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문화예술교육에서 배운다 ④

좋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단상

이슈 l Writer_김정이 upload_관리자 posted_Apr 24, 2018

닮은 듯 다른 평생교육과 문화예술교육. 1983년 제정된 사회교육법의 이름을 평생교육법으로 바꾼 지 20년이 되어 오고, 그 이름에서처럼 전 생애를 다루는 평생교육과 특정 영역인 문화예술교육은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규모와 상황이 전도된 듯 느껴진다. 배움은 본받음에서 시작하고 서로를 거울삼아 성장한다면, 평생교육의 성장을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침 양적 팽창의 일로를 달리다 새 정부에 들어 질적 변신을 꾀하고 있는 시점이다. 웹진 <와>는 4차례에 걸쳐 문화예술교육의 등장과 제도, 사업과 문제점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좋은문화예술교육의 반대말은 나쁜문화예술교육이 아니라 좀 더 좋아져야 할문화예술교육이다. ‘좋은은 형용사로 명사를 수식하고 좀 더 좋아져야 할은 부사로 동사를 수식한다. 현재의 좋은문화예술교육은 좀 더 좋아지고 싶어 한의지의 결과이며 따라서 좋은문화예술교육이란 영속하는 명예가 아니라 끊임없는 성찰의 반복이자 과정이다.  

만일 누군가 좋은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싶다면 바로 지금 나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하던 대로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좋아지고 싶은 의지가 있어야 좀 더 좋아진 문화예술교육이 만들어진다.

 

여기 두 가지 유형의 좋은문화예술교육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사례들은 전국에서 시행되는 좀 더 좋아져야 할문화예술교육과 대비하여 지금의 시점에서 분명히 좋은문화예술교육의 지점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3 총체적 난 극_무늬만 커뮤니티

 

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문화예술교육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의도를 갖는다. 하나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장애인의 능력을 일반인처럼 신장시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애인에게 맞춘 문화예술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후자는 전자에 비해 좀 더 좋은문화예술교육이긴 하나 두 접근 모두 문화예술을 수단과 도구로 활용하여 가르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예술가로 구성된 <무늬만 커뮤니티>는 장애인들이 평소 생활하는 공간인 복지센터에 들어가 관계의 밀도를 높여내고 그 과정에서 장애인과 예술가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눈다. 대화의 과정에 대해 예술가들은 장애라는 특수한 지점에서 벗어나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주었다.1)고 증언한다.

장애에 대한 일반적 상식과 편견에서 예술가 스스로의 태도와 관점이 변화되고 그 순간 가르치는 일방향의 교육은 쌍방향으로 전환된다.

 

그 과정의 결과는 [총체적 난 극]이란 무대작업으로 극화된다. 장애인들에게 춤이나 연기, 연주를 교육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무대에서 선보일 수 있을까. 이 한계의 지점을 깨는 순간 좋은문화예술교육은 탄생하고 전위성을 획득한다.

<무늬만 커뮤니티>는 장애인들의 있는 그대로를 예술이라 선언하고 무대에 올린다. 자폐를 가졌을 뿐 그림을 잘 그리는, 발달장애를 가졌을 뿐 탁구치기를 좋아하는, 춤추기, 라면끓이기....등등.

 

그러나 장애인들의 재능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그들만의 잔치가 되는 건 아닐지, 억지로 엉망진창인 무대를 장애인이란 이유로 참고 2시간 가까이 참고 봐야하는게 정당한지에 대한 의문은 당연하다. 관객을 초청하고 무대에 올린 극이라면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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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커뮤니티의 '총체적 난 극' 공연 장면  출처 : 무늬만 커뮤니티

 

극이 시작되고 무대에서 누군가 그림을 그린다. 영상은 그가 그림 그리는 과정을 비춘다. 조용하고 느리다. 모두 호기심을 갖고 침묵하며 지켜본다. 놀랍게도 묘한 긴장이 흐른다. 그림은 탁구대. 무척 잘 그렸다. 다음 순간 무대에 그가 그린 그림대로 탁구대가 등장한다. 무늬만 커뮤니티의 김월식 작가가 탁구를 보내고 반대편에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줄지어 서있다. 첫 번째 장애우는 탁구공을 받아내지 못한다. 한두번 시도하다 선수가 바뀐다. 두 번째 친구도 역시 받아내지 못한다. 객석에 안타까움이 흐른다. 세 번째 친구 두어번 탁구공을 받아내지 못하다 세 번째 받아친다. 객석에서 와 하는 환호가 터진다. 여러번 맞받아낸다. 객석은 환희로 가득찬다.

 

전체의 과정을 묘사하긴 어렵지만 2시간 동안 객석은 환희와 감동, 애잔한 슬픔에 빠진다. 무대 위, 극에서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그 어떤 연극보다 강렬했다. 그리고 질문.... 장애와 일반의 구분이란 무언가. 일반인과 다른 그들의 속도에 맞추고 시간을 갖고 집중한다면 차이는 사라진다.

