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학교]

왜 F 선생님은 야반도주를 해야만 했을까?

칼럼 l Writer_진계영 upload_관리자 posted_Sep 10, 2018

 

가끔 비가 오고 가끔은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바람이 심하게 불기도 한다. 요즘 이곳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어젠 울 가디건을 꺼내 입고 출근을 했다. 학기 말이 다가오고 있고 재능대회(재능대회는 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획득한 메달은 대학 입시 사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고 한다. 언어, 수학, 과학, 스포츠와 미술, 음악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과목에 걸쳐서 몇 가지 부문으로 나누어 대회가 진행된다. 한국어의 경우는 말하기의 2부문, 쓰기, 연극 이렇게 4부문에 걸쳐서 대회가 진행된다.) 짱왓 예선을 앞두고 있고 선생님들은 모두 몸도 마음도 분주하고 지쳐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F선생님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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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가 떠난 후 덩그러니 남겨진 그의 신발

 

 

사라짐에 대한 리뷰_타자의 입장에서

 

F는 영어 선생님이다. 이곳에 오는 영어 선생님들은 보통 젊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F의 경우는 그들과 비교하면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마흔이 넘었고 그래서 젊은 선생님들보다는 다양한 경험이 있었으며 드물게 석사 학위까지 소지하고 있는 상당히 지적인 사람이었다. 진보적이었고 조금 어그레시브한 면이 있었지만 그의 불평의 상당 부분은 내 기준으론 근거가 있는 합당한 지적이었다. 단, 그 근거와 당위성의 기준이 이곳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안타깝지만 나의 대답은 ‘아니오’다. 여기는 그런 곳이다.

 

그가 여기에서 지낸 3개월여 동안 엄청 잘 지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릴 정도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멋지다고 생각했던 윙팁 옥스퍼드 구두 한 켤레와 티셔츠 몇 개, 그리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차마 남기고 가지 않을 몇 가지 개인적인 용품을 남긴 채 그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의 사라짐은 같이 일하던 우리 교사 커뮤니티에 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영어 선생님들에게는 그가 가르치던 20여 시간의 수업을 분담해 가르쳐야만 하는 매우 실질적인 부담이 생겼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집을 공유하고 살았던 두 명의 하우스 메이트 선생님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경제적 부담의 증가와 함께 일종의 ‘외상 후 후유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극심한 스트레스, 분노와 같은 심리적인 문제에 직면해야만 했다. 그가 사라지고 하루 이틀 동안 그들은 잠긴 방 문 뒤에 혹시 그가 차갑게 식은 몸으로 누워 있는 건 아닐까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으니 그들의 심리적인 불안정은 그럴만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관계라고 할 순 없지만 그와 자동차를 렌트해 공유하려던 계획을 가지고 있던 나 역시 놀람, 두려움, 안도감 등등의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정체를 알 수 없는 심리적 불안 상태를 잠시 겪어야만 했다.

일단 엑스트라 수업의 부담을 져야만 하는 영어 선생님들은 주당 4시간 정도 수업이 늘었다. 그리고 F는 일반 영어 수업이외에 MEP프로그램 학생들에게 영어로 과학을 가르치는 수업을 해왔기 때문에 영어로 수학 수업을 하던 K선생님은 과학 수업도 준비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르쳐 본 사람은 알겠지만 모국어라고 준비를 안 하고 가르칠 수는 없으며 언어가 아니라 특정 과목이라면 그건 또 다른 리그의 이야기인 것이다.

 

처음 F를 향했던 그의 무책임함과 어처구니없음 그리고 그로 인해 부과된 초과 업무에 대한 일방적인 불평은 시간이 흐르면서 실체 없는 대상이 아닌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대상을 찾아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사라져버린 건 F 개인의 잘못이지만 그의 사라짐에 대처하는 일 처리 방식 때문에 지친 교사들의 불평의 다음 대상이 된 건은 학교였다. 워낙 갑자기 발생한 일이니 처음 며칠 동안은 별 생각 없이 그의 수업을 대신 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대책 없이 F의 수업을 계속 분담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생각해보아도 학교는 일정 수업에 대한 수당을 해당 선생님에게 지불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빈자리를 다른 이들이 대체로 채우는 형국이고, 이는 수업은 동일하게 이루어지나 한 명의 임금이 지급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F의 사라짐에 대한 책임을 다른 선생님들이 나누어 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선생님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학교는 대체 선생님을 구하고 있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급하게 좋은 선생님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학교는 엑스트라 수업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기로 하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그 와중에 선생님들에게 마음의 상처가 된 부분은 본인들이 대화의 주체가 되지 못했던 것인 듯하다. 학교와 선생님들 사이에는 에이전시가 있고, 에이전시는 그들 사이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 입장에선 에이전시의 역할이나 책임에 의문이 들 만한 상황이었던 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연결되는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선생님들은 상처를 입었다. F가 사라지고 처음 맞은 긴 휴일에 어떤 선생님은 치앙마이의 사원에 가서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오기도 했고, 어떤 선생님은 무에타이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돌아오기도 했다. 나는 카오커의 조용한 자연 속에서 깊은 숨을 쉬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우리는 F의 무책임함과 미성숙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공감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혼자’라는 느낌에 대해 혹은 ‘남겨졌다’는 느낌에 대한 위로와 치유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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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에 대한 리뷰_F의 입장에서

