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장의 종횡무진]

루덴스에서 사피엔스로 – 아이는 그렇게 성장한다

이슈 l Writer_현민주 upload_관리자 posted_Feb 26, 2018

거북이공방의 ‘위계’와 ‘안전’

 

수원시평생학습관 1층 복도 끝 강의실은 학습관 내방객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다. 오직 나무만을 소재로 이어 붙이고 꾸민, 여느 강의실과는 확연히 다른 출입문이 그것이다. 그러나 슬며시 밀고 들어가면 더 놀라게 된다. 켜켜이 쌓여 있는 송판과 각종 목재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무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곳곳에 날이 바짝 선 도구들은 시각을 장악한다. 종횡으로 정렬되어 있는 망치, 드릴 그리고 끌, 대패, 톱의 번쩍이는 날들은 독기 오른 살모사마냥 바짝 고개를 쳐들고 자신의 위엄을 ‘시전’하며 낯선 이의 방문을 경계하고 있다.

‘거북이공방’이라 부르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나무를 쪼개고 자르고 문지르고, 이어붙이거나 합친다. 맨 노동의 수고로움이 기계와 도구를 만나 훨씬 더 그럴싸한 생산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때론 버려지고 고장나 수명을 다한 물건들이 근육을 동반한 노동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기도 하고 변신완료, 완전히 다른 용도의 그것으로 바뀌기도 한다. 나이 든 세대에겐 ‘뻬빠’로 불리던 사포도 일조를 한다. 이렇게 각종 목재와 도구, 사람이 만나고 부딪히며 소음을 내고 먼지를 폴폴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공방은 학습관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생기 넘치는 공간임에 틀림없다.

 

거북이공방에는 주인도 없고 위계도 없다. 그저 무언가를 만들고 채우고 공간을 공유하는 ‘작업자’만 존재할 뿐.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위, 나이, 지식, 재산의 유무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남이 아닌 순전히 자신의 근육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 최선의 결과물을 위해 깎고 자르고 문지르는 일을 묵묵히 진행하는 작업자, 공유공간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매뉴얼을 준수하고 마지막 뒤처리까지 책임지는 참여자. 공방에서는 그것이 유일한 존중의 가치이다. 그러나 어떤 참여자라도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안전이다.

앞서 말했듯이 공방에는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날선 도구가 수두룩 빽빽하다. 일반 다른 강좌에 비해 사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학습관 입장에서는 당연히 예민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담당자가 개인의 작업까지 일일이 지켜보며 밀착 마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반대로 안전문제에 손을 뗄 수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실제로 공방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하기도 했기에 작업자와의 적정거리 유지와 개입이 늘 고민이기도 하다. 때문에 거북이공방 이용에는 공동 작업자로서의 역할과 규칙이 주어진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도구, 공간의 관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안전하고 자유로운 작업 활동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이다. 사실, 이렇게 보자면 공방에는 사람과 나무, 도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규칙과 역할 그리고 관계들이 존재한다.

 

 

낯선 아이들, 너흰 누구냐?

 

원인 미상의 이유로 전 세계 여성들이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하게 된지 십 수년, 그래서 지구에서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이 18세. 인류가 점점 절멸의 상황으로 빠져드는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SF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 영화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어도 전국 대부분의 평생학습관에서 어린이와 젊은 사람을 찾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평일 학습관에서 어린이가 뛰어놀게 되면, 게다가 반복적으로 출몰할 경우 성인 학습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익숙지 않은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 낯선 풍경 속에 세 명의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아무런 말없이 오직 자신의 작업에 자못 진지하게 몰두해 있다.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뭘 만들 거야?”

 

그러나 아이들은 먼저 대답하는 사람이 지는 어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뿐 몇 분이 지나도 답변을 하지 않는다. 이런 부끄럼쟁이들. 한 손엔 나뭇가지를, 반대 손에는 톱을 들고 한참을 고민을 하다 슬며시 입을 떼기 시작한다.

 

“자동차요..”

“텔레비전이요...”

“아직 생각 중이예요...”

