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학습모임 2.

조직화를 가능하게 하는 열린 결말

이슈 l Writer_백현주 upload_관리자 posted_Aug 27, 2018

학습모임 두 번째 글에서는 수원시평생학습관 시민인문학교 공부모임, 공방 활동모임을 중심으로 각각의 학습모임을 조직해가는 힘과 방식, 그리고 장치들을 살펴본다. 학습조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포착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이 많고, 분석도 남아 있으며, 여전히 답은 뿌연 채로 남아 있지만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학습모임의 ‘전문가 없음’

 

시민인문학교의 공부모임과 거북이공방의 활동모임 등 학습모임을 강좌와 구분 짓는 핵심은 바로 ‘전문가 없음’이다. 학습관을 이용하는 대다수는 전문가, 즉 강사가 있는 강좌를 수강하고 있는데, 수강 선택의 기준은 주로 강좌의 내용이지만 가끔은 강사의 명성과 평판이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인문학교의 경우 특히 그렇다. 인문학 공부는 우선적으로 글과 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학습 초기에 혼자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는 여간해서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강의’이다.

인문학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철학책을 앞에 두고 눈으로는 분명 읽고 있는데 수 시간째 같은 페이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었으리라. 그럴 때 전문가의 강의는 시원한 빗줄기 같이 답답함과 모호함을 씻어 내린다. 책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개념이나 맥락 등을 강사가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학자들이 제안한 개념을 이해하고 지식을 획득하는 것은 인문학 공부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다른 철학자나 사상가의 사유방식과 관점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검토하면서 마침내 자기 관점을 획득하는 것, 그리하여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할 힘을 지니게 되는 것, 그것이 궁극의 목표이다. 이것은 강의를 듣는 손쉬운, 그리고 수동적인 과정만으로는 절대 이루어내기 힘든 것이다. 강의를 참조하되 내 힘으로 한 줄이라도 읽고, 그 한 줄에 따라오는 질문과 의심으로 고뇌하고 끙끙거린 시간, 그 질문을 들고 전문가에게 정답을 구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공부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토론하며 미궁에 빠지기도 하고, 무릎을 치기도 하는 지난한 시간, 희열의 시간 등을 거쳐 가까스로 도달할 수 있는 무엇이다. 강의에만 머무르는 것은 공부라기보다는 지적인 오락 행위에 가깝다. 강의에만 의존할 때 자기 해석이 담긴 인문학, 자기 삶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과 의미부여의 여지는 사라지고 만다. 이것을 넘어서 진짜 자기 학습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학습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 강사의 역할이 주목된다.

 

 

‘전문가 없음’에서 중요한 전문가와 강좌

 

학습관에서 강사를 섭외할 때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시민인문학교의 경우에는 특정 철학자의 텍스트 하나하나의 이론적 해석에 매달리기보다는, 어떤 철학이 요구되는 사회문화적 배경과 우리의 필요, 그리고 그것을 우리 주변의 일상 언어로 풀어내어 내 삶과 공부의 연관 관계를 쉽게 설명해주는 그런 강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른바 대학교수, 강단인문학자보다는 실천적 지성/지식인이라 불리는 연구자, 저술가들을 찾는다. 전자가 학계 내의 언어에 익숙하고 현실 삶과의 괴리 때문에 대중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들 실천적 지식인들은 대중과의 소통 의지가 강하고, 인문학이 삶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인문학적 성찰은 답의 형태로 대중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질문의 형태로 다가와 스스로의 삶 속에서 답을 찾아보도록 요청하는 지적 멘토링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강사들로부터는 인문학 공부가 책에만 있는 게 아니라, 생애 과정에서 끊임없이 출몰하는 물음에 대한 탐구과정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수업에서도 일방적인 강의만이 아니라 그룹토론이 진행되기도 하고, 글쓰기 과제를 내어 강의에서 배운 개념을 학습자 스스로 사유하고 생활에 적용시켜보도록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나 메시지는 강좌 이후 학습자 모임을 만드는 데 영향력을 미친다.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해 _학습자의 욕구를 따라가기

 

앞서도 말한 것처럼 스스로의 인문학 공부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지속해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공부가 업이 아니고서야 학습을 해나가는 여정에서 그만둘 만한 핑계 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우선 집안일, 회사일, 건강 문제, 아이들 문제, 부모님 문제 등등 외부의 방해가 작용한다. 공부의 걸림돌은 공부 내부에도 있다. 공부를 할수록 늘어나는 알쏭달쏭함, 공부한 것과 현실 사이의 괴리 등. 그 답답함을 강사와 강의에 종종 기댄다고는 해도 시시때때로, 시시콜콜 찾아오는 질문이나 고민을 거기서 다 풀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질문을 나누고, 그로부터 확장된 생각을 함께 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장소가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학습모임, 학습 커뮤니티라고 부르며, 이곳에서 우리의 공부는 날개를 달게 된다.

