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문화예술교육에서 배운다 ①

문화예술교육의 등장

이슈 l Writer_백현주 upload_관리자 posted_Mar 12, 2018

 


닮은 듯 다른 평생교육과 문화예술교육. 1983년 제정된 사회교육법의 이름을 평생교육법으로 바꾼 지 20년이 되어 오고, 그 이름에서처럼 전 생애를 다루는 평생교육과 특정 영역인 문화예술교육은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규모와 상황이 전도된 듯 느껴진다. 배움은 본받음에서 시작하고 서로를 거울삼아 성장한다면, 평생교육의 성장을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침 양적 팽창의 일로를 달리다 새 정부에 들어 질적 변신을 꾀하고 있는 시점이다. 웹진 <와>는 이번 호를 시작으로 4차례에 걸쳐 문화예술교육의 등장과 제도, 사업과 문제점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원고는 2016년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콜로키움 <지금, 여기>에 발표한 것을 수정하여 다시 싣는 것임을 밝힙니다.

 

 

이른바 6진분류로 일컬어지는 한국 평생교육프로그램 분류체계에 의하면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예술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촉진하고 문화예술행위와 기능을 숙련시키는 일련의 과정과,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접목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평생교육”으로 정의된다. 구체적으로는 레저생활스포츠, 생활문화예술, 문화예술향상프로그램 등이 포함되며, 문화소외 없는 풍요로운 삶을 지원하는 것과 각자의 취향에 맞는 취미와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경로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2005년 제정된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규정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은 이와는 사뭇 의미가 다르다. 여기서 문화예술교육이란 문화예술, 문화산업, 문화재를 교육내용으로 하거나 교육과정에 활용하는 교육을 말하며, 크게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사회문화예술교육으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이 법에 의해 운용되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디서나 어느 주체에 의해서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아르떼)을 통해 배분되는 예산을 사용한 사업에 주어지는 용어이기도 하다. (광역 단위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있지만 중앙의 아르떼 사업을 지역에서 집행하는 대리인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문화예술교육의 정의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제2조(정의)

1. "문화예술교육"이라 함은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제1항제1호의 규정에 따른 문화예술 및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제2조제1호의 규정에 따른 문화산업, 「문화재보호법」 제2조제1항의 규정에 따른 문화재를 교육내용으로 하거나 교육과정에 활용하는 교육을 말하며, 다음 각 목과 같이 세분한다.

가. 학교문화예술교육 : 「영유아보육법」 제2조의 규정에 따른 어린이집, 「유아교육법」 제2조의 규정에 따른 유치원과 「초ㆍ중등교육법」 제2조의 규정에 따른 학교에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행하여지는 문화예술교육

나. 사회문화예술교육 : 제2조제3호 및 제4호에서 규정하는 문화예술교육시설 및 문화예술교육단체와 제24조의 각종 시설 및 단체 등에서 행하는 학교문화예술교육 외의 모든 형태의 문화예술교육

 

 

 

 

운동에서 제도로

 

그때는 꽤 뜨거웠고 뭔가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직 충분했었다. 문화연대 문화교육위원회가 발족되고 1,295명의 시민의 이름으로 <문화교육선언>이 발표됐다. 입시 중심, 지식 편중의 학교 교육과정을 비판적 사고력과 인성, 신체적 능력과 감성을 고르게 발달시킬 수 있는 문화적 교육과정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문화예술 분야의 교사, 교수, 연구자, 작가(창작자), 평론가, 활동가, 출판인, 문화 관련 시민단체 등이 이 선언에 동참했다. 2002년 12월, IMF를 통과했고 새천년의 불안과 들뜸을 지난 후, 닷컴 열풍의 거품도 빠지고 있던 무렵이었다. 신자유주의와 과잉 경쟁이 몰고 올 위험사회에 대한 경고가 문화교육을 발의하는 배경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위기감보다는 전환의 시대 교육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이 선언을 전후로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이 일어났고 환경이 조성되었다. 문화연대와 전교조 산하 각 교과연구회가 주축이 되었다. 문화연대 문화교육위원회에서는 언어・시각・소리・영상문화분과가 조직되어 국어, 음악, 미술 교과과정의 재편을 위한 연구와 대안교과서 집필을 위한 학습이 시작되었다. <문화교육선언>의 문제의식을 공감해 문화관광부 내에 문화예술교육 TF가 설치되고, 2004년 참여정부의 <새 예술정책>에서는 예술교육이 핵심과제로 선정되었다. 2005년엔 아르떼의 설립과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의 제정이 이어졌다. 깜박하는 사이에 문화교육이 문화예술교육으로 제도화되었다.