 

거북이공방을 찾아오는 세 명의 꼬마친구. 공방을 종종 찾는 사람들이라면 혹은 학습관을 자주 오는 이들이라면 이 친구들을 보았을 테고 무얼 하는 아이들인지 궁금할 것이다. 공방담당자인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학습관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는 같은 반 5학년 친구이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뚝딱 만들거나, 공방 앞의 인디언텐트를 만들고 있다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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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놀이터 워크숍 - 거북이공방 ‘두드림’ 활동모임의 구성원들이 인디언텐트 틀을 만들고,

아이들이 나무를 덧대어 완성시켜 나가고 있다.  ⓒ수원시평생학습관

 

 

공방은 한 달에 두 번 ‘오픈데이’를 한다. 작업 공간이나 도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공방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활짝 개방한 것이다. 동네 골목이나 놀이터가 아니라 학습관을 아지트로 삼아 자기들끼리 놀던 세 친구. 그 모습을 자주 목격한 공방 담당자의 ‘오픈데이’ 초청.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제 세 친구는 작업자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놀이로 시작된 작업, 이어진 사고의 확장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전설일 뿐 현실계에서 필요란 오직 ‘구매의 어머니’일 뿐이다. 불편한 것은 못 참고 필요한 것은 사서 쓴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으면 자신의 욕망이 발화된다. 그 욕망은 기필코 구매와 소비로 이어져야 비로소 진정이 된다. 그리고 이제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등치시키는 주기가 매우 짧아져 버렸다. 해서 인간의 다른 이름은 호모컨슈머리쿠스.

기실 경제적 기준으로만 따진다면 사서 쓰는 것이 이문 남는 일이다. 공장에서 쏟아내는 물건들, 게다가 값싼 인건비를 무기로 소비를 부채질하는 물건들이 차고 넘친다. 바쁜 현대인에게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것은 비합리적 행위로 비춰진다. 게다가 직접 만드는 행위는 얼마나 귀찮은가. 도구를 챙기고 안쓰던 근육을 사용하고 게다가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안타깝게도 처음의 계획과는 거리가 멀기 일쑤. 차라리 그 시간에 주문 버튼을 누르고 안락한 소파에 몸을 눕힌다. 이렇게 만든다는 것은 점점 낯선 일이 되었고 낯설기 때문에 더 낯설게 되는 악순환이 무한반복 되고 있다.

세 명의 친구들은 공방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런 아이들에게 더 눈길이 가고, 신기하고, 궁금하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도구를 잘 다루었다거나 손재주가 남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작은 나무 조각을 본드로 붙이고 그림을 그리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 수준의 ‘단순 놀이’ 정도로 시작했다.

네모난 나무 조각에 TV그림을 그려놓고는 마치 본인들만의 방송국을 만들 듯 이것저것 하나씩 그려나갔다.

 

‘방송국이면 자동차도 필요하겠네?’

 

필요는 만듦으로 이어진다. 기다란 나무에 유리창과 차문을 그렸다. 그런데 이제 평소보다 난이도 높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름지기 차라면 바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냥 동그라미만 그려 넣기에는 ‘초딩 5학년의 가오’가 떨어지는 법. 세 친구는 본격적인 작업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아주 단순하지만 조금씩 도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곤 공방에 오는 횟수가 점차 늘고 시간이 더해지면서 스킬이 향상되었다. 강사와 수강생이 만나는 강좌가 아니라 자유롭게 이용하는 오픈데이기에 그들은 스스로 배워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도구를 다루는지 세심하게 관찰했고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톱, 끌, 대패, 드릴 등의 도구 이용법을 익혔으며 더 나아가 전보다 복잡하고 정교한 무언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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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의 공방활동. 그리고 붙이는 활동에서 점차 도구를 활용해 만들기 시작했다.

ⓒ수원시평생학습관

 

 

 

어른들의 변화

 

만들고 고민하는 시간과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늘수록 아이들의 이야기는 커져갔다. 처음에는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정도였다면 이후에는 필요한 물건을,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혹은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선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오픈데이 어느 날, 세 명의 친구는 같은 반 친구 한 명을 데려 왔다. 뉴페이스 왈 “수요일(오픈데이 열리는 날)이면 세 명이 학교 끝나기 무섭게 어디론가 가길래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서 같이 왔다” 고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은 나이불문이다.