따라서  공부의 첫 단추만 잘 끼운다면(하지만 이것이 가장 잘 안 되고 있다.) 학습모임은 특별히 애써 조직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학습모임을 거쳐 내 공부가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공부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자연스러운 깨달음이며, 이를 알고도 학습모임에 참여하지 않을 자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학습모임에 발을 디디고 나면, 모임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거부할 수가 없게 된다.

 

그 유익은 이렇다. 첫째, 같은 주제로 생각하고 고민해보았던 사람들 간에 느끼는 친밀감이나 동질감. 다른 곳에서는 쓸 데 없다거나 고리타분하다고 외면하는 나의 관심사나 질문이 공부모임에서는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거기서부터 신뢰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혼자만의 위축되고 고립된 공간에서 빠져나오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둘째, 다른 사람과의 대화와 토론으로 나의 관점을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유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더 넓은 시야를 경험하게 되는 것도 공부모임의 장점이다. 그밖에도 프로그램과 강사에 대한 정보, 다른 기관의 강의, 학습 정보, 서적, 학습 방법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경험을 함께 나누는 즐거움과 안전함, 안정감, 성장한다는 느낌 등은 공부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동기가 되고, 이 과정에서 공부할 책, 나눌 이야기 등을 구성원들이 상의를 해서 같이 결정하는 능력은 계속 향상된다. 이 유익을 알려주는 것, 한번 참여해보도록 하는 것, 학습 욕구를 따라 중간 중간 문을 열어주기만 하면 어떤 면에서 학습조직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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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관의 인문학 독서모임들이 한자리에 모인 동네북Book소리  ⓒ시민인문학교

 

 

난 아직 해낼 수 없어, 당신이 해줘 _학습자의 욕구를 되돌리기

 

인문학교의 전문가 없는 공부모임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학습관의 공부모임은 5년 남짓 되었지만 이미 여러 인문학 공동체에서 세미나나 자율적인 학습 커뮤니티가 실험되고 실천되어왔으며, 그래서인지 이런 모임은 하나의 학습 형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물론 아직 학습기관을 이용하는 다수는 이런 장에 참여를 머뭇거리고 있지만 말이다.

반면 거북이공방의 활동모임은 아직까지는 많이 낯설다. 인식과 사유를 다루는 인문학교와는 달리 구체적인 기술, 그것도 조금만 집중력을 잃으면 위험해질 수 있는 그런 기술을 배우는 공방에서 ‘전문기술자가 가르치는’ 행위가 아닌 ‘스스로 만들고 해결하는’ 행위는 흔히 보기 어려운 것 같다. 인문학에서 강사 없이 공부한다는 것이 스스로 독해하고 말해야 하는 두려움이라면, 공방에서 전문가 없는 학습은 ‘혼자 만들어야’ 하는 두려움인데 이것은 살면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것, 요구받지 않았던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말하자면 이 두려움은 학습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일수도 있지만, 이러한 경험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강사가 없는 활동모임에 대한 두려움은 인문학 학습자들보다 훨씬 두드러진다. 강좌에서 배운 것을 직접해보려고 시도한다거나 그런 방법을 익히기보다는, 남에게 계속 의존해서 다음 단계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 그러나 공방의 목공 기술은 강좌만으로는 절대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문가 없음’을 견디지 않고서는 자신의 배움이 일어날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생겨난 <프로젝트 수업>은 학습자들의 강좌 이후 ‘뭔가 만들고 싶다는 욕구’와 ‘그러나 결코 스스로 하고 싶지도 않고, 스스로 해낼 수도 없을 거라는 자기 불신’ 사이의 긴장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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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러그드우드카빙의 '2017년 수공구메뉴얼 - 달력 제작 프로젝트'의 결과물  ⓒ거북이공방

 

<프로젝트 수업>은 기초기술 습득을 마친 학습자들에게 ‘우리 뭔가 만들어볼까’라는 제안에서 시작한다. 몇 개의 기술과 도구를 장착했으니 몸이 근질거릴 그때를 공략한다. 하지만 ‘무엇’을 만들지도 ‘어떻게’ 만들지도 당신들끼리 알아서 정하라니, 그때부터 멘붕이 오고 속은 기분이 들어 학습자들은 저항하거나 몇몇은 아예 수업을 거부하고 수강을 포기하기도 한다.

