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평생학습관 활짝 여는 날]

보통의, 그리고 그 특별한 목소리

현장 l Writer_이가연 upload_관리자 posted_Jul 02, 2018

 

축제, 다방면의 ‘활짝’을 여는 기간

 

아주 최근에 수원시평생학습관 근처로 옮기면서 대학 입학 이후 시작된 나의 열두 번째 이사를 완료했다. 내가 사는 곳은 ‘플라잉 수원’이라는 열기구가 달처럼 둥글게 떠오르는 모습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나즈막한 동네다. 학습관까지 걸어서 20분, 자전거를 타고 최대한 속력을 냈을 때 기적적으로 10분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에 있기도 하다.

 

flying_intros.jpg

창룡문에서 바라보는 플라잉 수원   <출처 : 플라잉 수원 홈페이지>

 

수많은 이사를 거치면서, 동네를 선정하는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그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을 대상으로 두 번의 소송을 진행했던 경험을 가졌던 터라 재정적인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채광과 안전 및 조용함 등을 뒤따르는 순위로 선정했다. 주관적인 우선순위에 따라 선별된 나의 열두 번째 집은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사를 한 첫날밤부터 최선의 선택지가 예상만큼 훌륭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건물 1층의 떡볶이 집에서는 밤 10시부터 본격적으로 심야배달 주행소리가 빨라졌고, 바로 맞은편 건물 1층의 ‘@@전기’에서는 새벽 5시 무렵부터 일터가 열려 아침을 깨우는 커다란 목소리들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노출된 외부 소음에 예민해진 터라 밤 12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잠을 깨기 시작했고 거주한지 한 달이 넘어가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내면세계에서는 이웃들에 대한 소심한 분노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수면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니 입맛도 없어져 의무적으로 생존을 위해 먹는 것 이외의 식욕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더군다나 지동의 어떤 사건을 뒤늦게 알고 난 후부터는 조용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동네 곳곳에 숨겨진 괜한 위험성들만 날카롭게 점검하게 되는 어둠의 눈마저 활짝 열리게 되었다.

 

때마침 이 시기에 학습관에서는 “활짝 여는 날”이라는 축제 준비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게 출발했다. 새롭게 꾸려진 ‘연결과 변화’라는 팀의 이름으로 학습관과 이웃을 연결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보통의 목소리>라는 전시 기획안을 냈고, 10여명 주민들의 목소리 - 정확히 말하자면 내면세계 반영이 아닌 단순한 목소리 그 자체 - 를 느슨하게 담아볼 계획이었다. 인터뷰이는 학습관 직원들의 추천을 받는 과정을 거쳐 20명으로 늘어났고, 그에 따라 응답형 대답이 가능한 10가지 질문이 만들어졌다. 축제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이와 비슷했다. 전시 설치에 꼭 필요했던 목공 기술을 가진 팀원이 존재했고, 만들어진 합판을 벽면에 붙이는 과정에서는 나무집게와 연결고리에 대한 각각의 아이디어가 합쳐졌다. 최종 전시에서 3층 중앙 복도에 스피커를 설치하자 처음에 기대했던 것만큼 청각적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아서 전시가 있었던 이틀 내내 음량을 키웠다 줄였다, 스피커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방문객들을 손꼽아 기다렸다. 가장 빈번하게는 학습관의 경비 반장님이 방문해서 “영광이네, 내 얼굴이, 내 목소리가, 아주 영광이야. 그런데 왜 내 사진이 맨 위에 위치해 있지 않지?“ 라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준비1.jpg

학습관과 우만동, 연무동을 연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연결과 변화 팀   ©수원시평생학습관

 

전시-1.jpg

수원시평생학습관 3층 중앙 복도에 전시된 보통의 목소리들.

