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학교]

계획하지 않은 여행_잡다한 생각들

칼럼 l Writer_진계영 upload_관리자 posted_Aug 14, 2018

치앙라이에 다녀왔다. 이미 두어 번 갔던 곳이라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그룹 여행의 힘든 점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더욱이 가고 싶지 않았다. 버스나 기차 여행이라면 그래도 참을만하지만 좁은 밴 안에서, 일종의 태국 트로트 음악을 10시간이 넘도록 들어야한다면 그건 나에게 재앙이다. 물론 한국 트로트 음악이라고 해도 같은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다음 학기에 은퇴하는 깐야 선생님을 위해 외국어부 선생님들이 조촐한 은퇴 기념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 기획한 여행인지라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깐야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지만 나와는 다른 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다.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작년,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서였다. 베트남에서 5년 넘게 살았던 경험이 있는지라 난 동남아시아의 겨울은 겨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긴 소매 옷같은 보온을 위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이곳 롬싹에 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롬싹의 겨울은 쌀쌀했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쌀쌀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은 태국 사람들이 50년만의 추위라는 말을 할 정도로 정말 추웠던 해였다. 아무리 옷을 겹겹이 껴입어도 추위를 견디기가 힘들었고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다니는 내가 딱해 보였는지 어느 날 깐야 선생님이 추위를 막을 수 있는 학교 저지와 분홍색 스웨터를 가지고 왔다.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선생님의 갑작스런 방문은 좀 당황스러웠다. 받아야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으며 괜찮다고 받으라고 말하는데 난 거의 울 뻔했다. 어쨌든 그래서 난 치앙라이 여행에 동참했다. 친절한 선생님의 은퇴 기념식에 참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noname01.jpg

작년 깐야 선생님이 준 학교 저지이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한국에 돌아갈 때 롬싹을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멋진 기념품이 될 것이다.

 

 

마이너리티를 위한 태국의 공교육_난민

 

자정에 출발해서 밤새 달려 아침에 들른 첫 번째 코스는 치앙라이 아트 브릿지Chiangrai Art Bridge였다. 아트 브릿지는 예술가 커뮤니티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다목적 전시 공간으로 지역 예술가들의 작업과 치앙라이에 거주하는 외국인 예술가들의 작업을 볼 수 있다. 마침 건물 전면에는 얼마 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동굴에서 구조된 학생들과 그들을 구조하는데 최선을 다한 구조대원들을 기념하는 대형 벽화가 제작, 설치되어 있었다. 아트 브릿지 외에도 치앙라이에는 몇 개의 잘 알려진 예술 공간이 있다. ‘백색사원’과 ‘블랙 하우스’로 잘 알려진 왓 롱쿤Wat Rong Khun과 반담Bandaam으로 치앙라이 출신인 태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유명한 예술가가 만든 복합 공간이다. 백색사원과 블랙 하우스는 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치앙라이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유명한 예술가들이지만 자신들의 고향에서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백색사원을 만든 예술가인 찰름차이 코시피팟Chalemchai Kositpipat은 구조된 소년들을 위한 동굴 박물관의 건축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미 설계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noname02.jpg

아트 브릿지 입구에는 치앙라이 멧돼지 축구팀 소년들과 그들을 구조한 영웅들을 위한 거대한 벽화가 설치되어 있었다.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년들이 갇혔던 탐 루앙 동굴에 기념박물관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아트 브릿지에 임시로 설치된 벽화는 박물관이 완성되면 그곳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벽화는 300여 명이 넘는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

 

치앙라이는 태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짱왓으로 라오스와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곳에는 난민들이 많다. 굳이 구분하자면 ‘난민’이지만 사실 태국의 국경 지역에서 미얀마인이나 라오스인은 그냥 이웃일 뿐이다. ‘난민’이라는 공식적인 이름표가 없이도 이미 그곳에는 오랜 세월 서로 오가며 지내온 미얀마인과 라오스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라오스는 태국과 같은 문자를 사용한다. 언어가 조금 다르지만 태국의 북부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대부분 라오스어를 듣고 이해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태국은 다민족, 다문화 국가에 가깝다. 전체 인구의 80%이상이 태국인이지만 중국계 화교와 남부 말레이인, 그리고 북부 고산 지역의 소수 민족들이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지리적으로 볼 때 태국은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육로로 여러 나라를 출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왕래하고 교류를 해왔고 물론 분쟁도 많지만 서로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다. 태국인들에게 '미얀마 난민이나 남부 무슬림들의 존재'는 한국인들이 느끼는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밀하다. 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서는 난민 신분의 학생들이어도 태국 학생들과 같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는다. 초등교육뿐만 아니라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의 기회도 가질 수 있다.

 

noname03.jpg

미얀마의 타치렉Tachilec과 태국의 치앙라이 짱왓, 매사이Mae Sai의 국경이다. 저 문을 통과하기만하면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쉽고 간단한지. 육로를 통해 다른 나라로 이동이 불가능한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생경한 풍경이다.

