여지책으로 이런 돌파구라도 모색하는 것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역량 기반 교육과 미네르바 스쿨의 실제

 

총장의 바람대로 반짝반짝하는 사람들이 모이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학교에 적합한 역량 기반 교육도 '제대로' 해내기를 바란다. 최신 교육 트렌드에 관심이 많은 총장은 미네르바 스쿨 모델에도 큰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미네르바 스쿨 모델이 철저하다 싶을 정도의 역량 기반 교육 시스템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2012년부터 대략 3~4년 정도 교육계의 돌풍은 MOOC였다. 그 충격파가 어느 정도 식상해질 즈음 떠오른 교육계의 스타가 미네르바 스쿨이다. 특히 작년에 EBS의 다큐 방영, 미네르바 스쿨 재학생들의 서울 거주 이슈 등이 맞물리면서 한국에서 미네르바 스쿨은 신비로운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다.

 

미네르바 스쿨은 어느 날 뜬금포로 등장한 학교 모델이 아니다. 지난 시기 대학 교육의 특징적 모델과 그것의 한계에 대한 반성, 최신의 학습과학 및 인지과학의 연구 성과를 결합하여 만든 대안적 모델이다. 미네르바 스쿨의 설립자 중 한 명이자 인지심리학자 Stephen M. Kosslyn이 쓴 책 <Building the Intentional University - Minerva and the Future of Higher Education >(MIT Press)에 보면 그들의 생각과 고민이 잘 나타나있다.

 

정체불명의 강호 고수처럼 등장한 미네르바 스쿨에 대해 많은 환상과 추측이 있지만, 이 학교의 모델은 의외로 간단하다. <동시대에 필요한 핵심 역량에 대한 명확한 정의> + <그것을 고밀도로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 + <비용 효율성을 위한 온라인 전략>이 그것이다. 이 중 역량 기반 교육을 고밀도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미네르바가 자랑하는 Active Learning Forum이다. 학생들의 참여도(engagement)를 기술적으로 가시화시키는 방식을 통해 학습 몰입도를 높이는 전략인데, 참여도 측정이 그저 말하는 시간에 비례하는 방식이라는 뚜렷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참여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촉진하고자 한 시도는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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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스쿨의 Active Learning Forum 시스템

<출처: 블로터닷넷, http://www.bloter.net/archives/239571 >

 

미네르바 스쿨은 이런 기술 플랫폼의 토대 위에서 철저하게 역량 교육을 진행한다. 특히 1학년 시기에는 미네르바 스쿨이 생각하는 4대 핵심 역량에 대한 교육만 진행한다. 컨설팅 회사로 유명한 맥킨지(McKinsey)의 로지컬 씽킹(Logical Thinking)과 같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의외로 간단한 이 접근법을 성공해낸 대학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미네르바 스쿨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가을 한양대학교를 방문했던 Stephen M. Kosslyn은 “졸업생이 배출된 후에 그들이 보여줄 퍼포먼스를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는데, 어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전국구보다 나은 지역구

 

역량 기반 교육만 한다고 갑자기 미네르바 스쿨 같은 위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미네르바 스쿨은 전 세계에서 탁월하다 싶을 정도의 지원자 중 2%만을 입학생으로 받았다. 이것은 향후 미네르바 스쿨에게 양날의 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지방 대학들이 따라할 수 있는 콘셉트도 아니다.

 

컨설팅을 맡았던 그 대학의 요구대로 미래형 학과를 제안하면서 그 학과의 교육 내용을 오롯이 지역 이슈와 연결시켰다. 무리하게 전국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말 것, 전국구 엘리트들이 주목하지 않는 혹은 주목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연대망을 구축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제도와 시스템을 차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특정 지역과 주민들의 삶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인지능력 높은 엘리트들이 몇 번 ‘방문’해서 보는 것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대학들이 반드시 손에 쥐어야 하는 무기인 것이다.

 

컨설팅을 하기 전까지 그 대학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지만, 어찌어찌 인연이 되었으니 그 대학의 앞날에 무심하기 힘들 것 같다. 대학가 전체가 미네르바 스쿨, MIT MediaLab, 스탠포드 D-school 등에 주목하는 시대에 부디 쉽게 카피할 수 없는 인간성의 토대 위에서 돌파구를 찾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Book &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교육공학도 설동준의 진지하고 성찰적인 book & column. 책과 전시, 영화 등 문화예술을 망라해 삶의 한 국면에 대한 조용한 성찰과 깊은 울림을 이끌어 낸다.


 

설동준
문화예술 기획자 겸 교육공학도. 신앙, 윤리, 교육, 예술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스타트업의 조직문화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민간 예술단체 및 스타트업을 위한 일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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