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학교]

작은 마침, 또 다른 시작

칼럼 l Writer_진계영 upload_관리자 posted_Feb 26, 2018

졸업식 시즌이다. 멀리 있지만 친구들의 아이들이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소식을 건너 들으며 늘 추웠던 졸업식을 떠올렸다. 이곳도 졸업 시즌이고 이제 곧 2학기가 끝날 것이며 두 달간의 긴 방학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태국의 학기는 특이하게도 5월 중순에 시작해서 9월 말에 1학기가 끝난다. 그리고 한 달간의 방학을 지낸 후 11월에 시작된 2학기는 3월 초에 끝난다. 어제는 마테욤 6의 졸업식(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고 오늘은 마테욤 3의 졸업식(중학교 졸업식)이 있다. 마테욤 6 학생들은 졸업식 이후엔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 O-net라는 한국의 수능과 같은 시험이 남아 있고 대학 입학과 관련된 절차도 남아 있으니 졸업식 이후라 해도 계속 학교에 오가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마테욤 3 학생들은 졸업식을 하고도 2주간은 더 학교에 와서 수업도 듣고 기말 시험도 치러야 한다. 학기를 끝내고 졸업식을 하면 학생들이 오지 않기 때문에 학기 중에 미리 졸업식을 하는 것이라고 태국 선생님들은 농담처럼 얘기하는데, 학생들을 아는 나에겐 더 이상 그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시험을 치르러 오지 않는 학생들과의 사투가 나에겐 여전히 스트레스일 것이며 졸업식을 끝낸 학교는 너무 어수선해서 끝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끝나지 않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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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교복 오른쪽 가슴에 새겨진 이름 위쪽에 학교 배지를 달아주며 그의 미래를 축복해주었다.

천하의 말썽꾸러기들도 이렇게 무릎을 꿇고 선생님 앞에 앉으면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이 된다.

처음 스승의 날 행사에서 학생들이 이렇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을 때 몹시 당황했던 나는 이제 여유롭게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해 줄 수 있는 넉살이 생겼다. 졸업과 함께 갖게 되는

이 작은 학교 배지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영광스런 기념품이다. 

ⓒ진계영 제공

 

 

작은 배지의 무게

 

졸업식은 여러 가지로 내가 예상했던 졸업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졸업식 문화를 좀 더 학생 중심으로 바꾸어보려는 시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개인적으로 미국이나 국제학교 시스템에서 그런 졸업식을 경험해보기는 했다. 어쩌면 이곳 학교의 전반적인 시설이나 시스템이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한국의 80년대 수준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 나는 졸업식에 참가하려고 나서면서 30년 전 그 졸업식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곳의 졸업식은 시작부터 인상적이었다. 졸업식장에 학생들과 선생님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가족들,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지역 VIP들…. 그런 종류의 내방객 없이 오로지 학생들과 선생님들만이 있었고, 그 어떤 형식적인 연설도 없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태국의 학교는 다분히 관료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형식적인 내방객들의 소개와 연설이 줄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졸업식은 그런 절차 없이 바로 시작되었다.

 

졸업식이 진행된 운동장 앞쪽엔 길게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 자리는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학교 배지를 달아주고 머리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의 말을 해 줄 선생님들을 위한 자리라고 했다. 그 자리에 앉을 선생님들 역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졸업생들의 담임선생님들은 물론 그 자리에 기꺼이 앉아 있었지만 설령 그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강요되지 않는 자리였다. 단지 학생들의 졸업과 그들의 미래를 기쁜 마음으로 축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앉을 뿐이었다. 졸업식은 선생님들이 자리를 잡고 학생들이 줄지어 나와 가슴에 배지를 하나씩 달고 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특별해보이지 않는 학교 배지였지만 생각해보니 큰 의미가 있었다. 학생들은 평소에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 학교 배지는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영광스런 기념품인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태국에선 대학생들도 모두 교복을 입는데 입학과 동시에 교복에 대학교 배지를 단다. 대학생들은 ‘입학’이라는 성취를 인정받고 동시에 그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것이라면 중·고등학생들은 학교생활이라는 긴 ‘과정’의 대가인 ‘졸업’과 함께 학교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학교 106회 ‘동문회의 밤’ 행사가 얼마나 대단한 규모로 치러졌는지를 되돌아 생각해보니 이 배지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다음 행사는 재학생들이 졸업생들을 축하해주는 ‘붐’이라는 의식이었다. 모두가 참여하는 것은 아니고 졸업생 중 두 개의 학급과 바로 아래 학년의 같은 두 개의 학급 학생들이 참여하는 상징적인 의식이었다. 학교마다 지역마다 ‘붐’의 형식은 모두 다르다고 한다. 공식적인 ‘붐’이 아니어도 하루 종일 곳곳에서 작은 규모의 ‘붐’이 있는 걸 봤다. 같은 동아리의 선후배 혹은 아주 인기 있는 학생이라면 일종의 팬클럽 후배들이 축하의 ‘붐’을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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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은 졸업하는 선배와 후배들이 함께 만드는 의식이다. 