프로젝트는 전문가가 완전히 부재하는 활동모임으로의 가교가 되는 과정이다. 여기서 전문가는 부재한다기보다는 조금 물러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촉진자이자 조언자의 역할이다. 인문학으로 치면 튜터가 있는 세미나 같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배운 기술을 한번 사용해보는 것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나대신 결정해 줄 사람이 없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매끄럽고 예쁘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것은 질문의 두려움,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닮아 있다. 이것을 돌려놓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것, 의존하려고 할 때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담당자와 강사가 모두 같은 목소리로.

 

 

교육주체 간 새로운 관계 설정과 이를 위한 장치들

 

인문학 공부모임이 학습 과정에서 요구되는 자연스러운 단계라면, 공방의 활동모임이 보다 의도적인 것이었음은 1편에서 밝힌 바와 같다. 공방의 지도교수가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되면서 대체자를 찾는 대신 강사-학습자-담당자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이들이 공방의 공동 운영주체가 되는 비전을 제시했다.

학습자들이 서비스의 단순 수혜자가 아니라, 강사의 말을 잘 듣는 학생이 아니라, 공방을 같이 사용하고 운영하는 ‘공동작업자’가 되어야 한다는 설명은 강좌에서부터 시작된다. 공방에서는 첫 수업에서 ①공방에 대한 소개(철학과 비전) ②공방사용규칙 안내 ③안전교육을 하고 ④서약서에 서명한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⑤함께 청소한다. 안전교육은 최대한 엄숙하게 진행하고, 청소할 때 빗자루는 10개 이상 준비한다(사실 빗자루는 3개면 충분하다).

이런 강좌와 프로젝트를 거쳐 활동모임에서 학습자들은 공동작업자로서의 위상에 다가선다. 당신들이 공방을 관리해주지 않으면 공방은 관리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⑥공방일지를 작성하도록 한다. 이제 이들은 공방 기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비품이 모자라는지 일지에 적고 한 명의 관리자이자 공동작업자로서 책임과 권한을 수행한다. 이런 일들은 과정 자체를 즐기기 위한 서로 간 배려이며, 작업자로서의 매너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물들인다.

강사, 학습자, 담당자라는 대신 ‘작업자’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기존 역할의 경계를 넘는 일들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강생이 강좌를 열어 강사를 초대하기도 하고, 강사 또한 다른 강사에게 조금 다른 기술, 다른 재료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그러면서 학습의 장면은 학습관 안팎을 넘나들며 더욱 다채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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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거북이공방에서 강사, 학습자, 담당자의 역할

 

 

담당자의 역할모델 츤데레, 그리고 기다려주기

 

유명한 공동체 조직가 솔 앨랜스키의 조직방법론은 “공동체의 길거리 문화를 배우고,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그들을 한데 모이게 하여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신 남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언하도록 격려했고, 그 자신은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면서, 요청이 있을 때마다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인문학교 담당자는 공부모임의 학습자들과는 거리두기를 하고 문제적인 상황에만 개입하고 간섭하지 않는다. 반면에 시민기획단과는 같이 토론하고 치열하게 의견을 개진한다. 공방에서는 때로는 이끌고, 호되게 굴기도 하며, 더느린삶 활동모임에서는 담당자도 한명의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담당자의 역할이나 개입의 수준, 개입의 방법은 학습모임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분야에 따라, 구성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같은 모임이라도 시기에 따라 또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 하나의 유기체를 다루는 것처럼 그 특성이 제각각이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해야 하고, 그래서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감당하기가 어렵게 된다. 학습자에 의해 끌려다녀서도 안되고, 일방적이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아직 정답을 찾지 못한, 그래서 아직 크게 남겨진 숙제다. 다만, 학습자들의 의존하려는 경향에 대하여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만은 아주 분명하다.

 

 

쉽게 같이 할 수 있는 자리

 

학습관의 거북이공방은 공공공방이고, 시민작업장이며, 연대와 공동의 가치 같은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강좌가 되었든 활동모임이 되었든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 뭐가 필요하다거나, 새로운 취미를 갖거나 뭘 만들어보겠다는 소소한 기대로 찾아온다. 그렇게 찾아와서 뭔가를 즐겁게 만들고 나면 그것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거 어때, 좋지 않아?”

인문학이든 제작기술이든, 생활기술이든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 알려주고 싶은 마음,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토대가 되어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모임을 구성하게 되고, 또 모임을 확장하게 된다. 그렇게 편하고 느긋하게 참여할 수 있는 자리가 더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공방의 경우는 전문가가 없었을 뿐더러 목공방의 환경이 갖춰지기 전에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직 갖춰지지 않음이야말로 학습자, 강사, 담당자가 공동작업자로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구실이 되었다. 부족한 공간을 매우기 위한 공동의 노동, 그것으로 점점 꼴을 갖춰가는 공동의 공간. 아직 부족하고 부실한 이때가 시작할 때이다.

 

 

 

백현주
수원시평생학습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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