세 친구는 오자마자 서둘러 작업을 시작했다. 곧 학원에 가야 할 새로운 친구에게 줄 선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급하게 자투리 나무를 고르고 톱과 드릴을 챙기더니 자연스럽게 손에 쥐어 주고 드릴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너 의자 필요하다고 했잖아, 이렇게 하면 돼.”

"여기를 잡아.“

 

가만 보니, 친구에게 줄 선물은 작은 의자가 아니었나 보다.

이 날 나는 여러모로 이 친구들에게 놀랐다. 하나는 이렇게 말을 잘하는 아이들이었다는 점과 또 하나는 친구에게 완성품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곳에서 만들고 있는 경험, 방법과 과정을 선물했다는 점이었다. 사실 공방에서 진행되는 강좌, 프로젝트에서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 있다.

‘이곳에서는 물건을 완성하기보다 만듦을 위한 기술과 과정을 경험하는 것을 배웁니다. 때문에 수업이 끝난다고 꼭 물질적인 것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고, 완성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주체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돈을 내면 무언가를 사고 얻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에 보이지 않는 과정과 기술을 가져간다는 것은 어색하기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과정들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 작은 작업자들은 한 번도 이야기해주지 않은 가치와 과정을 스스로 찾아 실천하고 있었다. 또한 아이들은 ‘만듦’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채워나가며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이것은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퍼져나갈 때 공방 한 켠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오픈데이에는 ‘강좌’처럼 강사가 상주해 있거나 교육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재료를 고르는 것도,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인지 오픈데이에 온 아이들을 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그렇게 친절하지만은 않다.

 

“이 도구는 위험해”

“이건 안돼”

“너희들은 어려서 이거 못해”

 

아이들이 만들기도 전에, 고민도 하기 전에 ‘안전’의 문제로 말리고 제한하는 것이 다반사다. 사실 나도 아이들이 무언가를 만들겠다며 톱을 쥐었을 때 작은 손에 잡은 톱이 그렇게 컸었나 싶었다. 아마도 다들 아이들이 걱정되고 염려되어 제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염려가 한 발짝만 더 나가면 과잉보호가 된다. 아이들은 늘 어른들이 만든 안전한 울타리, 그 세계 안에서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그 보호의 과잉은 형태만 바뀔 뿐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세상은 ‘다 큰 아이’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전지대에 머문다고 결코 안전한 것이 아니다. 위험에 부딪치고 경험하고 몸에 새겨 넣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공방 어른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방법을 익히고 조심스럽게 만드는 모습이 안전만 따지던 어른들의 모습을 바꾼 것이다. 어른을 깨우친 것은 어떤 이론이 아니라 함께 한 경험과 활동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선배가 되어 아이들이 올바르게 혹은 좀 더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도구 잡는 법과 자세를 알려주곤 한다. 어쩌면 어른들에게 세 친구는 이제 단순한 철부지 아이가 아니라 나이가 좀 어린 작업 동료로 이해되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처럼 날 것의 나무 같은 아이들의 순수한 물음과 고민과 행동이 본인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점과 지평을 확장시켜주고 있다.

 

 

“커피 한잔 드세요”

 

학습관에서는 2017년 10월, 2박 3일 기간 동안 학습관의 공간과 강좌를 오픈해서 일종의 작은 축제를 열었다. 다양한 행사를 목전에 둔 학습관 식구들은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 행사 어느 날. 아이들은 검정색 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이거 드세요.” 캔커피였다. 그러고는 후다닥 시야에서 멀어졌다.

 

“안경을 썼어.”

“단발머리야”

“2층 사무실에 있는 남자선생님이야.”

 

학습관 직원의 이름을 모르니 개별 특징을 통해 직원 한명 한명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직원의 손에 캔커피를 들려주었다. 왜지? 갑자기 아이들이 캔커피를 주는 이유가 무얼까?

