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사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 ④

코코룸

현장 l Writer_최선영 upload_관리자 posted_Sep 10, 2018

 

 

“이렇게 운영이 어려워지는데 왜 이런 활동을 계속하려고 하나요?”

 

나에게 매순간 하고 있는 질문을 코코룸 대표 카나요 우에다(이하 우에다)에게 물었다. 그녀는 단단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마을은 변하고 사회는 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빈곤이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동네,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이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들을 원래부터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지금의 활동은 그 안의 한명 한명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어떤 순간에는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 있었던 무엇, 사람, 기억, 시간 때문에 내가 다시 힘을 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의 대답은 긴 시간 속에서 쌓인 힘을 표현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어떤 대안이 필요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외치지 않고 스스로로 하여금 이렇게 살아보려 한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시민활동이나 문화예술교육 관련 활동가의 자기 태도에 대해 내가 최근 들은 답변 중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나는 힘이 났다. 그래, 우리는 지금 이순간의 활동이 미래에 어떤 쓸모나 목적을 위해 작동되기를 기대하는 것 외에, 그것의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겠구나. 지금 힘들지만 나아질 앞날을 위해 버텨보자는 말보다 그것은 더 큰 힘을 주었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내가 코코룸을 2016년에 이어 올해 다시 방문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2년 전에 일본의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조사하기 위해 비영리법인단체 코코룸을 방문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는데 이유는 연구 사업이 아니라도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체가 우수하거나 독특한 활동 사례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2년 전 나에게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던 스태프와 단체의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활동에서의 재미도 느낀다고 말하던 스태프, 바로 그 사람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그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다시 간 코코룸에 누군가는 있고 누군가는 없었다. 그 현장에 없는 이는 또 다른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코코룸 마당에 앉아 그곳에 오는 사람들을 관찰하였다. 그곳의 프로그램을 분석하기보다 평소의 분위기나 지역과의 소통방식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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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룸 입구(좌)와 카페, 마당 공간(우)

 

코코룸은 가마가사키라는 오사카의 빈민지역에서 홈리스, 일용직 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과 시를 매개로 문화예술활동을 이어가는 단체다. 현재 게스트하우스,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02년 오사카시는 신세카이 Arts Park 사업을 시행하며, 지상 8층, 점포면적 57,000㎡의 빌딩 내부의 빈 점포를 활용한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때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세 개의 비영리민간단체 중 하나가 지금의 코코룸이다. 그러나 2008년 건물의 매각과 동시에 사업도 중단되었다. 이후 코코룸은 근처의 상점가에 공간을 마련하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코코룸이 위치한 지역은 치안이 좋지 않아 일본인이나 관광객이 드나들기를 꺼려하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코코룸 반경 300미터 내 지역 주민 3만 명 중 5천여 명이 노숙자라고 추측하는 시선도 있다.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추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주소부정의 일용직 노동자가 많고, 그 이유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인 1970년대 이곳에 간사이 최대의 인력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건설경기의 악화와 급격한 수요 감소로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지방에서 일을 찾아 오사카로 온 사람들은 저렴한 숙소를 전전하다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내가 코코룸 마당에 하루 종일 앉아있을 때 지역주민이나 일용직 노동자로 보이는 남성들이 이따금 들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딱히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고 동네의 익숙한 공간에 잠깐 들어와 앉았다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마가사키 지역과는 사뭇 다르게 예술적 분위기가 넘치고 타 지역의 사람들이 게스트 하우스의 손님으로 오가는 그 공간에 60대 이상의 남성이 별일 없이 드나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또한 갈 곳이 없는 낮 시간에, 집을 나서서 잠시 이곳에 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배제하지 않았던 코코룸 사람들의 움직임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문화예술교육 관련 어떤 활동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코코룸의 운영진들은 ‘예술’은 너무 추상적이라서 ‘표현’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고 했다. 예술은 유복한 사람만 전문적 교육을 받아서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예술보다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코코룸은 이들이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예술 자체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전문가를 초빙하여 예술적 기술을 가르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힘과 특징을 잃지 않는 것, 기술과 그 특징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코코룸의 대표적 프로그램 ‘가마가사키 예술대학’(이하 예술대학)은 그러한 측면에서 ‘표현’의 의미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술대학은 위에서 언급한 ‘표현’의 활동을 소소하고 다채롭게 담아내는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에는 단체의 대표부터 지역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예술대학은 코코룸 1층의 카페 공간과 주변의 마을회관, 노숙자 휴게소, 노숙자들을 위한 긴급 보호소, 삼각공원 등에서 이루어지며 노숙자였던 사람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이들이 온다. 또 지역민이나 복지와 예술,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한 강좌에 5명~50명 정도 참여하며 큰 발표를 하는 경우에는 300명이 오기도 한다.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진행되는 예술대학 강좌는 아래와 같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강사로는 전문가가 오기도 하지만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미학 / 거리걷기 / 맥주캔으로 탑 모형 만들기 / 합창 / 책읽기 / 캘리그라피 / 세미나 / 타코야키 만들기 / 하이쿠(짧은 시) / 시 / 생각하고 표현하기 / 과학소설 / 죽음 / 라디오 댄스 / 가마카사키 오페라 / 사운드 스케이프(소리와 공간의 디자인) / 천문학 / 남성과 여성의 사랑 / 학생자치, 일반적인 미팅(학생들이 10년 후 가마가사키 예술대학에 대한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말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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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가사키 예술대학, 맥주캔으로 탑 모형 만들기  <출처 : 코코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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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가사키 예술대학, 가마가사키 오페라  <출처 : 코코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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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가사키 페스티벌, 캘리그라피 쓰기  <출처 : 코코룸 페이스북>

