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규쌤의 미술수업] 신체의 자유를 향하여

'몸으로 표현하기' 활동으로부터

칼럼 l Writer_김인규 upload_관리자 posted_Mar 12, 2018

몸으로 표현하는 활동은 나의 수업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신체를 사용하여 자기표현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이 수업이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학생들에게 훨씬 많은 체험과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다.

이전의 경우 사전에 참고이미지, 조형원리 등에 대한 수업을 하고 주제를 명확히 해서 계획서를 작성하여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먼저 카메라를 주고 자유롭게 사진을 찍은 후 사후 평가를 하는 방식으로 2~3차례 진행하고, 각자 주제를 선정하여 계획서를 작성한 다음 최종활동을 했다.

그러니까 총 6~8시간이 걸렸다.

이런 변화는 2가지 배경을 가진다.

집중이수제로 인한 시수가 증가했다는 것이 한 가지이고, 자발성을 토대로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담아내려 한 것이다.

제작된 이미지의 힘이나 효과는 예전의 경우보다는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대신 풍요롭고 다양한, 창의적인 시도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예측하지 않았던 표현들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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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다양한 시도가 담긴 표현하기 수업  ⓒ김인규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 사진은 매우 흥미로웠다.

'머리'라는 신체를 이용한 표현력이 돋보였다.

나는 각각의 개성에 따른 머리카락의 느낌에 매료되었고, 그래서 다시 요청하여 다음 사진을 촬영하였다. 두발규정에 따르면 이렇게 다양한 머리모양이나 염색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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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각각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머리모양  ⓒ김인규

 

촬영하여 한참 보다가, 학생들의 욕망을 담아 보자는 취지로 두발자유 포스터를 만들어 보았다.

단속에 걸리지 않고 자신의 머리모양을 지키기 위한 학생들의 처절하리만치 절박한 몸부림을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학생들에게 이 포스터를 보여주고 두발자유를 위한 퍼포먼스나 포스터 제작을 위한 본격적인 표현활동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를 토대로 좀 더 제대로 된 두발자유 포스터를 실제로 제작하고 가능하면 전시회까지 하기로 이야기한 후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토대로 다음 수업을 진행했다.

일단 학생들은 대찬성이었다.

그 결과가 어찌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수업을 위한 두발자유 포스터 촬영이 진행되었고, 편집은 입시를 끝낸 3학년 학생이 도왔다.

편집 후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과 함께 보았는데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으니 꼭 집어 '두발자유'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주제를 '두발자유'에서 ‘신체의 자유’로 바꾸었다.

 

신체의 자유!

이후 수업은 ‘신체의 자유’로 확대되었다.

다시 말하면 <몸으로 표현하기>에서 <신체의 자유>로 수업이 진화한 셈이다.

글은 어떻게 넣을까 토의를 하다가 한 학생의 제안에 의해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가 있다'

라는 문장을 넣기로 했고, 아래와 같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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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하고 보니 차라리 자유로운 몸 동작으로 표현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발은 고정시키지만 상체를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하여 다시 촬영하였다. 각자 독특하게 몸을 자유롭게 움직여보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얼굴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였고 얼굴이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촬영을 하려했다.

나는 좀 더 자유롭게 포즈를 하도록 독려하면서 촬영을 하였다.

다음의 포스터는 그렇게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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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 자유에서 신체의 자유로   ⓒ김인규

 

포스터를 학교에 게시하였다.

샘들 다들 보았을 텐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애써 외면하는 기색이었다.

신체의 자유는 뜨거운 감자였다.

작업이 끝나고 돌이켜 보니, 교복을 벗고 자유복으로 촬영을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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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자유를 향한 갈망이 담긴 사진과 이를 보는 선생님들  ⓒ김인규

 

 

수업이 사회적으로 실현되는 것 만큼 놀라운 일은 없다.

수업이 끝날 무렵 한 교육출판사에서 학교를 방문하였는데, 포스터를 보고서 자기들이 곧 발행할 책의 표지로 쓰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학생들이 흔쾌히 승락을 하였다.

 

몇 달 후 포스터는 책 표지가 되어 학교에 배달되었다. 지금도 서점에서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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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권적인 가장 교육적인'의 표지  ⓒ김인규

 

등장 인물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복을 입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겐 숨은 이야기가 있다.

그 친구는 사실 임신으로 학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날 미술실에 놀러왔고,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임신으로 약간 배가 부른 상태였는데, 당당히 서서 촬영에 임했다.

나는 이제 이런 친구들도 당당히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바란다.

진정한 신체의 자유를 위하여.

 

 

*이 수업은 2011년 천안오성고등학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입니다.

 


인규쌤의 미술 수업 미술교사였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김인규는 학교와 교실을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미술작가이다. 30여 년을 매달려 온 그의 작품 '교실'은 아이들과 교사가 이루는 뻔한 세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가 목격하고 만들어 온 교실과 교육 이야기는 학습기획의 본질과 핵심으로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김인규
前 서천고등학교 미술교사. 30년 가까이 미술교사를 하고 살았다. 미술교육을 하면서도 예술가와 교사의 정체성 사이에서 그리고 학교가 어떤 곳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교사와 학생은 누구이고 어떤 관계인지 고민해 왔다. 저서로는 『안면도가 우리 학교야』(디딤돌,2005), 역서로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지형그리기』(문화과학사,2010), 『장소 특정적 미술』(현실문화,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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