그 문화예술교육이 제도화 13년째에 접어들었고, 한 해 1천억 대의 예산 규모로 그 몸집을 키웠다. 아르떼가 발행한 보고서에 의하면 문화예술교육의 연간 수혜자 수가 2014년 2백 6십만을 넘었고, 2005년부터 누적 인원으로 치면 2천만 명에 육박한다. 예술강사 6천여 명에 문화예술교육사 5천5백 명, 참여 학교 7만5천, 참여 시설 8천여 곳. 불과 10여년 만에 이룩한 이 아찔한 숫자에는 박수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따라다녔다. 개혁의 의지에 충만했던 운동은 제도화를 통해 공학적인 관점에 압도되면서 본래의 취지에서 한참 멀어졌다는 의견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다.

 

 

교육개혁의 패러다임, <문화교육선언>

 

“… 현재의 지식편향교육과 입시중심교육이 그와 같은 위험사회화를 가속화시키는 불길이라면, 이 파괴적 불길을 진화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문화교육'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적극적 체택이다. 여기서 '문화'란 문자 그대로 신체적, 감성적, 윤리적, 지적 복합체로서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어 전승되는 삶의 방식이자 인간학적 잠재력의 총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교육이란 단순히 예체능교육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교육, 인성교육, 예술・체육교육을 재조직하여 인간능력의 역동적 복합성을 꾀하고 파괴되고 있는 사회문화적 자원을 복구하려는 새로운 교육이념이다.…

… 되돌아보면 19~20세기의 근대화 과정은 오성(순수이성)이라는 한쪽 날개가 중심 몸체가 되어 버리고, 이성(실천이성)이라는 다른 한 날개와 반성적 판단력이라는 몸통 자체는 과도하게 주변화되거나 찌그러짐으로써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인간 잠재력의 상당 부분을 기능 정지시키거나 억압하고 왜곡시켜온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화교육”이란 이렇게 기형화된 문화적 능력들을 반성적 판단력과 창의력을 매개로 재배치하여 오성-이성, 감성-욕망, 지성-신체적 역능 사이의 균형 발전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_<문화교육선언> 중에서

 

 

noname01.jpg

숫자로 보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10년  (출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10년>, 2015)

 

 

문화예술교육이 빚지고 있는 ‘문화교육’은 우선 어떤 교과든 지식의 습득보다는 해당 지식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학습자의 반성적 판단력과 창의력, 소통능력과 감수성을 함양하는 쪽으로 그 내용과 수업방법을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예술교육에 한정해 보면, 정형화된 예술 지식과 기능 획득이 아니라, 생활세계에 뿌리내린 취미의 형성, 대중문화의 능동적 수용과 비판적 이해, 자연과 생명의 전면적 체험 등이 새로운 교육목표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야만 민주적‧생태적 인간의 양성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지식의 체계적인 습득은 분명히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의 상황을 무시하고 인간의 다양한 잠재력을 간과한 지식교육의 독주는 기존의 지적 권위와 가치 속에 사람들을 길들이고 가둬 놓고 만다. 암기 위주, 지식 편향 교육은 자유롭고 다양한 자기표현과 생각을 억제시켰고, 경계가 철저한 교과학습은 분과학문체계의 산물로, 전문화를 공고히 하여, 살아가는 동안 전문가에게 결정을 위임하고 그의 말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이를테면 똑같이 그리기와 명화 감상으로 교육받은 우리들은 전시장에 가(물론 잘 가지도 않을 테지만) 생전 처음 보는 미술품 앞에서 감동하거나 비평하는 대신 얼어붙어버리거나 전문가의 의견에 동의를 표명하는 데에 그친다. 그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전시장에 가는 것을 아예 꺼리고 그것은 미술의, 예술의 위축을 가져온다. 그런가하면 새로 나온 휴대전화에 나의 필요와 취향을 맞춰보는 대신 그것을 갖지 않으면 다음 모임에서 소외될 자신의 비극적 이미지를 그리며 울며 겨자 먹기로 그것을 구입하고 후회를 반복한다. 상품은 새로운 필요와 가치를 담는 대신 형태 바꾸기로 돌려막기를 일삼지만, 우리는 그것을 비평할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런 문제의식이 문화교육의 근간을 이루었다.

 

 

문화예술교육과 문화예술교육이 아닌 것

 

종종 오해되는 것처럼 문화교육이, 문화예술교육이 지식교육의 편향을 문제 삼는 것은 지식을 배제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지식에 갇혀 교육의 주체로, 삶의 주체로 나오지 못하는 교육을 극복하자는 것이고, 어떤 삶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는 교육과 삶 자체로서의 교육의 균형을 잡자는 것이며, 그와 그녀가 처해있는 삶의 상황으로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주체의 회복을 촉구하는 해방의 교육이 문화교육이다.