세 친구 왈, “항상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웠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학습관에서 놀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 갔는데 우리만 먹기 미안해서 어른들의 상징이자 좋아할 것 같은 커피를 샀다”는 것이다. 그 나이 때 안 먹고 싶은 것이 어디 있고 맛없는 것이 있을까. 그렇다고 용돈이 풍족한 것도 아닐테고, 17개의 캔커피를 사려면 아이들에겐 결코 적은 돈도 아닐텐데.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선물을 사준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고마웠다. 나중에 우연히 아이들의 부모님을 뵈었는데 이 사실을 모르고 계셨다.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손 벌리지 않은 채 본인들의 용돈을 쪼개고 모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선물을 한 것이다. 말을 걸면 대답하기도 부끄러워하던 녀석들이 얼마나 고민하고 망설였을지, 건네주기까지 얼마만큼의 용기를 내었을지 모습이 보여 뭉클하기도 했다.

직원들이 ‘착한어른’이어서도 아니고 호칭이 ‘선생님’이기 때문에 준 것도 아닐 것이다. 착한어른이라기에는 어른으로서의 친절도, 선생님이라기에는 가르침도 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저 공방 앞에 ‘텃밭’이 생겼을 때 씨앗을 같이 심고 작물이 나면 재배의 맛을 나누거나, 배가 고프면 같이 배를 채우고 공방의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시간을 함께 했을 뿐이다. 이처럼 아이들과 많은 일상을 함께 했고 이런 과정 속에서 공방에서 이야기하는 ‘동료’로 범위가 확장되어 직원들과 친구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어른과 아이’라는 관계를 넘어 함께 땀 흘리고 웃고 즐기는 ‘친구’였다.

 

 

호모루덴스에서 호모사피엔스로

 

아이들은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오고 있다. 같이 오는 친구가 2~3명 늘기도 했다. 일련의 경험을 통해 조금 더 친해져 대답을 듣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기도 하고 답변 내용이 길어지기도 했다.

지난번에 온 뉴페이스는 이후에도 종종 공방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며칠 전에는 친구들이 아닌 중년의 여성과 함께 왔는데 엄마였다. 함께 온 이유와 목적은 오직 단 하나. 그 친구는 A4용지를 구겨지지 않게 보관할 수 있는 나무상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자신의 작업을 지켜보는 ‘엄마’가 아니라 작업을 도와줄 ‘동료’로서 초대한 것이다. 아마 이후에 ‘동료’가 된 중년 여성이 또 다른 ‘동료’를 데려올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최근 핸드폰이 생겼다. 복도에 앉아 게임을 하기도 하고, 본인들의 영상을 찍어 유투브에 올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제 만드는 것이 재미없어졌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며칠 후 핸드폰이 생겼으니 핸드폰 거치대가 필요하겠다며 공방에서 뚝딱뚝딱 쿵쾅쿵쾅.

인간은 놀이를 찾는 호모루덴스. 그러나 놀이의 즐거움을 잊은 지 오래다. 필요하면 사고 불편하면 맞추는 것이 익숙한 오늘의 일상이다. 하지만 공방을 방문하는 세 친구는 달랐다. 놀이로 제작에 접근한 아이들은 주변을 살피면서 조금씩 노동을 배워나갔고 그것을 통해 복잡한 과정에 맞닥뜨려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역량과 근육을 키워나갔다. 그 과정을 통해 생각을 확장시키고 관계망을 넓혀나갔다. 그야말로 진정한 호모사피엔스로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앞으로도 쭉 학습관을 놀이터 삼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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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이스의 공방 활동 with  엄마? 동료?   ⓒ수원시평생학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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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가 선물로 만든 작은의자(좌)와 썰매 만든 날의 모습  ⓒ수원시평생학습관

 

 

 

 

 

*이번 호는 공방지기 현민주 연구원 쓰고, 정성원 관장이 다듬었습니다.

 

 


정관장의 종횡무진 평생학습계의 아방가디스트, 수원시평생학습관의 선장인 정성원이 학습의 관점에서 보는 한국 사회 이야기. 평생'학습'에서 평생'삶'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의심하고 질문하고 격려한다.


 

현민주
수원시평생학습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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