졸업을 축하해주면서 동시에 어디에 있더라도 '동문'의 울타리로 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결속을 다지는 의식이라고 한다. 주로 학교의 역사가 길고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학교의 졸업식에서 '붐'의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Tikie Piyap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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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졸업식은 여기서 끝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온전히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의 졸업을 즐기는 비공식적인 행사가 계속되었다. 학교에서는 졸업생들을 위한 점심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퍼레이드 중에는 재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졸업생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고 달려가 포옹을 하기도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한 졸업식이긴 한데 부모님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 정말 의외였다. 태국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부모님들도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아무도 오지 않는지 묻자 모두 바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보통 태국의 부모들은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과 대학교 졸업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참여한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들이 일을 할 것이고 어떤 부모들은 정말 졸업식에 참여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모든 졸업생의 부모들이 다 같이 참여하지 못할 상황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거기엔 또 모종의 ‘짬짜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설마, 졸업식에 홀로 있을 학생들을 위한 깊은 배려? 나로선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혼자 그렇게 생각하며 흐뭇해했다. 진실이든 아니든 오늘 내가 본 졸업생들은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다 같이 다음 세상으로의 첫 발을 함께 떼었다. 모두가 축복을 받았으며 똑같이 하나씩의 학교 배지를 가슴에 달았고 똑같은 축하 음식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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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를 준비 중인 졸업생들. 이 날만큼은 모두가 ‘왕’이었고 주인공이었다.

​ⓒ진계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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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이렇게 간단한 목걸이 선물을 만들어 자기 이름을 써 넣거나 혹은 사진을 함께 붙여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준다. 졸업 후에도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며

사탕이나 과자, 상대방이 특별히 좋아하는 마마(태국 라면)를 연결해 목걸이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진계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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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어 선생님인 마토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늘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데

그동안 찍은 학생들의 사진으로 이렇게 의미 있는 선물을 만들어 졸업생들에게 주었다. 

​ⓒ진계영 제공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자

 

우리 학교는 마테욤 1부터 6까지의 학제를 갖춘 학교이다. 즉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함께 공부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오늘 졸업한 마테욤 3학생들의 대부분은 다음 학기에 마테욤 4로 다시 만날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개중에는 치앙마이나 방콕 등 좀 더 큰 도시의 학교로 공부를 하러 가는 학생들도 있고(이 경우는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경우이다), 또 일부는 직업학교로 진학을 하는 학생들도 있으니 이곳에서도 중학교 과정을 마치면 어느 정도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곳의 학생들은 여전히 아무 걱정이 없는 해맑은 얼굴이지만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 얻게 될 자유로움보다는 부딪히게 될 어려움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부분이 신경 쓰이고 걱정이 되는 ‘어른’인 나는 학생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하루 종일 혼자 이런 노래나 흥얼거렸다.

 

“꽃길만 걷자, 그런 말은 난 못해,

좋은 것만 보자, 그런 말도 난 못해,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란 말,

더는 아프지도 않을 거란 말,

그런 말 난 못해,

그런 거짓말 못해”

 

“이 미친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행복해야해.

얘들아, 행복해야해!!!”

 

나에게 졸업식을 끝낸 학교의 분위기가 ‘끝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끝나지 않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인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졸업이란 그렇게 끝난 것도 끝나지 않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새로운 시작일 뿐인 것이다. 

 

 

 


여행자의 학교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낯선 나라 태국의 교육 시스템. 우리나라와는 다른 해외의 교육 현장과 문화를 바라보며 평생학습계와 학습관이 배워야할 것과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진계영


 

진계영
생물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오래 전에 '가나아트'와 '월간 디자인'의 기자로 일했다. 한 때 디자인 중심 갤러리 '얼스프로젝트'의 대표를 지냈고 베트남의 사이공에서 'B & B 프로젝트'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레지던시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나이 들어 얼떨결에 시작한 한국어교육 공부로 ‘한국어교원’ 이라는 생애 최초의 자격증을 갖게 됐고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가르치며 또한 배우는 새롭고 재미난 경험을 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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