 <무늬만 커뮤니티>는 지능의 평등이라는 원리에 따라 작업을 했고, 그들은 장애인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입증해 보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좋은문화예술교육은 이처럼 우리가 느끼는 바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그만큼 기술을 탐구함으로써, 만드는 작품을 통해 편견이란 저항을 가로지르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겪게 만드는 일이다. 예술가는 평등을 필요로 했고 그들은 이런저런 원래의 고유한 기술(연극)을 통해 장애를 가졌거나 그렇지 않거나 서로 이성적 존재라는 공통점을, 다만 저마다 특수하게 적용한 삶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2017 하레...스타.보물클럽 시즌_창작스튜디오 페이스

 

놀이는 문화예술교육의 지향이다.

문제는 놀이를 가르친다는 점이다. 문화예술교육의 시간표에 맞춰 이 놀이에서 저 놀이로 전환되고 교사들은 사회를 보거나 심판이 된다. 끊임없이 놀이에 담긴 지식과 유래, 의미가 강조되고 놀이는 한번 해보는 체험에 그친다.

놀이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놀이에 필요한 것은 오직 규칙과 놀이꾼이다. 규칙은 놀이꾼들의 갈등과 협상 그리고 합의의 과정을 통해 늘 변화한다. 완벽하게 학습자 주도형 교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놀이를 해방시키지 못하는 까닭은 가르쳐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이 교육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제주로 이주한 단체인 <창작스튜디오 페이스>는 이러한 강박에서 벗어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례리란 마을에 있는 계곡을 쏘다니며 그들은 탐정도 되고 모험가도 되고, 물놀이 꾼이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학원과 집을 오고가며 개별화된 아이들은 싸우고 놀이의 규칙에 대해 협상해 가며 또래 문화를 만든다. 의외로 제주 사람들은 수영을 못하거나 물놀이에 기겁하는 경우가 많다. 조부모와 부모세대의 놀이터가 이젠 대부분 게임기로 전환된 시대를 살고 있다. 제주도나 강원도나 전라도나 경상도, 충청도 모두 마찬가지다.

<하레...스타.보물클럽>은 하례리의 모든 공간을 매직서클2)로 만든다. 그것은 아이들의 조부모와 부모가 함께 경험한 것이다. 시공간은 이런 놀이의 맥락에서 통합되고 세대는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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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놀이가 아닌 참여하고 즐기는 놀이  ⓒ김정이

 

모니터링을 하러 간 날 마침 며칠 전 내린 비로 말라있던 하천에 물이 그득하다. 선생님들은 바쁘게 뗏목 재료를 계곡으로 옮기고 선생님을 도울 정도로 큰 아이들도 함께 나른다. 집에서 키우던 개들도 아이들을 따라 신나서 계곡으로 향하고 그저 아이들은 물에서 바위에서 저마다 하고 싶은 놀이에 빠진다. 하나 둘 누군가 놀이를 제안하고 그에 맞춰 놀이의 리듬이 생성된다. 간혹 지켜보는 입장에서 위험해 보일 경우 아이들 스스로 해결을 모색한다. 컨디션이 안좋거나 너무 어려 돌봄이 필요한 경우 간혹 선생님들이 돌본다. 사실 놀이의 과정에 선생님과 아이들은 없다. 그저 함께 노는 놀이꾼들이 있을 뿐이다.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그로 인해 생성된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 ‘좋은문화예술교육은 말로 지시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공간을 통해, 몰입을 통해, 관계를 통해 저마다의 의미망을 획득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의미망은 평등하게 애초 의도대로 구성된다.

 

좋은 문화예술교육은 우리 주변에 놓여져 존재하는 것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우리 마음 안에 있던 무엇과 만나게 하는 행위와 실천이다. 많은 교육이 넘쳐나지만 제공되는 교육의 대부분이 타인의 우월한 지식을 외우고 외워 내 머리 속으로 우겨넣는 반복적인 노동에 가깝다. 이러한 문화예술교육 방법론은 좀 더 좋아져야 할그래서 좋은문화예술교육이 되어야 할 동사이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질문하는 것, 그래서 주의를 기울이고 좋은문화예술교육을 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 그것이야말로 현재의 상태를 넘어 새롭게 되는 유일한 길이다. ‘좋은문화예술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태'를 넘어야 하는 것이다. 

 

 

 

 

1)출처 : http://likecommunity.tistory.com/entry/11%EC%9B%94-20%EC%9D%BC?category=373160

2)매직서클은 일상의 공간에서 놀이의 공간으로 전환을 의미한다. 바닥에 원을 그린 후 원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술래가 되어 원 안의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규칙이 발동되는 순간 일상의 사람들은 사라지고 술래와 술래 아닌 놀이 속 역할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전환과 동시에 역할에 대한 몰입이 시작된다

 

김정이
2017 제주문화기획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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