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교육 ④

페미니즘 교육과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

이슈 l Writer_이신애 upload_관리자 posted_Jun 18, 2018

 

페미니즘 교육에 대해서는 늘 할 애기가 많다. 교육에 대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할 말이 많아 답변도 달라진다.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때는 교실에서의 여러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 문제 발언, 학부모 상담에서의 고충 등등. 그러나 이것을 이야기 하면 할수록 교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 앞에서 한탄하는 것은 교실 안의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교실 안 여성혐오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앙기모찌’를 생각해보자. 그 때는 아이들이 ‘앙기모찌’류의 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이 정말 큰 문제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페미니즘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언론에서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말해달라 할 때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나는 그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 이후의 언론 보도는 온통 ‘앙기모찌’ 뿐이었다. 어느 언론사가 더 자극적인 초등생의 언어생활을 찾아내느냐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들은 모두 초등학생을 일반화하여 그들을 혐오하기 위한 레퍼런스로 쓰였다. “초등학생부터 벌써 저렇다니, 한국 남자는 다 똑같다!” 류의 이야기들 말이다.

그것보다 더 문제라고 느꼈던 지점은, 교실의 여성혐오 대표주자는 ‘앙기모찌’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혐오표현을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는 것 역시 물론 큰 문제가 맞다. 혐오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것은 습관이 된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혐오표현은 거의 대부분 어른들이 만들어낸 것이고, 아이는 차별적 사고를 한 뒤에 차별적 언어를 내뱉는 것이 아니다. 그런 혐오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약자를 마음껏 혐오할 수 있는 사고를 가지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 없으면, 그런 말을 쓰고 듣는 것에 무뎌지고 더욱 더 거친 말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언어가 사고를 만들고 혐오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혐오표현은 전염성이 크다. 혐오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몇 명 안 되는데,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많으니 교사가 수업 몇 번 하고 생활지도 좀 한다고 쉽게 바꾸기는 힘들다. 1년 내내 언어생활 지도를 했는데도, 학기 말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자기에게만 책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야, 이 창년아!”라고 소리 지르는 학생을 눈앞에서 봤을 때의 절망감이란. 아무리 교육해봤자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변화를 믿어야만 하는 직무윤리 사이에서 고통을 겪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친구가 앙기모찌, 보이루 하는 것을 좀 듣는다고 해서 인생의 방향이 꼬이거나, 건강을 망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해 앙기모찌에 집중하느라 놓친 문제들은 몇몇 아이들의 인생을 정말로 망쳐버리거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정상체중 범주 안의 여학생들이 서로 공유하는 다이어트 강박 같은 것들은 혐오표현보다 훨씬 더 교묘하게 아이를 망가뜨리기 쉽다.

 

 

나를 생각해보는 수업 -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생각하는 수업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나의 몸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제목으로 하여 ‘나 관찰하기’, ‘보통의 여자, 보통의 남자’, ‘탈코르셋 논쟁’, ‘예쁠 필요 없단다. 예뻐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라는 주제의 수업을 총 네 차시로 구성했다. 첫 번째 시간에는 본인을 관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의 눈에 대해 설명해보렴.”

“너의 팔 다리에 대해 설명해보렴.”

 

남학생들은 대체로

 

“저의 시력은 1.0입니다.”

“제 다리는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팔의 힘이 세요.”

 

와 같은 답변을, 여학생들은

 

“저는 쌍꺼풀이 있어요.”

“제 다리엔 털이 많아요.”

“팔목이 얇아요.”

 

와 같은 답변을 써서 냈다. 아이들은 성별에 따라 본인의 신체를 인식하는 방향이 다른 것을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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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체에 대해 생각해보는 수업을 진행했다.  ⓒ이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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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 남아 글과 여아 글, 하단 - 남아 도식과 여아 도식   ⓒ학생답변. 이신애

 

두 번째 시간에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번갈아가며 칠판 앞에 나와 평범한 남녀를 그리게 했다. 특별히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아닌, 길에서 흔히 보이는 사람을 그리며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분필을 이어받아가며 눈, 코, 입, 팔, 다리, 옷까지 전신을 완성한 뒤, 여자와 남자가 평범해지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계산해보게 했다. 아이들은 남자와 여자의 ‘평범’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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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생각하는 보통의 남자와 여자에 대해 그려보았다.  ⓒ이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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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생각하는 '보통의 남자와 여자'   ⓒ이신애

 

 

세 번째 수업의 주제는 ‘화장’이다. ‘화장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와 ‘화장하는 것에는 사회적 압박이 존재한다.’ 두 의견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게 했다. 학교 안에서 꾸밈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학교 밖과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이제껏 학교 안에서의 화장은 학생 된 도리, 윤리적인 측면에서만 이야기해왔다. 그러니 아이들은 화장은 ‘학생이니까 아직’ 하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마련이고, 꾸밈의 압박 보다는 꾸미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 아래 있다. 앞에서 두 시간의 수업을 진행한 이유는 세 번째 수업을 진행하기 이전에 꼭 짚고 가야하는 논의였기 때문이다.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외모 치장 압박에 대한 이해 없이 화장을 주제로 토론하게 하면, 학급 안의 화장하는 학생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리게 된다.