 

나는 도시인이다. 켄터키 주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20여 년이 넘도록 뉴욕에서 살았다. 나는 뉴요커이다. 나는 밤에도 환한 도시의 불빛을 사랑한다. 여러 나라에서 일했지만 이런 시골은 처음이다. 나는 여기에 갇힌 느낌이다. 물론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도시에서 ‘걷기’는 일종의 트렌드이고 나를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처럼 보여 지게 한다. 하지만 여긴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자신 있게 숙소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출근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걷기엔 너무 덥다. 게다가 비라도 오는 날이면 정말 어떻게 학교에 가야할지 난감하다. 다른 젊은 외국인 선생님들은 모두 오토바이가 있다. 하지만 난 오토바이를 타고 싶지 않다. 학교에서 뚜벅이는 나와 한국어 교사인 M뿐이다. 그녀도 나이가 꽤 들어 보인다. 우리 나이에 오토바이를 배워서 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가 자동차를 렌트해서 공유하자고 제안했다. 제발 적당한 가격에 차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 다행이 동료 선생님이 자전거를 한 대 빌려주었다. 걷는 것보다는 수월하다. 젠장, 누군가 내 자전거의 체인을 떼어가 버렸다. 다시 뚜벅이가 되었다. 지친다. 오, 세상에, 내 손바닥만한 거미가 나타났다. 난 벌레가 정말 싫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우선 테이프를 사서 집에 틈이란 틈은 모두 막아버렸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

결국 내 비자가 만료되었다. 절차대로라면 비자 만료 전에 워크 퍼밋을 받아서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데 에이전시도 학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 벌써 수차례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나는 변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자문을 구했다. 일단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것은 무조건 불법이어서 나는 수업을 중단하겠다고 학교에 통보했다. 동료 교사인 K와 한국어 교사 M도 곧 비자가 만료된다. 학교와 에이전시는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동원해 일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자 문제를 절반 정도만 해결한 채 모두 치앙라이로 여행을 떠났다. 워크 퍼밋 없이 비자만 연장했다.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쨌든 그들이 비자는 연장했다. 하지만 워크 퍼밋은 여전히 발급되지 않았고 이런 상태로 그들은 여행을 떠났다. 난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 외롭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것인가? 나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나도 안다. 이렇게 그냥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다. 나는 절대로 이곳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종류의 사람일 것 같다.

 

 

타자이면서 F이기도 한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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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떠나야 할 이유를 찾는다. 가능하다면 ‘내’가 아닌 바깥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그만두어야 할 핑계가 필요한 것이다. 나도 늘 그렇게 떠나왔던 것 같다. 혈기왕성한 20대에 미술 전문지 기자를 그만둘 땐 편집장의 교체를 이유로 댔었다. 당돌하게도 존경할 수 없는 편집장과는 일할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회사가 나에게 주차 공간을 주지 않아서 그만둘 수밖에 없다든가 조직의 젠더 차별적인 문화 때문에 그만둔다든가, 심지어 뒷자리에 앉은 누군가의 숨소리가 거슬려서 그만둘 수밖에 없다는 핑계를 댔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모든 떠남의 원인이 내 안에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F도 계속 그렇게 떠나와 여기까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외국인으로서 태국의 시골 마을에서 교사로 일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도시에서만 살았던 사람이라면 더 힘들고 자신의 커리어가 아닌 일종의 시니어 잡으로 교사로 일하게 된 경우라면 어려움이 더해지며, 거기에 자기중심적인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상황이 F의 케이스와 중첩되는 나의 입장에서 F를 바라보면 그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젊었고 이상과 야망 그리고 자신감이 넘쳤던 때의 나는 어느 곳에서나 빛이 났지만, 그때와는 다른 지금 나의 현실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 

 

“I'm dealing with crisis."

 

F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에서 그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거짓말쟁이일수도 있고 무책임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가 보낸 저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걸린다. 사회적이던 심리적이던, 혹은 경제적이던 생에 한 가운데서 그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잘 견뎌내길 바란다고 응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우리는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피할 수 없는 그런 위기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행자의 학교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낯선 나라 태국의 교육 시스템. 우리나라와는 다른 해외의 교육 현장과 문화를 바라보며 평생학습계와 학습관이 배워야할 것과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진계영


 

진계영
생물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오래 전에 '가나아트'와 '월간 디자인'의 기자로 일했다. 한 때 디자인 중심 갤러리 '얼스프로젝트'의 대표를 지냈고 베트남의 사이공에서 'B & B 프로젝트'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레지던시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나이 들어 얼떨결에 시작한 한국어교육 공부로 ‘한국어교원’ 이라는 생애 최초의 자격증을 갖게 됐고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가르치며 또한 배우는 새롭고 재미난 경험을 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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