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길 위의 공부는 계속된다

칼럼 l upload_ posted_Dec 01, 2015

길 위의 공부는 계속된다

 

문탁에는 <녹색다방>이라는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의 인연은 2년 전 이맘때쯤 문탁에서 열린 녹색당 하승수 위원장의 탈핵특강이었다. 강연내용도 좋았지만 우리를 깊이 감동시킨 것은 하승수가 신고 있던 밑창이 다 닳은 낡은 구두였다. 그 구두는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삶의 증거였다. 특강을 듣고 자극받아 당장 탈핵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문탁 학인 몇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녹색다방이 만들어졌다. 2년 동안 녹색다방은 책을 읽고,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가며, 느리지만 진득하게 녹색과 탈핵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씨름해 왔다.

 

그 중 하나가 매주 목요일 광화문의 원자력 안전위원회 앞에서 8개월째 계속하고 있는 탈핵집회이다. 녹색다방의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참여하고, 후기를 문탁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누구보다도 탈핵과 관련한 소식과 실천에 빠르다. 알게 되니 더욱더 외면할 수가 없고 그만큼 더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여름부터 목요 탈핵집회의 이슈는 영덕에 신규발전소 2기를 짓겠다는 정부의 계획이었다. 전기가 남아돌아 전기세를 인하하기까지 한 마당에 위험한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하자 영덕 사람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영덕주민들은 옆 동네 삼척이 작년에 신규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한 것처럼 주민투표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우리는 직접 만든 방독면을 쓰고 평화의 새를 날리며, 예쁜 손글씨로 쓴 ‘사랑海 영덕’과 ‘11월 11일 영덕의 핵발전소 유치 찬반투표를 응원합니다’를 들고 동네에서 탈핵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11월 11일이 다가오면서 영덕 주민들은 투개표를 도와줄 자원활동가 500명을 모집했다. 전국에서 영덕주민의 자발적인 핵발전소 유치 찬반투표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달려갔고, 녹색다방도 몇 사람이 함께 했다. 사실 녹색다방은 봄에 삼척의 반핵투위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사람들을 만나 주민투표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인터뷰하고, 영덕에서의 탈핵퍼레이드에도 참여하였기에 삼척과 영덕의 분위기를 조금은 알고 있었다. 당시 삼척사람들을 만난 우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30여 년간 반핵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산전수전 겪으며 지역민들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 모습은 감격스러웠다. 삼척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느꼈다. 영덕 사람들 역시 그동안 세 차례나 핵 폐기장을 막아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앞장섰던 사람들이 불이익과 외압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기에 원전유치 반대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영덕은 11월 11일과 12일의 주민투표를 무사히 치러냈다. 온갖 방해공작 속에서도 주민 12,000여 명이 투표소를 찾아와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투표를 한 것이다. 내가 일을 도왔던 투표장에는 96세의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오셨다. 공권력이 불법이라고 겁박하는데도 제 몸도 가누기 힘든 노인들이 투표장에 와 줄을 서서 자발적으로 투표하는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누가 어떤 마술을 부렸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바로 그 곳은 녹색다방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공부의 자리였다. 그 공부의 길에서 나는 타지에서 온 연대자가 아니라 영덕의 일부였다.

 

몹시 추웠던 지난 목요일, 광화문 탈핵집회에 나갔다. 오가는 사람들은 곁눈으로 우리를 훔쳐보며 바삐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탈핵 피켓을 들고 있는 우리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작은 씨앗을 심는 인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탁이라는 인문학 공동체가 생겨나고 거기에서 다양한 공부와 실험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녹색다방이 만들어져 내가 길 위의 공부를 계속하듯이. 인연은 인연을 낳고 공부는 공부를 낳을 것이기에.

 

글_김혜영(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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