 

앞의 두 수업을 통해 여성이 사회적으로 받는 외모 압박에 대해 생각해본 아이들은 세 번째 수업에서 많은 의견을 쏟아냈다.

꾸미는 것도, 꾸미지 않는 것도 자유여야 한다, 꾸미는 것에는 사회적 압박이 작용한다, 꾸미는 것이 자유여도 사회적 압박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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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의견 질문지  ⓒ이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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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화장' 과 '꾸밈'에 대한 생각  ⓒ이신애

 

 

마지막 수업으로 아름답지 않아도 될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만들었다. 러네이 엥겔른(Renee Engeln)의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웅진지식하우스,2017)에서 발췌한 시와 노래가사를 제시하고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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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아도 될 권리에 대해   ⓒ이신애

 

 

 

어린 딸이 나에게

자신이 예쁘냐고 묻는다면

마치 마룻바닥으로 추락하는 와인 잔 같이

나의 마음은 산산조각 나겠지.

나의 마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거야.

당연히 예쁘지, 우리 딸. 물어볼 필요도 없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톱을 치켜세운 한편으로는

그래 나는

딸아이의 양 어깨를 붙들고서는

심연과도 같은 딸아이의 눈 속을 들여다보고는

메아리가 되돌아올 때까지 들여다보고는

그러고는 말하겠지.

예쁠 필요 없단다. 예뻐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그건 네 의무가 아니란다.

 

 

*수업 진행을 위해 당신->나로 수정했다.

 

 

 

아이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 긴 시간 수업을 진행했다. 4시간의 수업을 마무리하며 아이들은 각자 짧은 시를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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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체에 대한 수업 후, 아이들이 쓴 시  ⓒ이신애

 

 

 

우리가 진짜 생각해야 할 것들

 

145cm에 29kg 나가는 저체중의 아동이 작년보다 3kg 쪘다고 진심으로 낙담하는 교실을 보아야 한다. 아이의 삶을 망가뜨리는 여성혐오는 이것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가 아이를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교실에는 급식을 다 먹지 않고 남겨오는 여학생들이 무척 많다. ‘대체 왜 다 먹지 않는 거니? 맛이 없니?’ 하고 물으면 ‘다 먹으면 돼지 같잖아요.’ 하고 웃는다. 전염성이 큰 것은 혐오표현 뿐만이 아니다. 적게 먹는 것을 선망하는 분위기도 전염성이 매우 크다. 교실의 몇 명이 적게 먹기 시작하면 덩달아 적게 먹는 아이들이 나타난다. 돼지 같아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내가 급식판을 꽉꽉 채워 다 먹는 모습을 열심히 보여주기로 했다. 많이, 그리고 푸짐해 보이게 담아와 싹싹 먹어치우는 나를 본 여자아이들이 ‘헐! 선생님 왜 이렇게 많이 먹어요?’ 라고 물으면 ‘응, 선생님은 열심히 먹고 건강한 몸을 가지는 게 목표야.’ 라고 대답해주었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보호자이자 선망의 대상이고, 내가 실수로 신고 나온 짝짝이 양말도 따라하고 싶어 한다. 이 아이들에게 직접 내가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거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여학생들은 ‘선생님도 많이 먹는데?!’ 하면서 먹고 싶은 소시지 반찬이나 스파게티 면을 더 받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양껏 먹으면서도 ‘선생님처럼 많이 먹고도 살찌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라고 묻는다. 이런 아이들에게 너는 살찌지 않았다고 말해봤자 얼마나 귀 담아 들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는 아이에게 너도 아름답단다,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아이는 바보가 아니다. TV를 켜면 예쁜 여자가 가득하고, 선생님을 제외한 모두가 너는 예쁘지 않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그런 소리를 해봤자 대학 가면 애인이 생길 거란다! 하는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너희 모두는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아름다울 필요 없단다.’ 하고 가르쳐야 했다.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말해 달라 했을 때 이런 것들을 말했어야 했다.

 

먹고 싶은 만큼 다 먹지 않는 것이 절제와 여성성의 상징이고 꾸미지 않은 여성이 있을 뿐 아름답지 않은 여성은 없다고 말하는 미디어가 너무 많으므로,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좋고,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주는 성인 여성이 꼭 있어야만 한다. 마지막 차시 수업 날 허리까지 오던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자르고 출근했다. 왜 자른거냐고 서운해 하던 아이들이 ‘더워서 밀어버렸다!’ 는 나의 대답에 ‘나도 자를까?! 자르고 싶다!!!’ 라고 말하는 교실이 너무나 신났다. ‘3반 샘은 남자같이 머리 잘랐다’는 다른 반 아이들의 말에 ‘여자도 머리 짧을 수 있거든??’ 하고 반박하는 우리 반 학생을 보며 나는 다시금 아이들의 변화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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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면 모두 예뻐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아름다워지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느끼고, 아름다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버둥대는 열두 살들이 있다.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것보다, 아이들이 더 이상 사회에서 생산해내는 여성혐오로 고통 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과 같은 내 얼굴이, 근데 꼭 얼굴이 사과 같고 예뻐야 해?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가, 진심으로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이신애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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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명주 2018.06.20 16:27
    너무 멋진 글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수업을 해 보고 싶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