 

예술대학을 기획할 때 고려하는 지점에 대해 우에다 대표는 3가지 기준을 언급했다. 첫 번째, 아저씨(일용직 노동자였거나 장애가 있거나 노숙자였던 지역 주민을 우에다는 이렇게 통칭해서 부른다.)가 해달라고 하는 강좌를 만들거나 두 번째, 아저씨가 어떤 선생님을 불러 달라고 해서 강좌를 만들기도 하고 세 번째, 이런 내용이 있으면 여기 사는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은 강좌를 기획한다. 그 외에 계절이나 상황의 밸런스를 생각하며 기획한다.

이렇듯 코코룸은 교육적 효과보다는 지역 사람들과 쌓아온 관계 안에서 발견되는 지점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해 가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예술보다도 ‘표현’을 강조하면서 ‘장소’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표현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스스로가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느낄 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거부당하는 곳에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런 측면에서 예술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 중요한 것이다.”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사람의 힘이라는 건 쉽게 보이거나 드러나는 것이 아니니 그것의 가치나 의미를 확인하기는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보이는 것을 잘 보는 것도 쉽지 않기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것을 나의 관심과 질문들을 통해 보는 것은 더욱 어렵다. 더 나아가 무언가를 잘 바라보고 나의 기억으로 남겨두었다가 우리의 삶으로 이어가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나도 그 어려움을 잠시 잊기 위해, 다양한 힘을 얻기 위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찾고 현장을 방문하는 것 같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내가 원했고 기대했던 답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 더 마음이 편안해지고 심지어 개운함까지 느껴진다는 것이다. 코코룸의 우에다도 그랬다. 그녀는 “여기는 카페인척 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카페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과의 문화예술활동 사례를 물으려던 나는 나도 모르게 “아, 그렇구나!” 라고 외칠 뻔 했다. 카페로 보이지만 카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카페로라도 보일 필요만 있을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카페든 뭐든 그것으로라도 보이게 하여 지속하고 지켜내려는 장소와 태도인 것이다. 그것은 설명으로 전달하기 힘들고 애써 보여주려 한다고 보이는 것도 아니다. 단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험되고 기억되어 다른 삶으로 퍼져나갈 뿐이다.

 

역시나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로 향한다. 우리는 얼마나 보려고 알려고 하고 있을까. 카페인척 하는 장소가 사실은 어떤 장소를 모색하고 있는지, 그 힘은 무엇인지. 과연 그것을 좀 더 잘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있을까. 마지막으로 사회는 변하지만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이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며 그들을 원래부터 없었던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우에다의 말을 되뇌어 본다.

 

 

 

 

관련 연구

해당 내용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의 일부이다. 

 

관련 링크

-<코코룸> 페이지 : http://cocoroom.org

-<코코룸>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cocoroom

-관련 기사 야쿠자와 노숙자로 쇠락한 거리에 시민 커뮤니티 만든 시인

  http://www.jejusori.net/?mod=news&act=articleView&idxno=193165

 

 

최선영
예술가이자 창작그룹 ‘비기자’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비기자’는 무한경쟁시대에, 각기 다른 생각들이 꾸준하게 비길 수 있는 현장을 인문학적 문화예술 활동으로 만드는 창작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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