활짝 여는 날은 지나갔지만 <보통의 목소리>는 계속 만날 수 있다.   ©수원시평생학습관

 

 

20명의 보통의 목소리

 

인터뷰 작업은 주로 외부에서 진행되었다. 학습관 직원들이 즐겨 찾는 맛집, 커피숍, 가게 등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친밀한 만남을 가져 온 이웃들을 먼저 만나보기로 했다. 다년간의 관계를 가지고 있던 주민들을 만나 <보통의 목소리>라는 프로젝트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터뷰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던 이들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기획의도와 20명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기 때문에 누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전시 콘셉트를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뷰이로 참여해 주었다. 섭외된 인터뷰 리스트를 기준으로 최단거리를 움직이는 동선을 잡았는데, 확정된 장소 외에 너무 바쁘거나 한가한 점포에는 미안해서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 아니, 몇 번 들어갔다가 거부당한 후에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가게를 간택하는 눈치가 생겼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아주 가깝게는 자전거 가게, 창룡도서관, 다인병원의 누군가도 사전연락 없이 현장에서 섭외한 인터뷰이로 들어왔다. 학습관의 ‘이웃’이라는 단어를 규정짓는 거리는 공간적 거리보다는 조금 다른 그 어딘가에 척도를 두고 있었다.

 

전시-2.jpg

다양한 질문과 20인의 답변들    ©수원시평생학습관

 

 

10개의 인터뷰 질문은 ‘점심, 거주, 관심, 즐겨찾기, 만족, 실망, 변화, 건강, 소원, 학습관’ 이라는 키워드가 중심이었다. 던져지는 질문 안에는 우만동과 연무동에 자리 잡은 동네 사람들의 삶에 여러 가지 담백한 이야기를 담아 보려고 애썼다. 인터뷰 과정에서 각각의 다른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우만동이 살기 좋은 동네라고 느껴지는 순간'을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 때”라고 대답한 카페주인과 '우만동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을 묻는 정반대의 다른 질문에 “사람 때문에” 라는 비슷한 맥락의 대답을 한 음식점 주인이 기억난다. 또한 ‘변화’라는 키워드에 대하여 같은 상황에 대해 느끼는 전혀 다른 감정이 답변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동네가 너무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가는 것 같다.” 고 섭섭함을 표현해 주신 음식점 사장이 있는가 하면, “동네가 너무 많이 변해서 이제 유네스코 보존구역으로 엄격하게 관리되었으면 좋겠다.” 고 아쉬움을 표현한 주민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이들의 답변과 함께 내 마음도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헤어지고, 우만동과 연무동의 옛 모습을 그리워하다 앞으로의 발전적인 모습을 기대하기도 하며 두근거렸다.

우만동과 연무동 일대에서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28년까지 살고있는 주민들이 인터뷰이로 선정되었다. 외국어마을에서 강사로 근무하며 우만동에 11개월 째 거주하는 John은, 지루한 영국을 떠나 역동적인 수원에서 일하는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며, 영국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내렸다. 학습관 붙박이 우만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은 최연소 인터뷰이로 "수원화성이 내 것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는 귀엽고도 거대한 소원을 표출했다.

 

 

10명에서 다시 20명으로, 우연한 만남

 

<보통의 목소리>에 참여했던 주민들 가운데 10명이 학습관을 찾았고 <보통의 목소리> 인터뷰이 외에도 지역 인사 서너 명이 합류했다. 이름하여 <우연한 만남>. 학습관 야외 마당 ‘모두의숲’에서 오붓하게 시작된 만남의 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모여든 주민들로 인해 따뜻하고 소담스러운 공론장이 되었다. 일렬로 앉았던 자리가 동그랗게 배치되며 옆에 앉은 이웃의 얼굴을 한 번, 두 번 쳐다보고 확인하게 되었고 아름다운 꽃과 샹그리아, 샌드위치, 여름밤 정취와 더불어 풀냄새가 어우러지면서 모두의숲과 얼굴에는 한여름 밤이 만개했다.