그런 차원에서 장르별 인기 있는 체험활동의 모음이나 계몽적 캠페인 레퍼토리를 반복재생산하는 환경교육이나 이미 계획해둔 순서와 목표에 아이들이 따라오게 하는 놀이교육은 엄밀한 의미에서 문화예술교육일 순 없다. 놀이는 사건의 계획과 시작, 선택과 진행의 모든 결정을 참여자, 즉 아이 스스로 할 때 비로소 문화예술교육이 된다. 놀이라는 명분 안에 성인이 생각하는 목표로 넣어두고 이끌려고 하면 그것은 이미 놀이가 아니다. 안전을 핑계로 통제된 진공상태, 프로그램 밖으로 나갈 여지가 없고 갈등과 실패, 좌절과 긴장 같은 진짜 삶의 주제가 생략된 키즈카페나 테마파크는 문화예술교육의 실마리가 될 수 없다. 하지 말라는 것을 넘어서는 호기심과 용기, 저항과 갈등하고 상처가 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신체와 마음의 근육을 함께 기를 수 있어야 놀이이고, 그런 놀이라야 문화예술교육이다.

마찬가지로, 다수의 ‘만들기’ ‘그리기’ 수업에서는 무궁한 사물의 세계로 안내하는 질료에 대한 집요한 질문과 탐구의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지식을 재구성하는 창조성의 순간, 자신만의 지성을 발현할 기회를 아예 제거해버린다. 문구점에서 구입한 패키지로 조립하기가 되어버린 공예수업은 재료에서부터 세계를 협소하게 규정짓고 아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결국 서로서로 엇비슷한 생김이 되고 만다. 남들과는 물론 자신의 생각이 서로 다툴 일도 없다. 사유는 점점 나른해지고 따라서 창의력 같은 것이 따라올 리 만무하다. 이것은 애초의 목적에 의하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하기 힘들다.

 

18928200dd.jpg

 

 

 

 

다시 여전히 교육운동으로서 문화예술교육

 

문화교육은 한편으로 ‘교육의 시장화’를 앞두고 위기의 학교교육을 극복하려는 급진적인 기획이었다. 정규교육 외곽에서 부분적인 대안교육을 실천하자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의 목표와 교육과정, 평가 등 교육 전반의 틀을 정면으로 개혁하는 요구였다. 그래서 문화교육은 초중등학교의 교사들과 함께 시작했고 교육과정 연구와 새로운 교과서 제작을 추진했다.

하지만 현행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은 학교에서는 정규과정이 아닌 방과 후 활동에 집중 편성되고 교사와 예술 강사 간 교류와 시너지는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학교 밖에서는 무한 제공되는 가벼운 체험활동의 하나쯤으로 인식되어 애초에 기대했던 영향력은 발휘되고 있지 못하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도 외면당하고, 교권의 몰락을 야기하는 학교교육의 현장을 ‘문화교육’을 통해 바꾸겠다는 꿈에서도 한참 멀어졌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드러내면 현장에서는 대체로 이런 질문이 되돌아온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아주 만족해하세요. 즐거웠고 만족해한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요?” 문화예술교육이 문화복지의 차원에서 실시되면서 교육의 내용보다는 복지서비스가 ‘제공되었다’는 것에 힘이 실려왔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만족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교육이 학원이나 문화센터에서 구매할 수 있는 어떤 것이거나, 흔한 축제장의 체험부스일 수는 없다. 학부모의 기대와 경험의 폭에 맞추어 제공되는 교육서비스는 더욱 아니다. 오히려 참여자나 학부모가 의문시 하는 것들도 설득하여 그들이 용감하게 어떤 선을 넘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는 교육운동에 가깝다.

문화예술교육이란 말은 교육의 목표이자 방법론을 드러내는 언어이다. 문화예술교육의 목표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수성을 더 민감하게 변화시켜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감수성이란 다섯 가지 감각의 채널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이고 그것을 통해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그러한 능력은 평소에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던 것을 보고 느끼면서 익숙했던 것에 의문이나 호기심을 싹틔우게 되고, 거기에는 자연스레 성찰이 뒤따르며 발현된다. 그런데 호기심과 질문에는 계기가 필요하고 성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은 낯선 상황, 뜻밖의 경험, 다른 맥락, 어떤 만남 등등 계기를 제공하고, 자신과 올곧이 대화하며 사유하고 돌아볼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직 그런 교육이 일상화되지 않은 한, 문화예술교육은 여전히 교육운동으로서의 몫이 남아있다. 

 

 

 

 

백현주
수원시평생학습관 기획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