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 딜레마]

연재를 마치며: 평생학습의 공론장을 위하여

이슈 l Writer_백현주 upload_관리자 posted_Feb 12, 2018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다섯 명의 인부를 들이받으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하자.) 필사적인 심정이 된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돌려! 죄 없는 사람 하나가 죽겠지만, 다섯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목숨을 구하는 행위는 정당해 보인다.

이제 다른 전차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저 아래 철로로 전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에 인부 다섯 명이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전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받기 직전이다.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 무력감을 느끼다가 문득 당신 옆에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서 전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당신이 직접 철로로 몸을 던질 생각도 했지만, 전차를 멈추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

그렇다면 덩치 큰 남자를 철로로 미는 행위가 옳은 일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연히 옳지 않지. 그 남자를 철로로 미는 건 아주 몹쓸 짓이야.”

누군가를 다리 아래로 밀어 죽게 하는 행위는 비록 죄 없는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해도 끔찍한 짓 같다. 그러나 여기서 애매한 도덕적 문제가 생긴다.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사람을 구하는 첫 번째 예에서는 옳은 것 같았던 원칙이 왜 두 번째 예에서는 잘못된 원칙으로 보일까?”

 

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쉽게 판단할 만한가? 위의 이야기는 그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선택이 어려운 다양한 질문들이 등장한다. 자유사회의 시민은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자유시장은 공정한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잘못인 때도 있는가, 도덕적으로 살인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가 등등.

저자는 여기에 하나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각 질문에 대한 여러 의견과 그러한 의견의 차이를 가져오는 다양한 철학적 견해와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누군가는 공리주의에 따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따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개인의 자유에, 또 다른 누군가는 평등주의에 입각해 문제를 다루고자 할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시로 난감한 선택의 상황,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가 의존할 도덕적, 철학적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문학 공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립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스스로 어떤 행동을 왜 그렇게 했는지 근거를 마련하고 토대를 쌓는 과정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인문학 공부는 혼자 들어앉아 하는 사유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저자가 딜레마적 문제를 통해 보여주는 결론은 여기 있다. 즉 어떤 정의론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의론에 대한 사유가 반복되어야만 하는 이유, 그리고 이러한 사유들이 서로 경합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무엇이 과연 옳은 판단인가? 옳고 그름에 대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한 듯해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위대한 철학자의 수만큼이 아니라 어쩌면 세상의 인구 수만큼, 생명체의 수만큼 많다. 아니, 많아져야 한다. 이러한 모습에 대한 이름이 아마도 ‘민주주의 사회’일 터이다. 따라서 무엇이 옳은 판단인가 하는 것은, 독서와 사유를 통해 나 혼자서 결정하는 것을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극심한 의견 대립과 격렬한 논쟁의 장이 연출되어야 한다. 그런 토론의 장을 통해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이 가진 입장의 장점과 한계를 인식하게 된다.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의견 충돌의 두려움 때문에 도덕적 신념을 공적인 담론의 장으로 가져오길 주저하지만 논쟁이야말로 ‘건강한 사회의 상징’이다.

 

지난 13차례에 걸쳐 다룬 [평생학습 딜레마]는 평생학습 현장에서 마주치는 난제들에 대한 나름의 질문으로 구성해보았다. 어떤 것은 확 와 닿기도 하고 어떤 것은 당최 납득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13개의 질문이라지만 실은 2가지 문제로 좁혀진다. ‘학습관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학습자 또는 이용자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여전히 이 질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이러저러한 생각과 판단들이 유사한 영역과 위치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 공유되고 경합하는 공론장으로 나아가길 바랐지만, 응원과 격려의 댓글 이상의 토론은 결국 일어나진 않았다. 학습관 내부에서, 그리고 인근 기관의 종사자들과 작은 대화의 자리가 있기는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사느냐 죽느냐’ 라는 햄릿식 문제 설정이 그렇듯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진짜 물음을 회피하는 그런 질문으로, 그저 열린 질문으로만 남아있고 싶지는 않다.

웹진<와>가 ‘담론장’이라든가 ‘공론장’을 표방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번엔 ‘평생학습의 공론장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새로운 곤경의 상황으로 질문으로 시작해볼까 한다.

 

 

[평생학습 딜레마] 기사 목록

소비자가 될 것인가 시민이 될 것인가

주민은 이웃이 되고, 이웃은 이용자가 될 수 있을까?

평생교육종사자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무엇인가

안전을 꾀할 것인가 위험을 무릅쓸 것인가

학습자로서 시니어, 이끌 것인가 vs 놔둘 것인가

학습활동에 대한 보상 약일까 vs 독일까

평생학습기관의 직원은 교육기획자인가 vs 교육자인가

함께 찾은 몇 가지 딜레마

학습의 소외계층은 사회적 소외계층과 같은가 vs 다른가

장애인에 대한 교육 vs 장애인을 알아가는 교육

시간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나의 자유시간 vs 너의 노동시간

우리는 진정 보험보다 힘이 되는 배움을 기획하고 있는가

생활문화강좌 육성할 것인가 vs 축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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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 딜레마  평생학습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학습관 안팎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발신하고 관련 문제를 평생학습 종사자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현업 종사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과 할 이야기가 많다. 독자들과 열린 마음으로 평생학습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백현주


 

백현주
수원시평생학습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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