 

우연한만남-1.jpg

모두의숲에서 열린 '우연한 만남'. '우만동'과 '연무동' 그리고 '학습관의 만남'을 의미한다.  ©수원시평생학습관

 

 

우만동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일터를 꾸린 청년은 엄마와 함께, 거주 16년차 주민은 아들 손을 잡고 놀러왔다.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는 청년 모임에서 활동하는 지인과 함께 오기도 하면서 우연한 만남 안에서도 다양한 세대가 서로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에 힘입어 주변을 지나가던 주민들 또한 자연스럽게 관람객에서 참여자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질문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질문이 필요했다. 사회를 맡은 관장님이 적절한 순간 ‘동네의 변화’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현재 학습관은 옛 연무중학교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간 20여 년 전의 우만동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빈 공터와 다름없었다고 한다. 공터였던 공간에 도로가 닦이고 아파트, 음식점과 카페, 가게들이 자리 잡으면서 우만동과 연무동이 달라졌다. 그리고 학습관이 태어나 올해로 꼬박 일곱 살이 되었다.

문득, 우만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학습관은 이 곳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고 어떤 순간에 행복해하는지, 어떤 부분을 힘겨워하는지 궁금해졌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함께 한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곱 살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동네를 만들어 내는 것. 그 방법으로 다양한 이야기와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청소년들이 안전할 수 있는 공간, 평생학습 교육을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 필요하다면 더 많은 세금을 확보해서 더 많은 혜택을 달라는 강력한 청원의 목소리도 등장했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은 원하는 모든 것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이렇게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오늘과 같은 시간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고 늦은 밤 함께 한 시간을 소중히 저장했다.

 

 

11시, 그리고 축제는 끝났다

 

6월 22일 저녁 11시 종료된 <우연한 만남>의 무대는 ‘모두의숲’이라는 학습관의 큰 뜰이다. 그리고 수원시평생학습관은 수원에 자리 잡은 모두의 배움터다. 학습관이 자리 잡은 우만동과 연무동이라는 동네가 배움터의 큰 뜰이라고 가정해 보았다. 이 배움터의 이야기가 우만동에서 연무동으로, 나아가 수원전체로 펼쳐나가는 상상을 하면서 큰 뜰에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에 먼저 귀를 활짝 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보통의 목소리>라는 프로젝트가 기획되었다. 그러나 사실 <보통의 목소리>는 만들었다기보다는 참여하고 도와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젝트라는 표현이 훨씬 더 적절해 보인다.

 

인터뷰-1.jpg

<보통의 목소리>를 만들어 준 이웃들   ©수원시평생학습관

 

 

축제가 끝났다. 그간 나는 건물 1층에 위치한 떡볶이 집에서 서비스가 잔뜩 들어간 ‘3단계 매운맛 1인 세트’를 주문하는 보통의 손님이 되었고, 다음날 아침 ‘@@전기‘에서 큰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찜찜한 기분으로 아침을 여는 동네 주민이 되었다. 길을 걷다가 근처 카페나 음식점, 병원이 보이면 인터뷰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살짝 내비쳤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들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장사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들, 퇴근 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행복한 그들의 추억을 떠올리고 상상하기도 한다. 늦은 밤 집에 들어가다 답답할 때면 못골 놀이터 의자에 걸터앉아 혼자서라도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마저 생겼다. 가끔은 내가 했던 질문들을 복기하면서 나의 점심 메뉴, 관심사, 즐겨 찾는 공간, 동네에 대한 만족도와 변화, 요즘의 건강과 간절한 소원, 그리고 학습관에 대한 생각들을 하고 또 하며 정리하고 다듬는 시간도 가진다.

축제를 찾고, 즐기고, 굳이 찾아와서 “참석해서 행복했다.“고 말한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내년 축제에서도 꼭, 이웃이라는 보통의 이름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이번 축제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특별하게 부풀어 오르는 공간인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라면 참 좋겠다.

 

이가연

이가연
수원시평생학습관 연결과변화팀 책임연구원
?