 

 

마이너리티를 위한 태국의 공교육_소수민족

 

다음 목적지는 치앙라이 짱왓 매사이Mae Sai의 프라싯사르트 학교Prasitsart School였다. 태국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다보면 다른 도시의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종종 있다. 북부 지역의 학교에서는매주 금요일에 전통복장 교복을 입고 등교한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마침 금요일이어서 학생들의 전통복장 교복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매우 편안해보였다. 매사이의 프라싯사르트 학교는 동굴에서 구조된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 중 3명이 다니는 학교이다. 혹시 그들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지만 잘 알려진 대로 구조 이후 단 한 번의 공식적인 인터뷰 이외에 어떤 개별적인 접근도 허용되지 않았다. 태국 교육부는 철저하게 학생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태국의 공교육 정책은 상당히 사려 깊게 설계되어 있다. 특별히 학생들의 안전에 대해 규정이 잘 정리되어 있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나의 경우에도 학생들을 데리고 대회나 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북부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 학교는 하루 전 날 출발해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정을 제공한다. 물론 호텔비와 식비를 모두 학교가 부담한다. 학교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가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은 학생 안전 규정 때문이다.

 

noname04.jpg

전통복장 교복을 입은 매사이Mae Sai 프라싯사르트 학교Prasitsart School의 학생들.

북부 지역 소수 민족들의 전통을 보존하고 학생들에게 알게 하려는 목적이다.

 

북부 지역의 학교에서 무슬림 복장의 학생들을 만난 건 의외였다. 다문화, 다민족 국가의 경우 단일 민족 국가에 비해 언어 정책이 국가 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태국의 경우 북부의 소수 민족들과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남부 말레이인들과의 화합을 위해 국가의 공식어인 태국어의 교육과 보급에 힘을 쓰는 동시에 사라져가는 소수 민족 언어를 보존하려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독립을 주장하는 남부 지역의 학생들에게 같은 태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해주기 위해 태국어 교사를 꾸준히 파견해온 것에 더해 올해부터는 남부 지역의 학생들이 다른 지역에서 원하는 학교를 선택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관심이 있는 언어, 혹은 특화된 과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다른 지역의 학교를 선택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물론 숙소도 제공이 된다. 치앙마이의 한국어 센터 학교에도 남부 지역인 송클라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온 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매사이의 프라싯사르트 학교는 언어 문화 교육이 특화된 학교였다. 영어는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 이외에도 미얀마어와 베트남어를 가르치고 있고 다음 학기에는 한국어 수업을 정식으로 개설할 예정이라고 했다. 언어마다 각각의 교실이 있고 교실을 그 나라의 문화를 표현하는 공간으로 꾸민 것도 인상적이었다. 방콕이나 중부 지역에서 프랑스어나 독일어 등의 제2외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많다면 다른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미얀마어, 베트남어 등 인접 국가의 언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많다.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는 모든 학교에서 제공하는 중요한 제2외국어이다. 태국에서 제2외국어로서의 한국어는 아직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noname05.jpg

동굴에서 구조된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 중 3명이 다니는 매사이 프라싯사르트 학교 외국어부 사무실 창문에서 발견한 소년들의 사진. 이 학교에서도 이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에게 영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니 지난 번 우리 학교에서의 반응이 독단적인 반응이었다기보다 어쩌면 교육부 전체에서 공시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예의

 

저녁땐 숙소에서 깐야 선생님을 위한 조촐한 행사가 있었다. 같이 저녁을 먹고 최선을 다해 즐겁게 즐기고(태국 사람들은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선생님에게 준비한 꽃을 한 송이씩 주며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줄곧 미소를 띤 얼굴로 행사를 즐겼지만 마지막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모두 오랜 시간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했고 선생님도 그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아마 누가 나에게 롬싹에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남아 있는 것이라고. 여기의 공교육 시스템은 지식의 전달과 습득이란 관점에서 보면 한숨이 나올 지도 모른다. 수업 일수 자체가 적고, 있는 수업도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다른 활동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의 머릿속엔 도대체 경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학생들은 모두 동등하다. 사회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동등한 기회를 갖는다. 태국인이건 아니건 종교가 같건 다르건 레이디 보이건 톰보이건, 학교도 학생들도 서로를 구분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남아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안에선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을 배려한다. 심지어 개와 고양이, 새와 도마뱀, 거미와 개미에 이르기까지.

물론 모든 면에서 배려가 넘치는 사회는 아니다. 같이 여행하는 동안 수도 없이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따스함이 남은 여행이었다. 다양함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태도의 기본은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여행자의 학교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낯선 나라 태국의 교육 시스템. 우리나라와는 다른 해외의 교육 현장과 문화를 바라보며 평생학습계와 학습관이 배워야할 것과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진계영


 

진계영
생물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오래 전에 '가나아트'와 '월간 디자인'의 기자로 일했다. 한 때 디자인 중심 갤러리 '얼스프로젝트'의 대표를 지냈고 베트남의 사이공에서 'B & B 프로젝트'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레지던시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나이 들어 얼떨결에 시작한 한국어교육 공부로 ‘한국어교원’ 이라는 생애 최초의 자격증을 갖게 됐고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가르치며 또한 배우는 새롭고 재미난 경험을 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